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오름 이야기

☜ 누가 달 속의 계수나무와 토끼를 보았는가

김창집 2001. 10. 10. 09:25

  ----- 한가위 뒷날 다랑쉬오름의 달맞이

○ 달하 노피곰 도드샤

달하 노피곰 도드샤 (달님이시어. 더 높이 떠오르시어)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어기야, 더 멀리 비취시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정읍사(井邑詞)'에서 (이하 생략)

오늘의 달맞이를 나서면서, 어렸을 적 한가윗날, 계수나무 아래서 토끼가 떡방아 찧는 달을 보러 삼촌의 손목을 잡고 뒷산에 달맞이 갈 때처럼 가슴이 콩콩거렸다. 추석날보다 더 큰 달이 떠오른다는 신문 기사를 생각하고는 전날 통음(痛飮)한 것도 잊어버리고 오후 3시가 되기를 기다렸다.

예로부터 보름달은 어둠을 몰아내는 밝음, 보다 밝은 세상을 약속하는 기원의 대상물로 숭상되어 왔다. 그래, 새해 들어 정월 대보름 가득 찬 달을 맞이하며 민중들은 갖가지 놀이를 통하여 그들의 공동체 의식을 새삼 일깨우는 한편, 복된 앞날을 다짐하는 놀이를 벌여 왔다.

솟아오르는 보름달을 먼저 보아야 길하다고 서로 앞을 다투어 마을 동산으로 올라갔다. 달이 뜨면 홰에 불을 켜고 절을 하며 소망을 빈다. '달맞이'는 솟아오르는 보름달을 향해 횃불을 땅에 꽂고 두 손을 모아 달에게 갖가지 소망을 빌었다.

또한, 달의 무늬를 보고 월계수와 토끼를 연상하여 달에는 토끼가 산다고 믿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의 의장기(儀仗旗)로 쓰인 월기(月旗)의 기폭에는 둥근 달 속에 토끼가 그려져 있어 이를 확인하여 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임진왜란 때 비롯되었다는 '강강술래'의 가사 속에는 "저기저기 저 달 속에 계수나무 박혔으니 옥도끼로 찍어내어 금도끼로 다듬어서 초가삼간 집을 짓고 양친부모 모셔다가 천년만년 살고지고…"라는 구절이 있어 계수나무가 박힌 달을 이상향으로 보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오늘 바라고 싶은 것은 꼭 하나뿐이다. 큰 욕심을 부리지는 않겠다. 나는 지금까지는 달에 대하여 무엇인가 간절히 바란 적이 없다. 그러나, 오늘은 마음속의 정성을 다하여 빌어보고 싶다. 그것은 울 엄니의 건강이다. 어머니와 한 방에서 자리를 나란히 펴고 지낸지도 꽤 되었다. 그런데 갈수록 눈·귀의 상태가 나빠져 간다. 안타깝다. 지금도 최악이지만 돌아가시는 날까지 더 이상 나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늘은 정월 대보름은 아니지만 욕심껏 빌어보리라. "달하 노피곰 도드샤. 어긔야 우리 엄니 계신 곳까지 비추시라. 제발 우리 엄니 얼굴에 생기가 돋도록 눈·귀를 밝혀주시라.……"

△ 4·3의 아픈 과거를 지켜 본 다랑쉬오름

처음 산으로 차를 몰고 나서는 제주넷 소나기님의 차에 길라잡이로 앉아 다랑쉬오름을 찾아간다. 동부산업도로변의 억새가 제법 가을의 맛을 돋운다. 지난 일요일은 비에 젖어 후줄근한 모습이더니, 오늘 저렇게 의젓한 모습이다. 그걸 보면 사람이나 자연물이나 환경에 따라 얼마나 달라지는가를 증명해주는 셈이다. 남원과 조천을 잇는 남조로 네거리를 지나 왼쪽으로 세미오름과 우진제비를 거쳐 서검은오름과 오른쪽 부대악·부소악을 넘어 대천동사거리에서 왼쪽 송당 쪽으로 꺾어 뒤차를 기다린다.

그 옛날 이승만 대통령이 이곳에 목장을 만들어 낙농(酪農)의 꿈을 부풀렸던 곳이다. 지금은 많이 헐었지만 별장도 남아 있다. 조금 아래쪽 건영목장 입구에 다다르니 입구쪽에 차들이 몇 대 세워져 있다. 영화 '이재수란' 촬영지로 유명한 아부오름 입구다. 영화 촬영 이후 너무 알려져 훼손이 심하니까 조금이라도 오름을 통제하려는 노력으로 한 200m쯤 걸어가도록 해놓은 모습이 안쓰럽다.

