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향토문화 기행

비양도는 어떤 섬인가

김창집 2006. 9. 12. 07:19

-- 섬 속의 섬 비양도 답사(1)

 

 

♧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2006. 9. 10. 일요일. 9시. 한림항 방파제에 매어놓은 비양봉호의 닻줄을 풀어놓는 순간, 움찔 하더니 배가 뒤로 돌며 몸을 휘청거리게 한다. 뒤에서 몸을 추스르고 깃대에 의지하기도 전에 배는 비양도를 향해 부두를 벗어나려고 힘찬 항해를 시작했다. 사방에 꽉 차게 세워놓은 오징어잡이 배들…. 500촉 짜리 1,000촉 짜리 등을 줄줄이 매단 채로 대나무 낚싯대를 매달고 하늘을 향해 포물선을 그리고 있다.

 

 돌아서서 배들을 몇 컷 찍지도 못했는데, 배는 양쪽 방파제 끝의 등대를 벗어나고 있다. 방파제를 벗어나자마자 북쪽에서 밀려오는 커다란 파도에 부딪쳐 한 번 기우뚱하며 물을 갑판 위로 쳐올린다. 밖에 나와 있던 사람들이 기겁을 하고 의지가 될 만한 곳으로 들어간다. 나도 하마터면 한쪽 신발이 젖을 뻔하였다. 가운데 쪽으로 올라앉아 일단 물결을 피하면서 1년 만에 만나는 비양도를 카메라에 담았다.

 

 정원 44명을 태운 비양호는 15분이 못 되어 비양리 방파제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작년에는방파제 끝 부분이 마무리되지 않았었는데, 이번엔 말끔히 단장을 끝내고 우리를 맞는다. 멀리서 섬의 등대만 보고 자라던 내가 처음으로 이곳을 찾은 것이 1976년 여름방학 때였으니까 올해로 만 30년이 되는 셈이다. 세어보진 않았지만 그 동안 열 번은 훨씬 넘게 다녀갔다. 첫 방문부터 잠을 자고 갔는데 오름 모임에 가입하면서는 이곳 민박집에서 1박2일 지내는 답사를 연례로 치르기도 하였다.

 

 

* 한림항에 정박중인 한치잡이 배들

 

 

* 끝없이 펼쳐진 한치잡이 배들 

 

▲ 탐라순력도 속의 비양방록(飛揚放鹿)

 

 내리자마자 호돌이식당으로 가서 12시에 점심으로 먹을 보말죽을 예약하고 오름으로 가는데, 이곳저곳에 흑염소를 기르노라 그물을 쳐놓은 것이 보인다. 조선시대에는 이곳에 사슴을 풀어놓고 길렀는데, 10년 전에는 대신 흑염소를 많이 기르고 있었다. 탐라순력도에 비양방록이 있어, 이곳에 답사도 여러 번 왔다. 탐라순력도는 1702년 제주목사로 왔던 이형상이 제주섬을 돌며 벌인 행사의 장면을 화공 김남길로 하여금 그리게 하고 자신이 내용을 기록한 책으로 한라장촉을 비롯해 41장면이 나오며 보물 제652-6호이다.

 

 그 중 한 그림인 '비양방록'은 전해에 교래리 벌판에서 생포해두었던 사슴을 비양도(飛揚島)에 옮겨 방사하는 그림이다. 이 그림은 무엇보다도 제주목(濟州牧) 서면(西面)의 53개 마을 위치가 한 장의 그림에 상세하게 표시되었을 뿐만 아니라, 제주읍성의 서문(西門)에서 명월진(明月鎭)에 이르는 지형을 담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해안의 지형, 봉수와 연대의 위치, 애월진, 명월진, 항파두리 토성(土城)의 위치가 잘 드러나 있다. 

 

 교래대렵(橋來大獵)은 지금의 정석비행장 주변에서 10월 11일에 사냥하는 그림인데, 많은 병사를 동원하여 사방에서 겹겹이 에워싸 활로 쏘아 잡거나 그냥 생포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날 잡은 내용은 사슴 177마리, 산돼지 11마리, 노루 101마리, 꿩 22마리였다. 그 때 생포한 것을 살려 두었다가 1703년 4월 28일 이곳에 옮겨 방사하는 그림이다. 몇 마리를 풀어놓았는지 기록이 없고, 이곳에 풀어놓아 번식시켰다가 필요할 때 손쉽게 잡아 활용하려는 목적이 있었던 것 같다.


