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오름 이야기

비오는 날의 수채화

김창집 2001. 9. 5. 08:28
■장자오름, 동수악과 삼의악 답사기

----1999. 6. 6. 일요일. 09:00 하루 종일 비

△ 소홀한 준비의 대가를 호되게 치러 교훈으로

- 아침 방송의 일기 예보는 '오후 늦게 약간의 비'. 한라산을 바라보니 구름이 덮였다 걷히기를 반복한다. 배낭을 챙기는데 오늘 따라 비옷이 눈에 들어온다. 20초의 망서림. 오늘 산에 있는 오름 가기는 틀리고 해변 오름 오르는데, 이렇게 부피가 큰 비옷? 설마. 설마가 사람을 우습게 만들었다. 호랑이는 토끼 한 마리를 잡는데도 최선을 다 한다던데…. 오늘은 우산 쓰고 우스운 꼴로 오름을 오른다.
- 남조로 네거리를 지날 때까지만 해도 비는 오지 않았다. 다만 안개 낀 스산한 분위기만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우리가 탄 차에서는 벌써부터 분위기를 돋우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내가 물었다. 날씨가 이래서 슬프게 들리는 건지, 원래가 슬픈 노래인지? 차를 모는 박 서장은 원래가 슬픈 노래라 대답했다. 김 원장과 박 서장의 해박한 음악 지식과 좋은 음악 덕택에 분위기 있는 드라이브가 계속되었다. 꿩엿 공장 옆을 지나며 김 원장이 꿩엿을 안 먹어 보았다고 하는 얘기까지는 우스개로 넘길 수 있었다.
- 아니나 다를까, 성불오름 옆을 지날 때 빗방울이 지기 시작했고 후회해도 소용이 없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개민들레가 비에 젖어 더욱 선명하게 보이며, 울적한 마음에 불을 지핀다. 인동꽃이 누렇게 퇴색되어 봄이 가고 있음을 알린다. 송 선생이 어렸을 적 저 꽃을 따서 엿 바꿔 먹었다는 얘기가 전환점이 되었다. 그래, 오늘 나의 소홀함에 대한 대가를 내가 치르자. 온 몸으로 비를 맞으면서 교훈을 만들자. 이렇게 마음의 결정을 내린 순간 몸은 가벼워지기 시작했고, 음악 소리도 귀에 들어왔다.

△ 빗속에서 강행한 장자오름 등정

- 오늘 출발하면서 목표로 삼은 오름은 모지악과 따라비였다. 성읍 네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500m 정도나 달렸을까? 굴삭기가 한창 작업을 하고 있는 곳에서 오른쪽으로 난 시멘트 포장길로 접어들었다. 두 갈래 길이 두 번 있었다. 처음에는 왼쪽 다음엔 오른쪽 길로 접어 들어 비 오는 목장길을 따라 달렸다. 고요하니, 운치가 있다. 오늘 같은 날, 이런 여유를 누릴 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백로가 보인다. 한 마리가 아니고 여러 마리다. 엉뚱한 곳에서 이런 귀한 손님을 만나다니. 역시 움직이는 사람 앞에는 부수입도 따르는 법.
- 시멘트 포장이 끝나는 곳에 철조망이 쳐져 있다. 차를 세우고 오른쪽을 바라보니 모지악이 아니고 장자오름이다. 오른쪽에 홀로 서 있는 알오름을 바라보며 꼴밭 사이로 난 길을 걸어 들어갔다. 오름의 모습이 꼭 팽팽한 젖가슴 같다. 끝에 알맞은 돌이 박혀 유두까지 갖췄다. 풀밭엔 어디다 쓰려는지 작은 먹구슬나무를 촘촘히 심어 놓았다. 다음 밭으로 들어서서 띠가 있는 구석 쪽으로 발길을 옮기는데 고사리가 눈에 띈다. 장마비가 촉촉이 내려서인지 제법 굵은 것들이 많이 솟았다. 십시일반(十匙一飯)으로 모두 송 선생에게 모으니 제법 많다. 다음 주 오름행 때 볶아오기로 하는 모양이다.
- 다음은 꼴밭으로 길이나 있다. 오른 쪽으로 알오름이 하나 있는데, 우리는 왼쪽으로 난 길을 돌아갔다. 빗속에서 엉겅퀴가 수줍게 보라빛을 토해낸다. 아마도 오늘의 주제 꽃은 엉겅퀴로 정해야 할까보다. 왼쪽에 알오름이 또 있었으나 우리는 밭담을 하나 더 넘어 주봉으로 향했다. 산등성이에 다다랐을 때, 이건 또 무언가. 방사탑(防邪塔)이 서 있다. 주위를 둘러보니 시계가 불량하여 어느 마을에서 세웠는지 아니면 어느 무덤에서 세웠는지 구분이 안섰다.
- 정상까지는 50m 정도. 밋밋한 정상 풀밭 속에서 둥글레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표고 215.9m. 오른쪽으로 굼부리가 적당히 패이고 건너에 다시 나지막한 봉우리가 있다. 쉽게 다녀올 수 있겠다 싶어 나서려 했으나 풀밭이 좀 거칠다. 가시 거리가 100m 정도밖에 안되어 사방을 조망(眺望)하기가 힘들다. 우산을 쓰고 이곳저곳을 살폈으나 남쪽으로 길게 뻗은 기슭까지도 미치지 않는다. 모지악의 아들 격이어서 그런지 정상봉 기슭에서 원추형 끝 봉우리까지는 1,500m나 된다 하니 길기도 하다.

