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오름 이야기

□ 제2회 오름오름 축제를 마치고

김창집 2001. 10. 16. 11:49
△ 오름을 건강하게 - 오름오름회

우리 '오름오름회'의 역사는 꽤 오래다. 지금은 오름 동우회가 우후죽순 격으로 나타나 난립하고 있는 형편이지만, 처음으로 오름을 돌아다니며 오름을 소개하고 산에서 일생을 마친 <오름 나그네> 전3권의 저자 김종철(金鍾喆) 선생이 돌아가시고 나서 그 뒤를 이어 오름을 널리 알리고 '오름을 건강하게' 하자는 취지 아래 모인 '오름나그네회'가 그 전신(前身)이다.

그런 취지 아래 작년부터 한라문화제의 일환으로 시작된 '오름오름 축제'가 올해 두 번째를 맞았다. 후원 단체가 북제주군이어서 1회 때 정월 대보름날 '들불 축제'를 여는 북제주군 애월읍 소재 '새별오름' 일원에서 실시했는데, 이번에는 동쪽으로 옮겨 북제주군 구좌읍 소재 '높은오름'과 '동거미오름'에서 갖기로 계획을 세우고, 지난 일요일 예행 연습까지 마쳤다.

당초 회원 20여명을 포함 대형 차량 3대에 나눠 탈 수 있는 120명을 모시고 실시하려고 한 것이 마감 날 대거로 몰리는 바람에 200명이 넘어버렸다. 즐거운 비명이라고나 할까, 주최측에서는 문제가 심각했다. 버스 1대를 늘려 45명씩 180명을 수용한 후 회원들은 승용차를 이용하기로 하고, 예산상 식사도 도시락 180개만 시키고 회원들은 집에서 싸 오기로 했다. 나중에 전달이 잘 안돼 밥이 모자라 곤혹을 치렀지만.

우리 오름회가 '오름을 건강하게'라는 슬로건을 내건 이유는 간단하다.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오름을 유원지로 잘못 알고 오름을 마구 유린하고 있는데, 우리 제주도의 오름의 중요성을 바로 알려 오름에 오를 때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줌으로써 오름을 사랑하고 보호하는데 동참하게 하려는 목적에서다. 자연적인 차원에서 보면, 오름은 제주도의 허파이자 여과기이다. 오름에 숲이 있으므로 제주의 공기를 더욱 맑게 하는 것이며, 송이라는 화산쇄설물이 빗물을 걸러주어 세계에서 제일 맛있는 제주 생수가 탄생되는 것이다.

▲ 오름에 오르기 전에 알아둬야 할 것들

축제(祝祭)를 잘 치르려면 먼저 준비가 필요하다. 차 4대에 안내를 담당할 회원을 배치하여 이동 도중에 간단하게 오름에 대한 소개와 산행에 필요한 여러 가지 사항을 전달하도록 하였다. 기대에 부풀어 있는 참가자들에게 될 수 있으면 그 기분과 차창 너머로 보이는 경치를 즐길 수 있도록 안내하면서 오름오름 축제에 대해 유인물을 통해 숙지하도록 하였다.

'오름'이란 독립된 산 또는 봉우리를 이르는 제주 방언이며, 그것은 곧 화산도(火山島)인 제주도의 한라산 자락에 산재하는 기생화산들이다. 그 수 368개. 한 섬이 갖는 기생화산의 수로서 이는 세계 최다이다. 지중해 시칠리아섬 에트나 산(山)의 기생화산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그 수는 제주도의 그것에 훨씬 못 미치는 약 260여 개이다. 에트나산과 한라산이 활화산과 휴화산이라는 차이점이 문제가 된다면 몰라도 사실상 숫자가 월등한 한라산의 기생화산이 세계 제일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 밀도를 계산해 보면 대략 5.5㎢에 하나 꼴이며 특히 한라산을 중심으로 동·서부에는 매우 조밀하게 분포돼 있다.

'오름’이라는 말은 본디‘오르다’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제주도의 방언으로, 한라산 자 락과 제주도 곳곳에 흩어진 기생화산들을 일컫는다. 설화에 따르면, 거신(巨神) 설문대할 망이 한라산을 만들려고 치마폭에 흙을 담아 나르면서 한줌씩 떨어뜨린 흙덩이가 오름을 이루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질학적으로 볼 때 대부분의 오름들은 2만5천∼10만년 전의 화산 활동으로 형성됐으며, 두어 군데는 1002년(고려 목종5)과 1007년에 화산 폭발이 있었다.

오름의 형태는 끝이 무딘 원추형이 많은 편이지만, 엎어진 주발이나 거룻배 모양인 것도 있다. '굼부리'(분화구)의 형상도 원추형(산방산), 원형(아부오름), 말굽형, (용눈이오름) 원형+말굽형(도너리오름) 등 매우 다양하다. 또한 물장올, 논고악, 거문오름, 사라오름, 물영아리 등의 분화구에는 한라산 백록담 같은 화구호가 형성돼 있다.

