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오름 이야기

겨울산의 숨결을 찾아서

김창집 2006. 12. 14. 11:34
 

-- 검은들먹, 다래오름북동쪽Ⅱ, 한대오름 답사기

 

 

-- 겨울 숲의 주인공 천남성 열매


♣ 숲으로 떠난 여행


  2006년 12월 10일 흐림.

 처음부터 한대오름으로 갈 예정은 아니었다. 겨울 날씨치고는 별로여서 물찻오름이나 갈까 하고 그곳으로 향하다가 아무도 신이 나지 않은 것 같아 “그러면 바리메 쪽에서 한대오름이나 갈까?” 중얼거린 것이 한대오름에 가는 계기가 되었다. 10명이 차 2대에 나눠 타 있었기 때문에 바로 뒤를 따르는 차에 탄 한 사람에게 전화를 걸도록 하고 견월악이 막 보이려는 데서 유턴했다. 


 뒤차가 의아하다는 듯 따라온다. 전화로 그 이유를 설명하는 사이에 차는 벌써 산업정보대 앞을 지나 세미오름 옆을 통과하고 있었다. 전에 다래오름북동쪽Ⅱ에서 사방을 살피다가 바로 눈앞에 한대오름이 걸려 있어 한걸음에 내달을 수 있을 것 같았던 기억이 문득 머리를 스친 것이다. 나뭇잎이 다 떨어진 뒤이기에 바로 올라가면 되지 않을까 해서다. 사실이지 1100도로에서 삼형제오름 옆을 지나 한대오름에 가기는 너무 멀고, 또 그곳에 무단 주차하였다가 통제를 받는 것이 너무 싫다.

 

 

-- 입구에서 바라 본 검은들먹오름

 

 차는 산록도로에 들어서서 관음사 야영장 앞길을 통과하고 있었다. 한라산은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차를 세워놓은 것이 한라산에도 꽤 오른 모양이다. 옛 섬문화축제장 입구에 차를 세웠다가 국립공원이라 통제를 받았단 얘기를 듣는 중에도 차는 씽씽 잘도 달린다. 1100도로를 넘어 한밝저수지에서 다시 원동으로 통하는 산록도로로 접어들었다. 왼쪽으로 산세미, 궷물오름을 지나는데 노꼬메오름에 올랐는지 입구에 차가 많이 세워져 있다.


 조금 더 서쪽으로 가서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바리메와 족은바리메 사이로 난 길을 간다. 곳곳에 포장이 덜된 곳이 있지만 지프형 차 2대에 나눠 탔기 때문에 걱정이 없다. 안천이오름 가는 길과 나뉘는 곳에서 오른쪽으로 가 다래오름으로 통하는 공초왓 입구를 지난 뒤 조금 더 들어가 왼쪽으로 들어서면, 안으로 시야가 트이고 산속에 공장 같은 건물 두 채가 보인다. 난데없이 그 건물에서 제자 놈이 나타나 이곳은 절인데 출입을 통제한다고 했다.

 

 

-- 검은들먹오름에서 만난 산속 무덤에 있는 비석과 동자석

 

♣ 검은들먹에 오르며


 보기에는 환자들을 수용해 정신 치료를 하는 곳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오름에 간다니까 저 오른쪽으로 조용히 돌아서 가시라 한다. 지난번에 들어갔던 곳으로 철조망을 통과해 30m쯤 오르니 오른쪽에 오래된 무덤이 하나 있다. 동자석에 앉은 이끼로 보아 100년은 더 넘은 것 같다. 지난번에 캐려다 두었던 달래도 더 많이 퍼져 있다. 천남성 열매가 빨간 옥수수처럼 여기저기 누어 눈길을 끈다. 잎이 지고 꽃이 없는 오늘의 숲에서는 버섯과 천남성 열매가 주인공 역할을 한다.


 애월읍에 속하는 검은들먹(黑月岳, 巨門乭岳)의 현주소는 봉성리 산 1번지다. 표고 712.4m의 지반 위에 비고 87m로 우뚝 솟은 둘레 1,633m의 말굽형오름 남쪽에는 ‘다래오름 북동쪽Ⅱ'라는 묘한 이름을 가진 오름과 이어져 있다. 절대보전지역인 이곳은 산림청 소속의 국유지인데, 삼나무 사이에 청미래덩굴 같은 잡목이 섞여있고 정상에 가면 동북쪽으로 시야가 조금 트여 바리메와 족은바리메, 노꼬메 같은 오름을 볼 수 있다.


 왼쪽 능선으로 치우쳐 가시덤불을 헤쳐 더 올라가면 안천이오름이 눈 아래로 보이고 그 너머로 멀리 어승생악이 허연 눈을 쓰고 앉은 모습이 보인다. 숲이기 때문에 쉽게 사방을 분간할 수 없기에 지형을 잘 살피지 않으면 길을 잃는 수가 왕왕 있다. 정상에서 바로 동남쪽으로 이어진 길로 접어들면 바로 다래오름 북동쪽Ⅱ로 가는 길이 나온다. 무덤이 많이 있기 때문에 벌초하러 오가는 사람의 낸 길이다.  


