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오름 이야기

돌오름, 너 참 오랜만이다

김창집 2006. 12. 27. 07:46

 

 

  * 가는 곳마다 꽃처럼 숲을 장식한 천남성 열매들

 

▲ 사람은 사회적 동물


 2006년 12월 24일 맑음. 금년 마지막 오름 산행은 1년전 날씨가 신통치 않을 것이라는 예측 아래 서귀포의 고근산과 각시바위로 정해 놓았었다. 그러나, 막상 모여 날씨를 본즉 겨울 날씨 치고는 쾌청(快晴)이라, 그곳에 가기는 너무 아까울 것 같아 '돌오름에 가보는 것이 어떠냐?' 하고 의견을 냈더니 찬성이다. 사실은 전날 다른 모임에서 서영아리로 돌아 돌오름에 다녀온 회원이 있었지만, 이쪽 화전동, 나인브릿지 골프장이 있는 곳에서 직접 가보자는 의견에 대다수가 동의하자 어쩔 수 없었다.

 

 사실이지 숲 때문에 시야가 트이지 않아 가늠이 힘든 깊숙한 오름은 낙엽이 모두 져버린 겨울에서 이른 봄 사이에 가야 하는데, 시간이나 날씨가 맞지 않아 못 가는 경우가 종종 있기 마련이다. 보이는 오름이라면 조금 돌아가거나 가시덤불을 헤치는 수고로움이 있을 뿐이지 길을 못 찾아 가다가 돌아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골프장 사람들에게 부딪치는 게 과히 내키진 않지만, 만나 얘기하다 보면 저들도 사람인데 어쩔 것인가.

 

 12명의 회원들은 차 3대에 나눠 타고 애월읍 봉성리 화전동을 향해 달렸다. 새별오름 입구를 지나 오른 쪽으로 이시돌 목장 가는 길로 내려가 왼쪽 나인브릿지와 로드랜드 골프장으로 향하는 굴다리를 지나 왕이메 옆에 이르렀을 때, 멀리 동쪽에 의젓하게 앉아 있는 돌오름이 보인다. 나인브릿지 골프장 입구에서 경비 안내원이 차를 세운다. 돌오름 다녀온다니까 이곳에 차를 세우고 갔다 오란다. 이곳에서 오름 입구까지 걸어가기가 너무 먼 것을 생각해서 뭐라고 하려는데, 이번에는 입구에 데려다 줄 테니까 차에 타고 저 승용차를 쫓아가라고 한다.

 

 기분이 좀 괜찮아져 인도하는 대로 따라가 내리라는 곳에 우리를 내리고, 기사만 따라가 차를 세우고 와야 한다. 5분이나 지났을까? 기사들을 선도차에 태우고 경비 아저씨가 도착하자 무조건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길이 트인 곳으로 들어갔다. 입구에는 ‘林氏墓(임씨묘)’라는 조그만 표석이 서 있었는데, 따라 들어가보니 웬걸 ‘延州玄氏(연주현씨)’ 무덤만 있고, 정작 임씨 무덤은 없다. 아마 아주 깊숙한 곳에 있는 모양이다.

 

 

* 빈네오름에서 본 돌오름

 

 

* 여러 곳에서 확인된 잣성 잔재

 

 

* 오름 아래서 만난 무덤

 

▲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얼마 안 가 길도 끊기고 일행 중 누군가 내를 건너야 한다는 말이 있어 나침판을 꺼내들고 살피니 거의 정동(正東)으로 가야 하는데 동남쪽을 향하고 있다. 그래 내 건너에 있는 삼나무 숲이 동쪽 방향이기 때문에, 인적(人跡)을 따라 앞장서서 내를 가로질러 건너 삼나무 숲길을 찾아을 수 있었다. 나중에 나올 때 안 사실이지만 ‘임씨묘’라는 표석으로 가기 전 다리를 이쪽에 바로 삼나무 밭으로 통하는 길이 있었다.   