제주도의 오름은 부당한 외세에 대한 제주 사람들의 항쟁 거점이었다. 애월읍 항파두리성 부근에 있는 파군봉(破軍峰)과 붉은오름은 몽고군에 대한 삼별초군의 최후 항전지였으며, 애월읍 봉성리의 새별오름은 고려 공민왕23년(1374) 최영 장군이 그 때까지도 제주도의 지배자로 행세하던 몽고인들을 격멸시킨 곳이다. 그리고 4·3사건 당시에는 새별오름, 새미오름, 누운오름, 정물오름, 서검은이오름 등 많은 오름들이 무장대의 활동 근거지였으며, 섯알오름, 다랑쉬오름 등에서는 무고한 많은 양민들이 토벌대에 학살되기도 했다.

△ 오름오름 축제장으로 가는 길

선발대의 선도로 제주시 종합운동장 수영장 옆을 출발한 4대의 버스에 탄 참가자들 중에는 처음으로 오름에 오르는 사람이 의외로 많았다. 시가지를 벗어나 동부산업도로에 들어서니, 양쪽에 서서 우리를 환영하듯 손을 흔드는 억새 무리와 노랗게 익어가는 귤이 분위기를 사로잡았다. 자세히 보면 길섶에 피어난 들꽃들과 서서히 물들기 시작하는 나뭇잎들도 한 몫 거들고 있었다.

바농오름을 시작으로 양쪽으로 보이는 오름을 소개하면서 서서히 오름으로 시선을 유도해본다. 왼쪽에 새미오름이 나타나고, 뒤 이어 작년에 나에게 벌침을 일곱 방이나 놓아준 우진제비, 그 아래로 커다란 밤톨 두 개를 세워 놓은 듯 솟은 웃밤과 알밤. 다음으로 길에 바짝 다가선 것이 서검은이와 부대악이다. 부소악을 지나자 얼마 없어 나타나는 곳이 대천동 4거리.

주유소가 있는 이곳에서 오른쪽 한라산 방향으로 가면 산굼부리 옆을 통과해 교래리에서 남조로와 5·16도로로 통한다. 곧바로 동쪽으로 가면 성읍리 민속마을을 지나 성산이나 표선으로 갈 수 있다. 우리는 왼쪽으로 돌아 송당마을을 통과해 높은오름으로 갈 것이다. 이곳 송당목장 지대는 이승만 대통령 당시 '낙농 제주'의 깃발을 높이 들었던 곳이다. 그때 대통령이 머물렀던 별장이 아직도 남아 점점 낡아가고 있는 형편이다.

송당 마을 상동 삼거리에서 비자림으로 가는 1112번 도로 오른쪽, 성산읍 수산 방향으로 가는 국도 16호선으로 방향을 바꾸었는데, 메밀밭에는 소금을 뿌린 듯 하얗게 피어 있다. 이곳 흙은 너무 가볍고 진기가 없기 때문에 밀감밭이 드물고 후박나무, 담팔수, 동백, 녹나무, 비자나무, 참식나무 등의 상록 정원수를 키우는 곳과 당근, 더덕, 콩, 감자 등을 재배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구좌읍 공설묘지 표지석이 서 있는 진입로 입구에서 차를 세우고 모두 내려 오솔길을 따라 걷는다.

▲ 높은오름, 아직도 남아 꽃을 피운 산도라지

길 양쪽에서 억새꽃이 도열해서 맞는 오솔길에 200여명의 긴 행렬이 이어졌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웃음꽃을 피우며 걸어가는 참가자를 보며 축제 준비하면서 고생한 보람을 찾는다. 길가에 까맣게 익은 머루가 달려 있길래 따서 한 방울씩 나눠줬더니, 진짜 오랜만에 맛본다고 즐거워한다. 선발대가 열어 놓은 길로 천천히 올라간다. 이 오름은 주변에 유일하게 표고가 400m 이상 되는 오름으로 능선미가 선하고, 주위에 흩어져 있는 뭇 오름을 압도하는 느낌을 주어 높은오름이라 불린다.