송당 마을을 지나 중산간 도로인 16번도로를 따라 높은오름 입구를 지나고 용눈이오름 세거리에서 왼쪽 시멘트 포장길로 들어섰다. 양쪽에 억새가 제법 자라 우리를 소리 없이 맞는다. 이제 4·3때 없어진 마을 터를 지나게 된다. 그리 크지 않은 팽나무 한 그루가 뒤에 대나무 밭을 배경으로 꾸부정하게 서 있다. 이 대나무는 과거 우리 생활의 필수품으로 활용되었다. 그래서 중산간을 돌다보면 옛 집터의 흔적으로 남아 옛날의 비극을 대변해준다.

이곳에서 가까운 벌판 쪽에는 다랑쉬굴이 입을 다문 채 엎드려 있다. 1992년 3월말, 이 굴에서 4·3 희생자 시신 11구가 44년 전, 처참하게 몰살당한 모습으로 발견되어 우리를 경악케 했다. 제민일보 4·3 취재반과 4·3 연구소 공동 조사로 밝혀진 이 현장엔 구좌읍 하도리 출신 3명의 부녀자와 아홉 살 난 어린이가 끼어 있었다 하니 실로 아연할 수밖에. 더구나, 어두운 굴속에 오랜 세월 갇혀 있었던 유해들은 한이 채 풀리기도 전에 화장해서 바다에 뿌려지고 말았다.

▲ 다랑쉬오름과 그 주변 경치

마을 터를 지나 다랑쉬오름과 아끈다랑쉬오름의 중간 지점에 차를 세웠다. 거기 있는 사람들은 아끈다랑쉬에 갔다온 모양으로 아직도 오름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는 듯하였다. 다랑쉬오름은 동서남북 4곳에 길이 나 있는데, 우리는 남쪽으로 가려고 오름 옆길을 따라 들어갔다. 비교적 가파른 이곳 남쪽 길은 다랑쉬 마을과 남쪽으로 탁 트인 넓은 벌판을 볼 수 있는 시원한 코스다.

8년전 처음으로 이 오름을 오를 때의 기억을 되살려 20명의 길라잡이로 맨 앞장서서 올라간다. 심어놓은 소나무 사이에 억새와 띠가 자라고 보리수나무가 자주 눈에 띈다. 전에 왔을 땐 엄청나게 열매가 달려 있어 걸음을 더디게 하더니, 올해에는 해걸이를 하는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곳곳에 쑥부쟁이가 인사를 한다. 오랜만에 구름체꽃이 피어 화려한 모습으로 반긴다.

구름체꽃은 산토끼풀과의 식물로 해발 1,400m 고지 이상 비교적 높은 산악지대의 양지 바른 풀밭 등지에서 자라는 2년초이다. 꽃이 필 때에도 근생엽이 있으며 경생엽은 장타원형과 난상타원형이고 결각상의 거치가 있다. 올라가면서 우상으로 갈라진다. 엽병은 날개가 있으며 밑부분이 넓어져서 원줄기를 감싼다. 8월부터 홍자색 꽃이 줄기 위에 한 송이씩 피는데 원반 모양 꽃차례이며 외총포편은 화살촉 모양이고 가장자리 꽃은 5개로 갈라진다. 한국특산식물로 제주도 및 북부지방의 고산지대의 고원지에 자생한다.

중간쯤에 올라 회원들이 올라오는지 내려다보다가 벌판에 서 있는 집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바로 아래쪽 벌판에는 꼭 우주인이 건설한 것 같은 둥글고 낯선 집같은 것이 몇 개 늘어서 있다. 뒤에 오는 사람이 가봤는데, 방갈로로 지어놓은 것이라 한다. 그래 왜 하필 여기인가. 오름은 멀리서 바라보는 전망이 더 좋다고 생각되는데. 이런 곳에 외따로 떨어져 있으면 벌써 상하수도가 문제이지 않은가. 정말 답답한 사람들이 많구나.

다랑쉬오름은 해발(海拔)이 382.4m밖에 안 되나 전체 둘레가 3,391m에 이르고 산 자체의 높이가 227m인 원뿔형의 오름이다. 게다가 나무가 없는 중간부 위쪽으로부터 무척 가파라 섣불리 덤볐다가는 낭패 보기 일쑤다. 산 정상부에는 크고 깊은 깔대기 모양의 원형 분화구가 있는데, 바깥 둘레가 1,500m로 깊이는 백록담과 같은 115m라 한다. 어떤 사람은 어림잡아 이곳이 산굼부리보다 깊다고 우기나 산굼부리는 깊이가 200∼380m로 나와 있고 왕이메는 101.4m로 이곳보다 조금 얕다.

아끈다랑쉬는 비고가 58m여서 쉽게 오를 수 있는 오름이다. 서사면으로 난 길로 주로 사람이 오르고 북쪽으로 차가 갈 수 있도록 길을 뽑아 놓았다. 정상으로부터 움푹 패인 둘레 1,454m의 굼부리(분화구의 제주어) 안은 풀밭으로 되어 있어 마치 축구 경기장을 연상케 한다. 오름 위는 밋밋한 풀밭인데, 다만 남쪽 정상부에 장식처럼 담을 두른 무덤이 하나 외롭다.