△악천후 때문에 못 오른 모지악

- 내려와 모지악에 가려고 차를 되돌려 나오다 두번째 갈래길 오른쪽으로 들어갔다. 어디에 물을 대는지 몰라도 오른쪽에 지하수 급수 탱크가 있다. 다시 목장길을 따라 5분 정도 달리니 철조망이 막아선다. 강 화백이 내려 비를 맞으며 철조망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왼쪽에 말 몇 마리가 빗속에 누워 있었고, 오른쪽에는 풀을 뜯고 있었는데 석 달 정도 자란 망아지만 좋아라 겅중거리고 있다.
- 시멘트 포장이 다한 곳에서 차창 너머 오른쪽에 모지악이 있었다. 오름 밑둥으로부터 편백나무가 방풍림 대신 심어졌고, 위로 삼나무 숲이다. 산허리로부터 휘감은 안개와 구름으로 하여 한편의 동양화 같다고 김 원장이 말한다. 정말 김 원장은 종합 예술인이다. 노래면 노래, 그림이면 그림, 글이면 글… 정말이지 타고 났다. 본인은 소박하게 '의료 지원반'이라고 말하지만. 비는 그칠 것 같지 않고 올라가 봐야 시계가 엉망일 테고, 이럴 땐 주변 경치가 아기자기한 오름을 오르는 것이 상책이라고 해서 폭포도 볼 겸 거린악엘 가기로 했다.
- 되돌아 나와 16번도로를 달린다. 가시리(加時里)를 지날 때 박 서장이 특이한 이름이라고 했다. 나는 고려 속요 '가시리'가 연상 돼서 그런 게 아니냐 반문했더니, 송 선생이 퍽 쉽고 예쁜 이름이라고 했다. 수망리(水望里) 세거리를 지나 오른 쪽으로 꺾더니 조그만 숲길로 들어간다. 퍽 운치가 있는 길로 접어들어 기대를 했는데, 웬걸 길을 잘못 들어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러나, 변화가 있고 환상적인 소로길이어서 모두들 기분 전환이 되었다.
- 덥고 따분한 여름 낮쯤 한 번 들어가 잠시 쉬고 가면 좋을 길이라고 입을 모았다. 다른 사람이 모는 차 뒤에 앉아서 다니다 보니 길이 익숙치 않다고 손수 차를 몰고 온 박 서장이 더욱 감탄한다. 남조로를 따라 가다가 의귀리(衣貴里)에서 토평으로 빠지는 길로 접어들어, 한남마을 못 미쳐 오른쪽 길로 들어 가다가 간판이 세워 있는 길로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가니, 포장이 끝나는 곳에 가시 두릅나무가 하나둘 보인다.

△ 복분자 딸기와 강장제로 쓰이는 5자(五子)

- 길은 중요한 곳만 골라 시멘트 포장을 해 놓았다. 그러나, 손보지 않고 오래 두어서 곳곳이 패이고 암반이 튀어 나와 승용차가 아슬아슬하게 지난다. 갑자기 앞서 가던 차를 세우고 왁자지껄하는 소리가 들려 내려보니 복분자딸기를 따먹느라 야단이다. 길 양쪽 그 중 볕이 잘 드는 왼쪽 길섶은 복분자딸기가 군락을 이루었다. 한약제 복분자(覆盆子)는 이 딸기를 말린 것인데, 강장제(强壯劑)로 쓰인다. 오죽 하면 요강을 뒤엎을 정도로 세진다는 이름이 붙었을까. 이렇게 많이 있는 것은 처음 본다. 정력에 좋다는 우스개를 덧붙여 옷이 젖는 줄도 모르고 잘도 따먹는다.
- 속설에 '자(子)'자가 붙은 몸에 좋다는 식물이 다섯 있는데, 이 복분자와 구기자·오미자·사상자·토사자다. 복분자나 구기자·오미자는 잘 알 거고, 사상자(蛇床子)는 풀밭에서 자라는 미나리과의 2년초로 뱀도랏이라고도 하는데, 어린잎을 식용하며 한방과 민간에서 열매·뿌리를 복통(腹痛)·자궁한랭(子宮寒冷)·관절염(關節炎) 등의 약제로 쓴다. 토사자( 絲子)는 새삼의 씨를 말하는데, 새삼은 산야나 밭둑에 자생하는 기생식물이다. 씨를 차로 만들어 마시며 전초(全草)를 강정제(强精劑) 또는 강장제 등으로 쓴다. 아직 설익은 것이 많았지만 꽤 많이 따먹은 편이다.
- 돌이 울퉁불퉁한 산길을 어렵사리 가다가 드디어 물 고인 진흙 구렁을 만났다. 승용차는 도저히 건널 수가 없겠다. 신규 씨가 넘어가서 정찰을 해본 즉 걸어서는 너무 멀다고 판단되어 돌아오기로 결정을 보았다. 지금 가 봐야 물도 흐르지 않아 폭포도 없을 거고 비도 오고, 멀고 배도 고프고. 다음부터 비올 때 폭포 보러올 때는 짚차로 와야지 승용차론 아예 생각도 말 일이다.
- 볼목리 자리물회도 거론되었지만, 이런 날은 날고기 종류는 탈나기 쉽다고 토평에 가서 고기나 굽자고 결정을 보았다. 비는 더욱 거세진다. 아줌마가 운영하는 조그만 고기집은 손님이 가득 차 있었다. 어렵사리 두 테이불을 차지하였으나 이산 가족이 되어 버렸다. 오랜만에 연탄불에 고기를 구어 먹고 나서니 그냥 가기가 너무 허전하다고 가다가 동수악이나 들르자고 했다.