남동사면에 뻗어 내린 등성이가 비교적 완만하고 군데군데 바위가 박혀 있으며, 3개의 작은 봉우리로 이루어져, 가운데 우묵한 원형 분화구가 패어 있고 남쪽 기슭에는 구좌읍 공설묘지가 조성되어 있다. 주변의 '다랑쉬'와 함께 비고(卑高)가 높으면서도 오름의 원형이 대체로 잘 보존되고 있으며, 오름 정상에서의 경관이 뛰어나 이 두 오름의 정상부에서는 행글라이더와 페러글라이딩 장소로 많이 이용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오늘은 405.3m의 정상을 경사가 높고 긴 북쪽 면으로 오른다. 전망이 좋고 들꽃이 많은 코스이기 때문이다. 풀밭에는 벌써 들꽃이 활짝 피어 있어 여기저기서 환성이 터져 나온다. 쑥부쟁이가 골고루 피어 있고 섬잔대도 무더기를 이룬다. 한라부추는 아직 꽃봉오리를 터뜨리지 않은 채이고, 하얀 물매화가 이제야 하나둘 피어난다. 산박하꽃도 작고 수줍은 모습인데, 야고가 한 송이 머리를 삐죽이 내밀었다.

중턱에 돌담을 두른 무덤이 있어 잠시 쉬면서 사방을 둘러본다. 구좌읍은 오름의 일 번지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중산간 지대에 오름이 널려 있다. 눈앞 돝오름이 옆에 비자림을 품고, 그 건너에 지난 1월 1일 감격의 일출을 맞은 둔지오름이 뚜렷하다. 추석에 달맞이하던 다랑쉬오름은 비자림 동쪽에 의젓이 앉아 있다. 그 옆 아끈다랑쉬와 용눈이오름 사이로 멀리 성산일출봉이 그 뒤 우도의 쇠머리오름과 나란히 어깨를 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무덤 위로부터 정상까지는 억새밭이다. 억새가 하늘거리는 사이로 나 있는 길을 따라 구불구불 오르는 모습이 아래로 이어진 행렬과 이어져 또 하나 진풍경을 연출한다. 정상에서 오른쪽으로 천천히 분화구 주위를 한 바퀴 돌며 주변 경치와 들꽃을 보게 한 뒤 남쪽 경사면에 불러 앉히고 본 행사를 시작했다. 먼저 회장의 환영 인사가 있었고, 다음으로 나의 오름 강연이 이어졌다.

오름 강연은 150만년 전 제주 땅이 태평양 위로 솟아나기 시작한 때부터 4차에 걸친 제주섬의 형성 과정을 설명하고, 대부분의 오름이 완성되는 10만년에서 2만5천년 전 사이 온 섬 분화구에서 빨간 불꽃을 뿜어내던 화산의 광경을 상상하도록 했다. 물론 일제히 뿜어내진 않았겠지만 백록담 분화구를 가운데 두고 돌연 이곳 저곳에서 피어오르는 화산은 환상적이었을 것이다. 나는 오름을 오를 적마다 그 광경을 떠올리면서 힘이 불끈불끈 솟아남을 즐긴다. 오름 강의는 주변에 있는 오름을 소개하는 것으로 마쳤다.

내려가는 곳은 비교적 쉬운 남동사면으로 다음에 오를 동거미오름 쪽이다. 내려가 두 오름 사이의 넓은 풀밭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였다. 내려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뒷정리를 하고 내려가는데, 아무래도 낯익은 꽃이다 싶어 자세히 보니, 도라지였다. 물론 도라지야 재배하는 밭에 가면 흰꽃, 보라꽃 많이 볼 수 있지만 이제 와서 산에서 본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이 주변 좌보미오름과 백약이오름에서 많이 보았는데, 캐어가 버려 요즘은 좀 뜸했었다. 그것도 하나 둘이 아니라 여러 곳에 피어 절정에 이르고 있었다.

△ 동거미오름, 오름이 가질 수 있는 모양을 다 가지고 있어

도시락을 맡긴 식당에서 길을 잘못 찾는 바람에 시간이 조금 지체되기도 하였으나, 시장이 반찬이라고 모두들 맛있게 먹어주었고 절대수가 부족한 관계로 서로 나눠 먹게 되면서 아무 것도 안 남겨 음식물 쓰레기 제로의 상태가 되어 더 뜻깊었다. 앞으로 산으로 갈 때는 음식을 조금 부족하게 갖고 가 맛있게 나눠 먹고 쓰레기를 남기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김종철 선생님의 <오름나그네> 1권 맨 처음으로 소개되어 있는 이 오름은 다른 오름과는 아주 다른 복잡한 형태를 갖고 있다. 즉 피라미드형 봉우리가 있는가 하면 돔형 봉우리가 있고, 깔때기모양의 원형 분화구가 둘 있는가 하면 삼태기모양의 말굽형화구도 갖고 있는 보기 드문 복합형 화산체로서, 전체인 모양은 남서향으로 벌어진 말굽형 화구를 이룬다. 우선 오른쪽 피라미드 형 봉우리를 오른다. 경사가 너무 심해 자칫하다가는 아래로 구르기 십상이다.