오름에 있는 비문을 보면, 위치가 '월랑봉(月郞峰)'으로 표기되어 있다. 본래 '다랑쉬오름'을 이두식으로 음과 훈을 빌어 표기한 것이다. '아끈'은 제주어인데 '작은'의 뜻으로 '아끈줴기'(음력 이레와 스무이틀날의 조수)같은 데 쓰이는 말이다. '다랑쉬'의 뜻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현평효 박사는 '다랑'을 '높다(山高)'는 뜻의 고구려어 '달(達)'과 같은 계열로 해석하나 그 근거가 확실치 않다. 동남쪽을 바라보니, 용이 누워 있는 모습을 닮았다는 용눈이오름과 한라산의 손자처럼 생긴 손자봉이 뚜렷하다.

● 서산에 지는 해, 동쪽 바다로 뜨는 달

남쪽 정상엔 소사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대부분의 나무들이 바람에 날려 그 씨앗을 퍼뜨리든지 아니면 열매가 새의 먹이가 되어 높은 곳에 씨앗이 전해지는 것인데, 이건 어찌된 셈인지 불가사이다. 왼쪽 시계 방향으로 돌아 12시 되는 곳에 가야 된다. 사면엔 억새가 피어 어서 오라고 손짓한다. 이 억새는 태양을 두고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그 모습이 사뭇 다르다. 넘어가는 태양에 비친 억새가 찬란한 은비늘로 유혹한다.

곳곳엔 쑥부쟁이가 피어 별처럼 반짝거린다. 가는 곳마다 찔레열매의 빨간색과 어울려 아름다움을 연출하고 있다. 아무래도 오늘의 주제 꽃은 구름체꽃으로 해야 될 것 같다. 한라부추는 아직 만개하지 못했고, 절구대나 산비장이는 색이 조금 바랬다. 식물학을 전공한 부 사장이 절구대를 오늘의 꽃으로 추천하나 나는 단연코 거부했다. 오늘처럼 곱게 피어 산의 정상부를 장식했던 구름체꽃을 본 적이 없기에. 그런데, 한라돌쩌귀가 한 군데 피었다. 한라산 가까운 오름에만 피는 줄 알았는데 여기도 피다니 원.

정상에 도착해보니 안 보던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올라와 있다. 사연인 즉, 추석 연휴로 관광 온 아저씨가 아침에 이곳을 올라와 보고 오름에 반하여, 남들이 가는 다른 코스를 포기하고 비행기로 불러 차를 빌려 아주머니를 모시고 왔다는 것이다. 그쯤이면 이곳의 경치를 짐작할 것이다.

정상에 먹을 것을 펼쳐놓고 일행을 부르는데 사진기를 가진 분들이 오질 않는다. 일몰(日沒)을 찍느라 정신이 없는 것이다. 새털구름, 양털구름이 서쪽하늘에 지는 태양을 받아 아름답게 빛난다. 그 속에 아스라히 오름의 고운 곡선이 겹쳐진 모습까지 곁들이니, 생전 처음 보는 아름다운 광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사진 촬영이 끝나 어둑해지는 정상에 둘러앉아 가지고 온 약주들을 돌려 마신다. 그러나, 달이 뜨는 시간까지는 꽤 시간이 남은 모양이다. 나는 막간을 이용해 처음 온 분들을 이끌고 분화구 속을 종단하기 위해 출발하였다. 날이 어둑해져 반딧불이 날아다니는 깔때기 모양의 115m 분화구 속으로 들어간다. 억새가 우거져 있는 굼부리에 들어서서, 일행 10사람을 시켜 함께 '개똥벌레' 노래를 합창했다.

다시 앞장서 서쪽 사면으로 오르다 뒤돌아보니 달이다. 달이 떠오르는 것이다. 색깔이 노랗지 않고 붉으스름하다. 나는 "달이다!"라고 소리치고 나서 재빨리 소원을 빌었다. '우리 엄니 눈·귀를 밝게 해 달라고.' 달 주위는 달의 떠오름을 축하라도 해주는 듯 새털구름이 애교머리처럼 살짝 걸쳤다.

실로 오랜만에 들여다보는 달이다. 어릴 때 보던 달이 아니라고 느낀다. 다시 정상에 다다르니, 부 사장 아드님이 망원경을 걸어놓고 달을 관찰하고 있다. 내가 한번 보고 싶어 하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옆의 나에게 들여다보라고 권한다. 나는 천천히 그 속을 들여다보았다. 실상(實像)인지, 허상(虛像)인지 계수나무 아래서 토끼가 열심히 떡방아 찧는 모습이 어른거린다.

. 2001년 10월 2일 20시 '다랑쉬오름'에서

*** 사진 위는 '구름체꽃'이고, 아래는 오름오름회 양영태 씨가 찍은 '억새와 구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