 

 삼나무 밭에는 소나무와 작은 삼나무를 간벌하여 일정한 크기로 잘라 그냥 놓아두었다. 아마도 더러 말라 무게가 줄면 가져갈 듯싶다. 이렇게 간벌해놓은 곳은 가는 길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등산로에는 아무래도 무덤으로 가기 위한 표지인 듯싶은 커다랗고 투박한 하얀 비닐이 아주 잦게 매어져 있어 밤에도 다닐 수 있겠다고 부회장이 웃는다. 불만이라면 길은 좋은데 방향이 조금 북쪽으로 치우치는 점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그 의문은 곧 풀리고 말았다. 왼쪽에 한대오름 자락이 나타난 것이다. 같은 길로 가다가 한 가닥은 한대오름으로 가고, 한 가닥은 돌오름으로 가기 때문에 두 오름 중간에 길이 나게 된 것이다. 길이 나뉘는 곳에서 오른쪽으로 틀어 쉬면서 밀감 하나씩 먹었다. 이곳까지 40분쯤 걸렸다고 한다. 시간상으로 보아 이 숲만 벗어나면 오른쪽에 돌오름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트인 곳에서 느긋이 앉아 있는 돌오름을 볼 수 있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은 이렇게 차이가 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떤 일을 할 때 목표가 분명하고 노력할수록 점점 다가오는 것을 보면 일을 해도 신바람이 나고, 그 끝이 어딘지도 모르고 막연히 신념으로만 밀어붙이는 경우는 포기하기 쉽고 실패할 확률도 높지만, 그 간난(艱難)을 이기고 성공했을 때 보람은 더욱 크게 마련인 것이다. 오름이 가까워 옴에 따라 녹지 않은 눈도 여기저기 희끗희끗 남아 있다.

 

 

 * 돌오름 정상에서 본 한라산의 위용

 

 

 * 삼형제오름과 '삼형제오름남쪽 1,2'가 볼록하게 솟아 있다.

 

 

* 노로오름과 삼형제 말젯오름

 

▲ 옅은 안개 속으로 보이는 한라산

 

 좁은 계곡에는 마지막 시련을 주려는 듯 가시덤불이 우거져 있다. 어쨌거나 고지가 바로 저긴데 거기서 멈출 수는 없어 동그란 산담이 둘러진 눈 쌓인 무덤 옆을 통과해 마지막 고지를 향해 속도를 더했다. 아직은 시야가 트이지 않았지만 한 바퀴 돌아 동쪽 봉우리에 오르면 멋진 조망(眺望)을 할 수 있으리라. 우리가 오른 북사면은 돌이 잘 안 보여 오른쪽으로 돌아가 돌 몇 개를 보고 오래된 천리터 옆으로 돌아 오르니 탁 트인 정상이다.

 

 어제는 맑게 개었다는데 오늘은 황사 같기도 하고 옅은 운무(雲霧) 같은 것이 끼었지만 그런대로 볼 만하다. 의젓하게 자리한 한라 주봉 아래로 이스렁과 볼레오름이 자리하고, 그 아래로 3형제가 쿼도롱이(거의 같은 크기로) 앉아있는 모습이 보인다. 누군가는 노로오름까지 4형제로 봐도 좋겠다고 한다. 속에 들어가 보기만 했던 368개에 드는 삼형제(샛오름) 남쪽 Ⅰ, Ⅱ도 확연하게 드러나 있다. 이곳에 올라와 앉아본지가 몇 년이나 됐는지 손꼽아 보며, 서너 평은 족히 될 만한 잔디밭에 터를 잡고 앉았다.

