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한라산, 꽃과 단풍은 졌어도

김창집 2006. 10. 29. 00:31

 

 

며칠 간 운동을 못한 관계로 온몸이 굳어지는 것 같아
오늘은 열흘을 덮어두고 사라봉으로 운동을 가리라 마음먹고 집을 나섰는데,
문득 한라산이 보고 싶어 영실(靈室)로 차를 몰았다.

 

1100도로 휴게소를 지나고 영실 입구로 들어서자
청정(淸淨)하고 찬 기운이 온몸을 엄습했다.
적송(赤松)에서 뿜어 나오는 청아(淸雅)한 향기가
열어놓은 차창 안으로 스며든다.

 

커다란 주차장에 이르렀을 때 승용차만 줄을 서 있고
대형 버스는 그대로 세우고 12인승 두 대가 무료로 휴게소까지 실어 나른다.
내 차까지만 주차할 수 있고 나머지는 길옆에 주차해야 한다고 했다.

 

 


이 주차장 북쪽에는 옛날 국성제를 지냈다는 존자암으로 가는 길이 있다.
석가모니의 제자인 발타라존자가 세운 암자였다는데 이해가 가질 않는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우리 불교 역사를 새로 써야 할 것이다.   

 

차를 세우고 휴게소 옆으로 난 등산로 입구에 들어섰다.
벌써 올라갔다 오는 사람들도 있다.
이곳은 한라산 등산 코스 중 가장 짧은 코스지만 1400m에서 1700m는 너무 가파르다.

 

 


10월 15일 경의 사진에는 단풍이 너무 곱더니
대부분의 낙엽수는 거의 잎이 떨어져 버리고 꽃들도 이미 졌다.
그것을 입증이나 하듯 물기가 있는 곳엔 서릿발이 깊다.
 
이곳 영실은 가슴 아픈 오백 형제의 전설이 얽힌 곳이다.
어느 날 동냥 나간 아들들을 위해 죽을 쑤던 어머니가 가마솥에 자신의 몸을 던졌는데
죽을 다 먹은 후에야 그 사실을 알고 부끄러워 그 자리에 돌이 되었다는….

 

 


냇물 두 곳을 지나고는 본격적으로 가파른 곳을 10분 정도 오르니
사방이 트이고 볼레오름과 어스렁, 이스렁오름이 나타난다.
그 뒤로 길게 구름 띠가 펼쳐졌다.

 

빨갛게 익은 빗살나무 열매가 곳곳에서 단풍 대신 분위기를 돋우고
영실의 기암절벽이 둘러쳐 있어 그를 뒷받침한다.
이미 꽃과 단풍은 졌어도 한라산은 너무 좋은 곳이었다.

 

  
'나직이 울리는/ 구름의 말/ 풀잎의 말/ 그 아득한 곳의 물소리
언제나/ 내 더럽히지 않은 몸으로/ 한 세상 귀 기울여 살려했는데
내게 이르는 모든 것/ 내게서 떠나는 모든 것/ 먼 지평(地平)에 구름 모이면
산의 원근이 뚜렷한데/ 끝내 내 생각이 미치지 못하면/ 산 하나를/ 마음으로 비운다.'

 

이런 서귀포 시인 한기팔 선생의 '한라산'이 아니어도
충분히 아름답고 충분히 넉넉한 품을 가진 한라산은
언제나 나를 감싸안아 주는 모성애의 본능을 지녔다.

 

 
 '입이 없어 할 말을 잊은 건 아니어라. 차라리 벙어리가 되고 싶은 남해의 고아여라, 고삐 풀린 구름 식솔 거느리고 멀리 대륙을 부르는 당신은 바로 하늘일 수도 땅일 수도 없는 천형(天刑)의 기다림이어라.'라고 읊은 제주시 출신 김종원의 시구(詩句)가 어른거린다. 

 

장면은 바꾸어 한 평생을 오름과 산과 같이 살았던 김종철 선생이 좋아했던 선작지왓.
지평선에 아주 작게 탑궤가 걸렸다. 
어느 해던가 추모제를 지내고 갔던 방아오름 형제들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20여 년 전만 해도 이 코스로 서북벽을 통해 백록담과 정상으로 갔었는데
지금은 그곳이 심하게 파손되어 갈 수 없음이 섭섭하지만
웃세오름 대피소 문고리만 잡았다가 선걸음에 돌아왔다.

 

오다가 노루샘에서 물을 마신 후 그 병에 샘물을 긷는다.
나이 많은 어르신으로부터 어린아이까지 종종 걸음으로 갈 수 있는 곳
삼신산(三神山)의 하나인 한라산이여! 영원하라.

 

  

♬ 청산에 살어리랏다 - Mischa Maisky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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