 

* 왼쪽 방파제 끝에 세운 등대와 바로 앞에 보이는 비양도

 

 

* 오른쪽 방파제 끝에 세운 등대를 지나서

 

▲ 비양도(飛揚島)는 어떤 섬인가 

 

 비양도는 행정 구역상 한림읍 협재리에 속하는 섬으로, 한림항에서 정기 연락선으로 15분거리다. 면적은 약 0.4㎢로 비양도는 제주도의 부속 도서 중 우도, 가파도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유인도이다. 섬 자체가 기생화산체인 오름으로 볼 수 있다. 섬을 한 바퀴 도는 일주도로가 개설되어 있다. 오름으로 가는 길은 연락선 부두에서 바로 걸어나가 왼쪽 작은 팽나무 정자에서 오름이 있는 쪽으로 비스듬히 나 있는 골목길로 들어가서 이어진 오솔길을 가다보면 바로 오름으로 오르는 길이 나 있다.

 

 비양봉의 형태는 원추형의 분석구(cinder cone)로 최고봉은 해발 114.m다. 서북∼남서 방향의 아치형 능선을 중심으로 동북사면이 남서 사면보다 가파른 경사를 이루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제3권에는 "서기 1002년 6월에 산이 바다 한가운데서 솟아 나왔는데(有山湧海中) 산꼭대기에 네 개의 구멍이 뚫리어 붉은 물이 솟다가(山開西孔赤水湧出) 닷새만에 그쳤으며 그 물이 엉키어 모두 기왓돌이 되었다.(吳日而止 其水 皆成 瓦石)"고 기록되어 있다.

 

 

* 비양도 포구에 매어져 있는 낚싯배

 

 

 * 꿩을 쫓기 위해 세워놓은 허수아비와 헝겊조각들

 

 일본인 지질학자인 나까무라(中村)는 제주도 화산 활동과 관련, 1002년의 화산분출을 비양도로 추정하였으며, 서기 1007년도의 분출은 군산으로 추정하였다. 비양도는 군산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역사 시대의 화산활동 기록을 갖고 있는 섬이다. 비양도를 이루고 있는 지형적인 요인 중에서 타지역과 다른 것은 길이 약 500m, 폭 약 50m 되는 반달형의 연못이 분석구 기슭을 따라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속칭 '펄낭'이라 불리는 이 연못의 수심은 가장 깊은 곳이 1.5m정도 되는데, 대체로 중앙부가 오목한 v자형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또, 비양도 북쪽 해안가에는 속칭 '애기업은 돌'이라 불려지고 있는 기암을 비롯하여, 돌고래형 및 거북형의 대형 용암괴 등 제주도 본 섬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가 힘든 기암괴석들을 여러 곳에서 관찰할 수가 있다. 이러한 기암괴석들은 보통 '탑상용암', '거북형 또는 돌고래형 화산탄'등으로 소개되고 있다. 높이 약 8m, 최대폭 3m 정도나 되는 돌기형 용암관암맥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유사한 형태의 굴뚝형 용암기둥들이 여러 곳에 분포하고 있다. 이것들은 오직 비양도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기암괴석들이다.

 

 

* 오름 중간에 서 있는 소나무들

 

 

* 능선에 올라서자마자 보이는 정상과 등대

 

 

* 능선에서 본 남쪽 암초와 등대

 

▲ 가재봉 정상에 바라보는 경치

 

 골목으로 들어서서 걸어가다 보니, 닭의장풀 꽃이 유난히 짙은 색으로 파랗게 피어있다. 왕고들빼기 꽃도 심심찮게 보이는데, 노랗다기보다는 흰색에 가깝도록 싱싱하다. 고구마 밭에는 허수아비를 비롯한 울긋불긋한 천이 나부끼고 숫제 그물로 싸놓은 고구마밭도 있다. 이 섬에서 가장 큰 야생 동물인 꿩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다. 아닌게 아니라 오름을 돌면서 또 분화구에서 여러 마리의 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름 길에 접어들어 타이어로 짠 발판을 깔아놓은 걸어 올라가는데, 이제는 소나 염소를 기르지 않아 띠와 억새와 칡이 무성하다. 으아리꽃도 한참이고 가는 길에는 수까치깨도 노란 꽃을 별처럼 달고 있다. 능선에서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대나무로 덮여 있다. 언제 이곳까지 퍼졌는지, 마을이 있는 남쪽에서 이곳까지의 사면은 전부 이대(족대)가 가득하다. 이곳 말고도 다시 작은 화구가 있는 북서쪽 사면에도 많은 대나무가 자란다. 옛날 제주에서는 이이대를 심어 바구니를 만들고 어구를 만드는가 하면 집을 지을 때 벽을 엮고 그 위에 흙을 바르기도 하였다.