 

 탁 트인 모습에는 경탄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부지런히 카메라에 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름을 확인하기에 바쁜 사람도 있다. 자축(自祝)의 축배가 없어서야 되겠는가? 양 선생이 집에서 담근 들복숭아, 복분자주, 송순주를 가져와 등산용 잔에 부어 한 바퀴 돌렸다. 안주로 마련한 돼지고기에 시큼한 김치를 올려놓아 먹으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운동도 운동이고 자연도 자연이지만 이런 맛에 오름에 오르는 게 아닐까? 

 

 1시간여의 운동에 대한 휴식에다 요기를 보태며 주변 풍경을 익히고는 돌오름의 ‘돌(石)’을 확인하기 위해 다시 남서쪽으로 갔다가 바로 서쪽으로 하산하기로 하고 내려온다. 아니나 다를까 여기저기 비쭉비쭉 솟은 바위 무더기들이 보인다. 식생은 한쪽 커다란 삼나무 숲을 제외하고는 잡목림으로 낙엽수들인 갈참나무, 서어나무, 때죽나무, 산딸나무, 단풍나무가 주종이고 아직도 붉게 빛나는 천남성 붉은 열매들이 곱게 누워 있다.

 

 

 

 

* 돌오름임을 증명하듯 모여 있는 돌과 나무의 조화

 

▲ 숲을 즐기며 돌아오는 길 

 

 돌오름(石岳)은 애월읍과 안덕면의 경계 부근인 안덕면 상천리 산 1번지에 자리한 표고 865.8m, 비고 71m, 둘레 2,489m의 원형 오름이다. 오름 등성이에 돌이 많아서 돌오름, 이를 한자로 표기할 때는 석악(石岳) 표기했다. 어떤 이는 오름 등성이를 한바퀴 빙 돌 수 있게 되어 돌(수 있는) 오름이라 하는 게 아닌가 하나 우스개 소리로 들린다. 과거에 돌 수 없는 오름이 어디 있었던가? 그렇게 얘기하다 돈사람 소리 듣기 십상이겠다.

 

 예전에는 다른 용무로 다니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오름나그네 김종철 선생이 소개한대로 1100도로 영실 입구 쪽에 차를 세우고 3형제 옆을 지나 이곳으로 왔다. 지금이야 오름 오르는 인구가 많아 길도 잘 나고 소개도 잘되었지만 10여 년 전에는 표고밭 길을 이용해 길을 만들며 다녔다. 그러나, 오늘 이곳으로는 너무 쉽다. 다만 골프장 측에 어떻게 잘 얘기해 쉽게 입구로 진입하느냐가 문제다.

 

 얼마 없어 조그만 내가 나타났는데, 이 내는 애월읍과 안덕면을 구분하는 경계가 된다. 삼형제 말젯오름에서 발원하여 여기저기서 합세한 물은 이곳을 지나 결국은 애월읍과 한림읍의 경계를 흐르는 정자천이 된다. 물이 급하게 흘렀던 곳은 패어 기암괴석을 이루고 제법 나무도 갖추어져 풍광이 그만이다. 한 곳에는 둘이서 비를 피할 정도의 굴(窟)도 보인다. 한참동안 내를 걷다가 이번에는 오른쪽 숲길로 접어들었다.

 

 폭삭폭삭 걷기에 알맞은 낙엽 쌓인 숲길은 오늘 돌오름 산행의 묘미를 더한다. 1년 동안 ‘탁월한 선택’ 소리를 몇 번 들었지만 오늘의 돌오름도 그에 못지않게 마음에 든듯 모두들 흐뭇한 얼굴이다. 어제 만났다던 덩굴용담 열매는 못 봤지만 아직도 남아 있는 천남성과 약난초, 새우난초 무더기, 그리고 청미래덩굴 열매를 보며 걷다보니 처음 들어갈 때 진입로가 나타나 곧 나올 수 있었다. 차를 타고 오면서 나인브릿지 골프장 정문 안내원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니, 웃으며 손을 흔든다. 

 

 

 

 

 * 오다가 본 고운 노루똥(위), 굴(가운데), 냇가의 기암괴석(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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