그 정상에서 서쪽에 살며시 누워 있는 나지막한 문석이오름을 보며 킥킥거리는 일행이 있었다. 벌서 알아차린 모양이다. 이쪽을 향해 다리를 벌리고 반듯이 누워있는 나신(裸身)의 여인, 사타구니에 해당되는 곳에 우연인지 일부러 심었는지 음모와 옥문이 완연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아니, 완연하다기보다는 일부러 강조해 놓은 것처럼 선정적이다. 남쪽에 또 하나 독립된 피라미드형 봉우리는 팽팽한 여인의 유방을 연상시킨다. 비록 정상에 무덤이 하나 있어 유두(乳頭)가 함몰된 것처럼 보이지만.

가파른 봉우리를 내려와 위에 위치한 분화구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 넓지 않은 그곳엔 키 큰 나무는 없고 상산과 찔레 같은 비교적 작고 가느다란 나무가 억새와 함께 자라고 있다. 그곳에서 몇 년 전 양하를 본 기억이 있어 양하간이 있나 보려고 다가서는데, 썩은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송아지인지 노루인지 분명하지는 않으나 무언가가 죽어 썩는 냄새다. 코를 막고 숲속으로 머리를 내미는 순간 어린애 주먹만큼씩 큰 양하간이 박혀 있어 대여섯 개를 캐고 나왔다.

다시 동쪽 능선으로 올라 아래로 내려다본다. 오름 남서쪽에서 북동쪽기슭에 이르는 동반부의 저지대 일대는 곶이라 불리는 밀림지역으로 구릉의 연속인데다 심한 굴곡을 이루며, 화구 없는 화산체인 용암암설류의 언덕들이 새끼 오름인 양 볼록볼록 솟아 있다. 340m의 봉우리를 중심으로 북서사면 일부에 낙엽수와 말굽형 화구 안의 잡목들 외에는 풀밭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우뚝 솟아있는 봉우리들과 매끈한 모양으로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동쪽 사면 아래로는 제주 특유의 4각형의 산담을 두른 무덤이 떼지어 명당 자리임을 증명한다.

오름 사면이 둥그렇고 층층으로 언덕진데다 산상에서 사방으로 등성이가 뻗어나간 모습이 마치 거미집과 비슷하다 하여 옛날부터 거미오름이라 불려 왔다고 하나 분명하지 않고 일명 동검은오름, 동검은이라고도 하는 것으로 보아 동검은이가 줄어져 동거미가 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는 이곳에서 멀리 바라다 보이는 조천읍 선흘리에 있는 검은오름(서검은오름)과 구분하여 부르는 이름으로 한자로는 동검은악(東巨文岳), 동거문이악(東巨文伊岳)으로 표기하고 있다.

▲ 아이들에게 인기 끈 퀴즈, 행사를 마치면서

북쪽 산등성이에 앉혀놓고 마지막 퀴즈 행사를 벌였다. 앞에 20여 명의 아이들을 앉히고 뒤에 어른들을 포진시킨 다음 어린이 위주로 오름과 들꽃 이름 알아맞히기 문제를 진행하였다. 그 중에는 부모님과 같이 한 달에 한번씩 산에 오르는 아이들이 있어 "저요! 저요!"를 외치는 통에 어른들에게 돌아갈 문제는 없었다. 하긴 어제 저녁 상품을 준비하면서 대형 문구점에서 아이들 위주의 상품을 싸놓긴 했지만. 하도 많이 아는 어린이들이 있어 한번씩만 기회를 준다고 했으나 결국 두 어린이가 상품을 못 받고 말았다.

내려올 때는 또 다른 길을 이용하였다. 미리 연락해 두었기 때문에 문은 모두 열려 있었다. 손지오름 옆으로 난 오솔길은 억새가 피어 끝까지 우리를 배웅해 주었다. 돌아오는 길에 우리 1호차에서 한 분씩 마이크를 넘기면서 소감을 말하는 기회를 가졌는데, 모두들 감회가 새로웠다고 말한다. 특히, 동여중 같은 곳에서는 오름에 다니는 동아리 일곱 분의 선생님이 와서 앞으로 학생들을 오름에 데리고 갈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배웠다고 한다.

초등학교 선생님도 많았는데, 특히 들꽃 이름을 알 수 있어 좋았단다. 무엇보다도 이들에게 오름 오르는 목적과 오름 사랑하는 방법을 알려준 계기가 되어 기쁘다. 그 동안 이래저래 준비를 하면서 소비했던 시간이 헛되지 않았구나 생각하며 우리 오름이 깨끗하고 더 건강해지길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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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위는 높은오름에서 본 도라지꽃이고, 아래는 따라비오름의 억새입니다. 사진은 오름오름회 양영태 찍음.
오르미의 홈페이지에서 ( http://cheju.halla-c.ac.kr/~yty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