 

-- 겨울 숲의 또 하나의 주인공 여러 가지 버섯들

 

♣ 다래오름북동쪽Ⅱ이라 하기에는


 다래오름에서 북동쪽이라 하기보다 거의 오름 동쪽에 치우쳐 있는 이 이름 없는 오름을 조사 측량하면서 그냥 ‘다래오름북동쪽Ⅱ’이라 하고 만 것은 아무래도 불만이다. 다른 데는 남쪽이라는 이름을 잘 붙이면서 여기서는 ‘검은들먹남쪽’이라 하지 않고 왜 하필 저 건너편에 있는 다래오름을 갖다 붙였을까? 아무래도 다래오름이 검은들먹보다 더 알려져 있어 그런 거라고 해 두자. 


오름에 다니다 보면 정확한 지도와 정보를 가지고 가는 수도 있고, 다른 오름에 갔다가 가까운 오름을 보고 “우리 저기 가보자.” 하고 탐사를 강행하는 수도 있다. 다래오름동북쪽 Ⅱ인 경우에는 검은들먹을 우연히 찾았다가 그 쪽으로 가게 되지만 대부분은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검은들먹오름의 연장으로 생각해버리는 수가 있겠다.


아무튼 검은들먹에 간 사람이라면 능선이 바로 이어져 있어 끝까지 가보게 되어 있다. 나뭇가지에 ‘○○○오름마니아’란 리본을 걸어 놓았다. 자연에는 인간의 흔적을 남기지 말아야 하는데, 맹수들처럼 자신의 다녀간 영역을 표시하기 위한 것일까? 검은들먹에서 동쪽으로 이어진 이 오름의 풍경은 찾는 이들을 어리둥절하게 한다. 안천이는 명당으로 무덤이 많지만 이곳까지 찾아와 이렇게 번듯한 무덤을 쓸 줄이야. 동쪽으로 열린 말굽형 화구 너머로 한대오름이 손에 잡힐 듯하다.  


 

-- 다래오름에 있는 무덤의 비석과 동자석

 

♣ 한대오름을 향하여


 다래오름북동쪽Ⅱ 정상으로부터 동남쪽 사면은 온통 무덤 동네라고 할 만큼 오래된 것들이 많다. 봉분들도 번듯하고 비석과 동자석도 갖춰져 있으며 산담도 넉넉하다. 아직도 후손들이 그치지 않고 찾아오는 이렇게 좋은 봉분이 많다면 이곳도 분명 명당자리에 끼리라. 한대오름(漢垈岳, 漢大岳)의 현주소는 애월읍 봉성리 산1번지와 어음리 산25번지에 걸쳐 있다.


 표고 921.4m, 비고 36m, 둘레 1,526m, 면적 132,263㎡, 저경 407m의 크기로 어원은 분명치 않으며 1100도로에서 시작한 삼형제 말젯오름 서쪽 약 1.5km 지점에 위치해 있다. 전체적으로 완만하게 경사를 이루면서 비고가 낮은 오름으로 2개의 봉우리가 산정부에서 이어져 있다. 길고 완만하게 한대오름이 보이는 곳에서 나침판을 꺼내본 즉, 여기서 바로 남동쪽이다.


 

--  숲에서 가끔 만나는 일엽초

 

 방향을 감지하며 앞장서 걷는다. 비교적 가시덤불이 없이 걷기 좋은 곳을 골라 오르는 길은 낙엽이 적당히 가라앉아 있어 촉감이 그만이다. 공기는 어떤가? 오염원이 전혀 없는 숲길에서 서늘한 공기로 세파에 찌든 허파의 먼지를 씻으니 몸이 가벼워져 날아갈 것 같다. 일주일 동안 쌓였던 스트레스도 한꺼번에 사라진다.


 계속해서 빨갛게 빛나는 천남성 열매가 눈에 잡히더니, 이번에는 분명히 상황버섯으로 생각되는 것이 썩은 나무에 나란히 달려 있다. 가지 끝이 너무 삭아있어 꾸지뽕나무임을 확인 못하는 것이 한이다. 일행 중의 누군가가 버섯은 독이 있으므로 함부로 먹어서는 안 된다고 자꾸 잡아끌어, 이를 따서 누군가의 병을 다스려줄 임자를 만나기를 바라며 못이기는 척 그냥 물러선다.

    

 

-- 한대오름 정상에서 보이는 오름군

 

♣ 한대오름 정상에 올라


 조금 더 가니, 다시 무덤들이 있는지 여러 가지 표지(標識)가 눈에 뜨인다. 그것도 적당히 할 일이지 나무에 흰색이나 붉은색 페인트를 마구 칠해 놓은 것도 모자라 페트병을 마구 꼽아놓는가 하면, 이번에는 플라스틱을 조각조각 잘라 시멘트 못으로 박아 놓았다. 그것도 아주 촘촘히 계속 이어진다. 나무가 비명을 안 질러서 그렇지, 만약 아픈 비명을 지른다면 숲이 요란스러워 다니지 못할 것이다.