△ 동수악과 새미오름에 들려

- 비는 그냥 그대로인 채 5·16도로를 달린다. 사방은 온통 초록의 세계다. 수악교(水岳橋)에서 논고교(論古橋)를 거쳐 동수교(東水橋)에 이르는 구간은 그야말로 숲이 터널을 이루었다. 요즘 한창 이곳을 확장하는 문제를 놓고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러나 어떤 수를 쓰더라도 이 숲을 해쳐서는 안 된다. 숲이 끝날 무렵에 승용차 2∼3대를 임시 세우도록 마련해 놓은 곳에 차를 세우고 동수악(東水岳)으로 들어갔다. 우거진 숲길에는 때죽나무가 꽃을 하나 둘 떨구고 있다.
- 15분쯤 가서 분화구가 나타났다. 해발 700m의 오름이 둘레 220m 가량되는 화구호를 안고 있다. 지금은 물이 다 말라버려 습지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발이 빠질 염려도 없이 가운데까지 걸어 들어가 사방을 둘어 본다. 아늑한 숲에 둘러싸여 평평하게 이루어진 화구호 위에 곧바로 서서 바라보는 산은 황홀하다. 혹시 뱀이라도, 하는 생각을 갖고 서쪽 구석지로 갔다. 찔레꽃이 마지막 꽃무더기를 매달고 솔피낭과 나란히 섰다. 오다가도 몇 그루 보였던 솔피낭은 솔비나무의 제주 방언으로 한라산록에서만 자라는 특산식물이다. 어렸을 때의 기억으로는 이 나무를 잘라다 뒤틀며 묶은 뒤 삶아내어 밭갈 때 소멍에에 매어 당기는 솜비줄 같은 딱딱한 줄을 만들 때 썼다.
- 사방엔 때죽나무가 잎사귀 아래로 하얀 꽃을 매달고 있다. 그 모습이 마치 종 같아서 제주말로는 종낭이라 부른다. 어떤 사람은 같은 시기에 피어나는 산딸나무꽃과의 구별을 못하는데, 그건 아주 쉽다. 제주어로 틀낭이라고 하는 산딸나무는 잎사귀 위로 열십자 모양의 꽃을 피우고, 때죽나무는 나뭇잎 아래 종처럼 꽃을 매달고 있다. 그리고, 산딸나무는 꽃잎이 4장이고 때죽나무는 5장이다.
- 성판악 입구를 지나 산북으로 넘어서 보니, 이게 웬 일인가. 비가 별로 오지 안았다. 시간도 이르고 허전하기도 하고 가다가 산업정보대 위에 있는 삼의양악에 오르기로 했다. 사격장을 지나 목장 담을 올라 넘으니 곧바로 오름 기슭이다. 환히 뚫린 길을 따라 오름을 오르다 보니 여기도 늦고사리가 피어 났다. 이곳은 574m의 비교적 높은 표고에 사방이 열려 있어 다랑쉬오름과 함께 패러글라이딩의 적지(適地)가 되다 보니 사람 출입이 많다.
- 정상 방화 초소에 올랐으나 시계는 역시 안개 때문에 불투명하다. 마지막 남은 맥주 캔 하나와 소주 1병을 내놓고 과일을 안주로 오늘의 마지막 술잔을 나눴다. 안개 속에 벌노랑이, 구슬붕이가 더욱 선명한 색으로 유혹한다. 새미오름에 올라 샘을 안보면 헛일이 아니냐고 희망자를 이끌고 서쪽 봉우리께로 갔다. 활진 두 봉우리의 중심부에는 암소들이 누운 채 우리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시야만 조금 트이었더라면 쉽게 찾을 수 있을 샘을 찾을 엄두도 못 내고 할 수 없이 서쪽 봉우리만 오르고 다음을 기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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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에 다녀온 대록산과 소록산 이야기가 정리되지 않아, 지난번에 다녀온 이야기를 올립니다. 그것은 정리되는 대로 올리겠습니다. 사진은 거린악에서 한라산을 보고 찍은 것입니다.('오름나들이'에서 빌려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