 

 정상부 서쪽 사면으로는 철조망이 둘러쳐져 있다. 10여년 전에 부서지기 쉬운 화산재가 조금 드러났더니만 그것이 사람의 발과 풍화 작용이 곁들여져 상당한 넓이로 벗겨져 버렸다. 정상에는 무인 등대가 태양 집열판을 몇 개 매단 채로 서 있다. 어렸을 적부터 이 등대 불빛을 보며 자란 나는 아주 친숙한 곳이랄 수 있다. 한참 동안 한라산 아래로 펼쳐진 본 섬의 경치와 주변을 둘러보게 하고 섬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하였다.

 

 

* 정상 주변에 많이 피어 있는 익모초

 

 

* 내려올 때 찍은 왕고들빼기 꽃

 

▲ 비양도가 이루어지기까지

 

 비양도의 화산분화 과정은 크게 2개의 분출 유형으로 구분된다. 이들로부터 형성된 산물은 베개용암 탐상용암 구조를 나타내는 현무암지대와 스코리아 화산쇄설물과 수리쇄설성 응회암을 형성시킨 분석구 퇴적층 등이다. 초기 분출은 증기 마그마성 폭발로 전환되어 현무암대지 위에 비양도 분석구가 형성되었다. 스트롬볼리언 분출 초중기에는 화산암재 위주로 분출되었고 화산탄, 화산암괴 등이 소량 수반되었으며, 후기로 가면서 화도내에 용암유출이 수반되면서 이로부터 유래된 암력들이 많아진다. 스트롬볼리언 화산분출 말기에는 주로 스코리아 분출물 위주로 분출하여 분화구가 잘형성된 원추형 비양도 지형이 만들어진 것이다.

 

 비양도 화산체에는 현무암용암과 화산암재를 분출시킨 것으로 보이는 분화구 2개가 있다. 이들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분화구가 가장 큰 규모이다. 와륜산의 높이는 해발 70m이고 깊이는 35.7m나 된다. 이 분화구에서 서쪽으로 약 150m 떨어진 분화구는 와륜산의 높이가 해발 55m이며, 그 깊이는 16.5m이다. 따라서 해발 114.1m인 비양도는 이들 두 분화구로부터 분출된 용암류와 화산쇄설성 퇴적물에 의해 형성된 지형이다.

 

 한편 비양도 북서해안에는 최대 높이가 약 35m정도 되는 큰 해식구(sea-stack)와 그 외 작은 것들이 여러 곳에 발달되어 있다. 해식구란 원래는 육지와 연결된 암석 돌출부가 파식작용 등에 의해 육지와 연결된 암석 돌출부가 파식작용 등에 의해 육지와 분리된 지형을 말하는데, 대표적인 예로서는 서귀포 삼매봉 앞의 외돌괴를 들 수 있다. 이곳에 분포하고 있는 해식구에 대하여 현장조사를 실시한 결과, 다공질 스코리아 각력암과 치밀질의 현무암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뿐만 아니라, 수직의 주상절리와 양쪽이 모두 열린 동굴도 2개소가 확인되었다.

 

 

* 정상에서 본 서쪽 봉우리

 

 

* 정상에서 내려오고 있는 회원들

 

▲ 천연기념물 비양나무와 오름의 식생(1)

 

 정상 이곳저곳에는 익모초와 왕바랭이, 어렸을 적 남의 머리에 붙이는 장난을 하던 도꼬마리, 누가 참외를 이곳에서 먹었는지 참외도 몇 개 달려 아직도 아직 파란 채로 커가고 있다. 12시에 죽을 먹기로 했지만 그래도 뭔가 입가심을 하고 가자고 해서 몇 가지 음식만 내놓으라고 했지만 이것저것 내어놓고 과일까지 다 먹어버렸다. 아직 12시까지 시간이 남은 편이지만 운동을 시켜서 데리고 갈 수밖에 없다.

