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라산 숲길
스와아-. 영실(靈室) 입구 공터에 차를 세워놓고 내리는 순간, 서늘하면서도 맑은 바람 한 줄기가 소나무 숲으로부터 불어와 가슴 깊숙한 곳까지 씻어준다. 실로 오랜만에 맞는 쾌적한 공기다. 어젯밤만 해도 30도를 오르내리는 열대야(熱帶夜) 현상으로 잠을 설치지 않았는가.
이게 몇 년 만이지? 아득하다. 서른다섯 해? 여기로 오길 잘했어. 버릇처럼 문이 잠겼는지를 확인하고 돌아서 산길로 접어들었다. 길은 포장이 잘 되어 있어 걷기엔 편했으나 발에 밟히는 촉감이 너무 딱딱하다. 도시의 포장길이 싫어져 자연을 찾는 사람은 누구나 보드라운 흙을 밟아보고 싶을 터인데, 1,000m 고지가 넘는 이곳 한라산 기슭까지 이렇게 길을 만들어 놓은 게 과연 잘한 일인지 원.
과거 젊었을 때 자주 걸었던 이 길은 수로(水路)를 따라 생긴 전형적인 산길이었다. 그래 그 분위기가 좋아 이곳을 자주 찾곤 했다. 1960년대 중반,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온 뒤 백수(白手)로 빈둥거리는 꼴을 식구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나는 답답할 때마다 배낭 하나 달랑 메고 산에 올랐다. 그럴 때마다 한라산은 어머니처럼 포근하게 나를 감싸 토닥거려 주었다.
누구든 군에서 제대할 무렵엔 사회에 나가면 많은 일자리가 기다리고 있어, 즉시 좋은 직장을 골라 마음껏 일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에 부풀게 된다. 그것은 군대라는 조직에 갇혀 3년 동안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일을 억지로 하며 견뎌야 했기 때문에, 그것을 이겨낼 정도면 어떤 일인들 못하랴 하는 심리에서 오는 현상이리라.
그러나, 막상 제대를 하고 보니 이 좁은 제주 땅에는 갈만한 직장이 흔치 않았다. 가끔 지방지에 나오는 구인 광고를 보고 찾아가 보면, 자리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소위 배경과 돈이 통하던 시절이었다. 그래, 공채를 해야 한다는 규정 때문에 애매한 사람만 들뜨게 하고 들러리를 서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알고 난 뒤부터는 정말 살맛이 안 났다.
소나무 사이로 드문드문 갈참나무가 보인다. 표고버섯의 숙주(宿主)가 되는 나무인데도 용케 살아 남았다. 간간이 솔비나무, 예덕나무, 보리수, 때죽나무, 참꽃나무가 섞여 있고, 머귀나무 한 그루엔 매미가 시커멓게 매달려 합창 연습을 하고 있다. 저 녀석들은 알로 세상에 태어난 뒤 7년간을 답답하고 습한 땅속에다 지내다, 성충이 되어 탈피(脫皮)하고 세상에 나와 열흘 정도 저렇게 자유로이 노래하며 날아다니다 알을 낳고 죽어간다. 종류에 따라 그 연령에 차이가 있으나 북아메리카에는 17년간 땅속에 사는 것과 13년간 사는 것도 있단다.
삼나무에 몸을 숨기고 한참 동안 매미를 살피고 있는데, 승용차 서너 대가 굉음을 내며 지나간다. 순간, 이에 놀란 매미들이 푸드덕 소리를 내며 오줌을 찍 갈기고 흩어진다. 불현듯 36년 전 일이 생각난다. 그러고 보니, 내가 중학교 교사의 길을 택한 것도 저 매미와의 인연 때문이 아닌가. 그래 바로 이 부근이다.
답답해서 산을 자주 찾던 시절, 골똘히 생각에 잠긴 채 이곳을 지나고 있었는데, 누가 죽은 듯이 길섶 나무에 바짝 붙어 있어 자세히 살펴보니, 중학교 2학년 때 담임이셨던 성일승 선생님이셨다. 이외이기도 하고 반갑기도 해서, "선생님 여기서 무엇하고 계십니까?" 하고 큰 소리로 외쳤더니 지금처럼 나무 위의 매미가 놀라 날아갔던 것이다. 생물을 담당하고 계시던 선생님께서는 일제강점기에 이곳 사람이 아니면서도 제주도의 모든 것, 그 중에서도 특히 나비를 중심으로 곤충들을 채집하고 연구한 석주명(石宙明) 선생을 좋아하셔서, 그가 이루지 못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그렇게 돌아다니신다고 했다.
