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푸른 하늘에 일렁이는 억새

김창집 2006. 10. 30. 10:42

 

 

어제는 중학교 총동창회 체육대회 참석차 모교에 갔습니다.

장소를 조금 옮겨 새로 지은 건물들이라 조금은 낯설어도

자주 만나지 못하던 옛 얼굴들과 만나는 즐거움을 누렸습니다.


술을 좋아하기로 선후배들에게 소문난 터여서

뒤편에만 있으면 끌려가서 술을 마셔야 했습니다.


술도 좀 덜 겸 디카를 들고 바로 이어지는 바닷가로 나섰습니다.

개발의 바람이 몰려와 해안도로가 나고 건물과 양어장이 들어섰지만

이렇게 가을 햇빛에 반짝이는 억새가 조금 남아 있었습니다. 


기분 좋은 하루가 되시길 빕니다.

 

 

♧ 가을 억새 - 정일근


때로는 이별하면서 살고 싶은 것이다.

가스등 켜진 추억의 플랫홈에서

마지막 상행성 열차로 그대를 떠나보내며

눈물 젖은 손수건을 흔들거나

어둠이 묻어나는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터벅터벅 긴 골목길 돌아가는

그대의 뒷모습을 다시 보고 싶은 것이다.

사랑 없는 시대의 이별이란

코끝이 찡해오는 작별의 악수도 없이

작별의 축축한 별사도 없이

주머니에 손을 넣고 총총총

제 갈 길로 바쁘게 돌아서는 사람들

사랑 없는 수많은 만남과 이별 속에서

이제 누가 이별을 위해 눈물을 흘려주겠는가

이별 뒤의 뜨거운 재회를 기다리겠는가

하산길 돌아보면 별이 뜨는 가을 능선에

잘 가라 잘 가라 손 흔들고 섰는 억새

때로는 억새처럼 손 흔들며 살고 싶은 것이다.

가을 저녁 그대가 흔드는 작별의 흰 손수건에

내 생애 가장 깨끗한 눈물 적시고 싶은 것이다


 

♧ 억새꽃 울어 예는 강가에 - 윤용기


몽롱한 가을 밤

산산조각 부서지는 파도의 포말처럼

육신의 구석구석이 갈가리 찢겨 나가는

고통이 엄습해 온다

긴긴 밤 홀로 지새우는 몽환의 환자처럼


깊어 가는 가을 밤

우뚝 솟은 빌딩 숲 사이로

언뜻언뜻 비쳐 지나가는 몇 개의 별들은

1평 남짓 전동차 운전실 유리창에

부딪혔다 사라진다

유년의 아련한 슬픈 기억들의 편린처럼


달리는 전동차는 종점을 향해,

자정을 향해 정해진 궤도 위에

달리는데

지나온 내 흔적의 조각들은

잊혀진 계절을 따라 풀섶에 파묻히고

하이얀 억새꽃 울어예는 강가에

나 홀로 외로이 서 있네


깊고 깊은 가을 강 한 가운데에


 

♧ 가을 억새밭 - 윤홍조


저토록 아름다운 물결을 보았는가 굽이치며 흘러가는 물줄기를 보았는가

굽이굽이 산자락 굴헝을 넘어 유유자적 길 떠나는 뒷모습

내를 이루어 흘러가는 물줄기를 보았는가

분분한 세상 소리 소문 없이 바람의 발길 따라 몸을 사루는

속살결 부드러운 물줄기를 보았는가

이부자락 펼친 듯 세상을 감싸며 넘실거려 흘러가는 비단필의 물결

몸짓 황홀한 물줄기를 보았는가

수많은 발길 환호하며 달려와 호소해 갈구하는 사랑 둬 두고

기뻐 흘러가는 물줄기를 보았는가

저 가을 억새밭을 보았는가.


 

♧ 억새풀 - 도종환


당신이 떠나실 때 가슴을 덮었던 저녁 하늘

당신이 떠나신 뒤 내 가슴에 쌓이는 흙 한 삽

떠나신 마음들은 이런 저녁 모두 어디에 깃듭니까

떠도는 넋처럼 가으내 자늑자늑 흔들리는 억새풀.


 

♧ 억새 - 홍수희


그리워도 그립다 말하지 않네

보고파도 아닌 체 먼 산만 보네


기다리다 돌아서면 등 뒤에 서서

눈물처럼 하얗게 손짓만 하네



♧ 억새꽃 . 2 - 양전형

  

하얀 손수건으로 눈물 훔치던 목이 긴 여자

바람굿에 서서히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징소리마다 더 크게 휘뚝휘뚝 서러운 저 무당춤

어머니는 가던 길 돌아와 한 새벽을 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