 

 멀리 북쪽으로 암초들이 많기 때문에 그 끝에다 등대를 하나 세워놓았다. 작년까지만 해도 북동쪽 바다에 정치망이 있었는데, 지금은 치워버린 것을 보며 잘 되었다 생각한다. 올라온 곳으로 그냥 가려다 얼마나 무너졌나 보기 위해서 능선을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큰 분화구와 작은 분화구 사이로 가파르고 가시가 엉켜 있는 곳을 뚫고 가는데 갑자기 벌에 쏘인 듯 이곳저곳이 따끔거린다. 가만히 보았더니, 천연기념물인 이곳 특유의 비양나무다. 쐐기풀과에 속하는 이 나무 줄기의 독 있는 가시에 찔린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지금까지 알려진 비양나무의 자생지는 비양도의 분화구가 유일한데 분포지역이 한정되어 있다. 비양나무는 비양도의 중앙에 있는 두 분화구 중 북쪽에 있는 분화구의 중앙 북측 10㎡의 면적에 집단적으로 군락을 이루고 있다. 비양나무가 자라는 곳이 전석지이고 햇빛이 잘 쪼이는 곳인 점을 고려하면 남쪽의 분화구에도 앞으로 자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예상된다. 아닌 게 아니라 남쪽 분화구 깊숙한 곳에서 아직은 작은 것들을 볼 수 있었다.

 

 

* 분화구 안에서 본 정상과 등대

 

 

* 분화구 안에서 본 능선과 구름

 

▲ 천연기념물 비양나무와 오름의 식생(2)

 

 이곳 비양나무 자생지는 제주도기념물 제48호로 1995년 8월 26일에 지정되었다. 비양나무는 쐐기풀과의 낙엽관목으로 높이는 2m 정도로 자라며 줄기는 곧고 가늘다. 잎은 길이 5∼10㎝, 너비는 2∼4㎝로 긴 타원형, 긴 타원상 피침형, 또는 난상장 피침형이며, 끝은 좁고 길다. 잎은 얇고 윗면은 약간 거칠며 뒷면은 흰색 털이 촘촘히 나있고, 잎의 가장자리는 톱니처럼 생겼다. 꽃은 이른봄에 피며 자웅이주이다. 난대성 수목으로 일본의 규슈[九州], 시코쿠[四國] 등지에 자생하고 있다. 

 

 분화구 내외에는 비양도의 분화구 안쪽과 능선에 자라는 관속식물은 56과 150속 191종류이다. 그러나 비양도가 가장 최근에 분화한 화산도로서 역사가 짧고, 토양의 발달이 덜 되었으며, 제주도 본섬과 떨어져 있는 등 식물의 이동이 제한 받고 있는 곳이므로, 앞으로 시간이 경과할수록 점차 식물상이 증가할 것으로 기대되는 곳이다. 이곳에서 자라는 양치식물은 봉의 꼬리, 도깨비고비, 곰비늘고사리, 꼬리고사리, 돌담고사리, 콩짜개덩굴 등 6종이고, 상록활엽수는 남오미자, 까마귀쪽나무, 사철나무, 보리장나무, 보리밥나무, 송악, 마삭줄 등이다.

 

 군데군데 소나무가 제법 컸고, 띠와 억새가 무성하게 자라서 걸음걸이를 방해한다. 눈에 자주 띄는 나무 중에는 산뽕나무와 꾸지뽕나무가 보이고, 제주 특산 섬오가피도 몇 그루 확인할 수 있었다. 시간이 남아 분화구 속을 답사하기로 하고 길을 뚫고 들어갔다. 10년 전만 해도 화산 쇄설물인 송이가 벌겋게 드러나 있었는데, 지금은 돌외, 며느리밑씻개, 환삼덩굴, 산쪽풀, 모시풀, 물통이 등이 그 위를 덮여버렸다. 팽나무 한 그루도 제법 자라 나를 반긴다.  

 

 

* 모시풀을 닮은 천연기념물 비양나무

 

 

* 서쪽 능선의 소나무들

 

♬ 영일만 친구 / 최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