그 후 주말이면 선생님을 따라 산으로 들로 쫓아 다녔다. 선생님은 내가 갈 길을 정하지 못하고 헤매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교사야말로 한 번 도전해 봄직한 직업이라고 전제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도 할 수 있으며, 이 세상을 빛나게 할 훌륭한 제자를 길러낼 수 있는 무엇보다도 보람찬 직업이라 하셨다. 그리고, 교사는 권력은 가지지 못하지만 노력 여하에 따라서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을 수도 있으며, 보수는 먹고 살만큼은 되니 매력적이 아니냐고 덧붙였다.
마땅히 다른 대책도 안 서 있는 때라,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이 솔깃하게 다가왔다. 그래서 한 번 도전해 볼만한 가치라 있다고 마음먹고, 6개월간 준비한 뒤 공개 채용 순위 고사를 보고 세상 사람들이 일컫는 대로 '중학교 과학 선생'이 되었다. 그로부터 남들처럼 정신없이 바쁜 나날이 흘렀고, 어느 날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줄어든 정년 덕택에 해놓은 거 없이 '퇴임'이라는 산이 바로 눈앞을 가로막고 있었던 것이다.
모퉁이를 돌아서니 길 양쪽에 키가 훤칠한 삼나무가 빽빽이 늘어 서 있다. 누구에 의해 심어졌는지 모를 이 나무는 지금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자라, 생태계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오히려 시계(視界)를 가려 아름다운 자연을 조망할 수 없게 만들어 놓았다. 답답하다. 이걸 보고 있노라면, 어느 동네 형편을 보는 것 같다. 외국에 가서 공부하고 돌아와 어쩌다 높은 자리에 발탁된 분들이 그저 선진국 것이면 좋은 줄 알고, 먼 앞날은 생각지도 않고 그 정책들을 도입해 시행착오를 거듭했듯이, 이 나무 역시 앞뒤 돌아보지 않고 무작정 심어놓아 이런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하긴 넓은 땅에서 하늘을 찌를 듯이 쑥쑥 자라는 삼나무를 보고 혹하기도 했을 터이다.
오른쪽으로 조금 터진 틈이 보여 건너가려는데, 갑자기 일련의 짚차 무리가 속력을 내고 달려온다. 속도가 100km는 넘을 것 같다. 한 조각 마음의 여유를 갖기 위해 산을 찾는 사람들이 이처럼 고요한 산길을 그렇게 달릴 필요가 있을까. 마침 언덕을 만나 가속기를 억지로 밟아 놓으니 굉음과 함께 잘 안 탄 디젤 연기가 자욱하다. 역하다. 게다가 바람이 잘 통하지 않은 곳이어서 정말 참을 수 없을 정도다. 오른쪽 트인 곳으로 나가려 했지만, 연기 때문에 언제 차가 들이닥칠지 몰라 건너가지도 못하고 차가 다 지날 때까지 산에서 고스란히 매연을 견뎌야 했다.
저 사람들은 뭐 하러 산에 올까. 산이 거기 있으니까? 며칠 전에 읽은 신문 기사가 생각난다. 강원도 어느 고등학생들 거의가 산을 좋아하게 되었는데, 그들에게 "왜 힘들게 산에 오르는가" 하는 질문을 했더니, "무한한 나를 느끼기 위해서"라는 대답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저 사람들은? 저 색안경을 쓰고 짚차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꼭 걸어서 가야만 하나? 그까짓 것 뭐, 불과 3시간이니까 한라산이 정복되던데"하고 만나는 사람마다 자랑을 할 것이다.
한라산을 어떻게 정복해? 우리 사회는 모든 과정을 통과의례로 인식하고 수박 겉 핥기 식으로라도 거치기만 하면 되는 것으로 행동하는 사람이 많다. 어영부영 출석이나 잘하고 수업료만 제때에 내면 졸업장 주지, 어떻게 몇 주일간 교육이나 받고 형식적인 시험이나 치르면 자격증 주지, 무슨 수를 쓰더라도 문턱을 넘고 들어서는 순간 그 뒤부터는 기득권자가 되고 모든 게 보장된다. 그러기에 줄 있고 돈 있는 사람들은 그 과정을 우습게 여기게 되는 것이다. 한라산처럼 오르기만 하면 되니까.
오른쪽으로 나 있는 조그만 길로 들어서니, 전망이 트인다. 멀리 산방산이 보이고 그 왼쪽에 젖무덤을 닮은 군산이 넉넉하게 자리잡고 있다. 앞으로는 법정악, 어점이악, 시오름, 미악산이 펼쳐지고, 그 너머엔 고근산이 양쪽에 궁산과 각시바위를 거느리고 있다. 서귀포 시가지는 아담하기까지 하다. 바다에 떠있는 범섬, 문섬, 섶섬이 있어서일까….