 불과 10년 정도 되었음직한 무덤이 두 자리 있었고, 산등성이에는 아주 오래된 무덤이 있다. 후손들은 1년에 한 번은 행사를 치르듯 이곳에 와서 다시 길 표지를 해놓고는 벌초하고 돌아갈 것이다. 능선을 계속 걷는데도 정상이 나타나지 않아 진짜 한대오름이 맞는지 의심스럽다. 두어 번 왔던 기억으로는 꽤 높은 정상에 앉아 북쪽 벌판을 보며 새참을 먹은 기억이 있는데, 전혀 다른 방향에서 올라왔기 때문에 감이 잘 잡히지 않는다.    


 

-- 상황버섯이라고 우기던 것

 

 계속 진행하여 오래된 삼나무가 나타나고 숲 너머 밝은 기운이 뻗치는 것을 보고 그제서야 숲을 빠져나가니 눈앞에 봉우리가 나타난다. 1100도로 쪽에서 올라오는 등산로가 환하게 나있다. 멀리 머리에 허연 눈을 인 삼형제 오름이 보이고, 한라산 쪽은 역시 구름으로 막혀 있다. 산길이 정상까지 뻗쳐 있어 어렵지 않게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완전히 맑은 겨울 날씨가 아니어서 그렇지만 모처럼 탁 트인 시야(視野)에 모두들 탄성을 지른다. 여기서 편안히 앉아 바라보는 오름들의 모습은 색다르다. 서남쪽 이돈이부터 서영아리, 대병악, 소병악, 무악, 그 건너 산방산까지…. 북쪽으로 빈내, 폭낭, 다래, 북돌아진, 궤, 바리메, 족은바리메, 안천이, 노꼬메 등등등. 모두 표고 921m의 한대오름 봉우리를 향해 머리를 조아리는 것 같다.

 

 

-- 분화구 늪지에서 바라본 한대오름 주봉

 

♧ 내려오는 길에서 얻은 교훈


 완전히 열린 두 무덤은 얼마나 사람들이 찾았는지 잔디밭으로 변해 있다. 이곳에 온 기념으로 한 잔이 없을쏘냐? 누군가 가져온 술을 따라 한 바퀴 돌렸다. 요즘 걱정꺼리인 달걀 삶은 것과 과일도 나오고 고구마도 나오고, 안주로 고기적도 나왔다. 이번에 새로운 코스로 한대오름을 오른 것이다. 나와 곽 사장을 제외하고는 여덟 사람이 모두 처음이어서 더 신이 나 있다.


 내려갈 때는 안전하게 길을 익히며 내려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앞장서 천천히 내려오다 아까 보아둔 능선 길로 들어가 보니까 차가 들어온 흔적이 있다. 이곳까지 차는 올라올 수 없었을 테고, 경운기를 개조한 딸딸이란 녀석이 다녀간 게 분명하다. 임도를 따라 올라와 이 능선에 오른 것이다. 분화구 옆에 세우고 벌초하러 간 것이 분명했다.

 

 

-- 겨울 숲에서 만난 바위

 

 봉우리 아래 넓은 분화구가 이제는 늪지로 변해 있었다. 그 규모로 보아 동수악이나 물영아리, 물장오리, 사라악 못지않다. 입구 곧 지나 50년은 되었음직한 아그배나무가 있어 꽃이 피면 장관이겠다.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이 한 줄로 늘어서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나서 북쪽 나무에 걸린 표지를 따라 내려온다. 올 때 보았던 플라스틱을 나무마다 못으로 박아놓은 그 표지다. 우리는 가끔 언 듯 언 듯 보이는 바리메를 향하여 북쪽으로 내려왔다.


 무덤길이 끝났을 무렵부터 앞서거니뒷서거니 하며 걷다가 조금 동쪽으로 쏠린 것 같아 서쪽으로 휘려하니 나침판을 보고 저쪽이라고 동쪽으로 가서 결국 내를 건너고 말았다. 꽤 시간이 걸렸다고 생각하는데 시야가 트이고 보니, 옆에 안천이오름이 버티고 섰다. 길로 돌아오려면 너무 멀어, 앞장서 숲길로 접어들어 바로 남쪽 우리가 차를 세운 곳으로 무사히 갈 수 있었다. 이번 답사에서는 ‘나침판을 보며 걸어도 숲길에선 옆으로 갈 수 있기 때문에 그 때 옮긴 거리만큼 대칭 이동되어 목표지점이 달라진다.’는 너무도 당연한 교훈을 얻은 셈이다.   


 

-- 내려오는 길에서 만난 마지막 나뭇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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