나지막한 능선에 앉아 사방을 조망(眺望)하다 가까운 숲으로 눈을 돌리는 순간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나무들이 하나같이 싹둑싹둑 잘려져 있다. 대부분 소나무들인데 밑동부터 그냥 자른 게 아니라 두세 마디 남겨 큰 가지는 몽땅 자르고 작은 가지만 조금씩 살렸다. 자세히 살펴보니 정원수를 만들기 위해 기초 작업을 벌인 것이 틀림없다. 냇가 쪽으로 비교적 키가 작은 느릅나무, 소사나무, 조록나무, 동백나무 등도 마찬가지로 잘려져 더러는 밑동이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지금 우리들의 교육 정책이 바로 이런 정원수를 만드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백년대계라면 모름지기 앞을 내다볼 수 있는 건강한 숲을 가꾸는 일이어야지, 보기에 좋다고 여기저기 잘라내 구미에 맞는 정원수를 만드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정원사가 바뀌면 개혁을 한답시고 앞사람이 심어 아직 정착도 되지 않은 나무를 다시 뽑아 옮겨 심고는 새로운 모양을 만든답시고 전정가위를 들고 설치며 나무를 고사시키러든다.
정년(停年) 문제만 해도 그렇다. 나무를 싱싱하고 잘 자라게 하려면, 삭정이와 될 성부르지 않은 가지를 잘라내고 거름을 줘야지, 한창 건강하게 자라는 줄기를 억지로 잘라내 버리면 어쩌자는 것인가. 새싹이 돋아나 좋은 모양이 될 것을 겨냥하여 일정한 크기가 넘는 줄기를 가려 무참히 베어버린다면, 설령 그 나무가 살아난다 해도 몇 년 동안은 제대로 나무 구실을 못할 것이다. 그 동안의 혼란은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잘려진 부분이 서서히 썩어 들어가는 나무를 살피며 걸어나오다, 피워보지도 못한 채 잘려져 꽃봉오리가 말라버린 동백나무 가지에서 아픔을 느낀다.
영실 매표소 커다란 주차장은 크고 작은 차들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그러고도 모자라 더러는 안으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안내를 하고 있는 분에게 들어보니, 주차장도 좁고 또 불편한 사람들을 위해서 주차료만 내면 차가 안으로 더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너무 하다는 생각이 든다. 산은 산이어야 한다. 그리고, 등산이 산행을 통해 심신을 단련하고 즐거움을 찾는 행위라 한다면, 어디까지나 자신의 힘으로 올라야 하는 것이 아닌지.
과정을 무시하고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든 정상에 오르기만 하면 된다는 무서운 사람들. 늦게 출발하여도 권력과 아부와 돈으로 밀어붙여 자리를 선점하고 잘난 척 하는 사람들. 남들은 그렇게, 그렇게들 살고 있구나. 나란 사람 미련하게도 영실 먼 입구에 차를 세워놓고 1시간 여를 땀흘리며 걸어왔고, 앞으로 2,30분 더 걸어야 그들과 보조가 맞을 것이다. 이제 그들은 힘들이지 않고 영실 바로 코앞에서 내린 뒤, 새로 밀어붙이는 무서운 힘을 가지고 일찍 나서 허덕이며 고정하게 오른 사람들을 따돌려 앞지를 것이다. 그리고, 먼저 고지를 점령하고 산이 다 자기 것인 양 떵떵거릴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한라산을 다 본 것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한번 거쳤을 뿐인데, 어디 장엄한 한라산을 속속들이 안다고 감히 말하러 드는가. 산의 정기를 찾아 단 몇 시간이라도 헤매어 봤는가. 정상에 홀로 앉았다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날아 보았는가. 산기슭에 누워 잠자면서 바위와 얘기를 나누고, 산의 고른 숨결을 느껴 보았는가. …들꽃에서 풍겨나는 은은한 향기와 바람소리, 천둥소리, 노루가 숨쉬는 소리, 새를 비롯한 온 자연이 연주하는 교향악을 들을 수 있는 산행을 하고 싶다. 그런 다음에도 산자락에서 헤매다 왔노라고 겸손하게 말해야 하겠지.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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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주에는 답사 인솔 갔었고, 요새 다른 일이 바빠 새 글을 쓰지 못한 관계로, 대신 작년 <교육 제주> 가을호에 실었던 단편소설 '어떤 하산(下山)'을 2회(20, 23일)에 나눠 싣습니다. 이 작품은 '한라산 휴식년제'와 '교육 정년 단축'의 모순(矛盾)을 짚어 본 것이기 때문에, 참여적인 요소가 짙어 큰 감동은 기대하기 어려울 겁니다. 독자 여러분의 양해 있으시기 바랍니다.
* 영실 코스의 오백나한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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