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오름 이야기

오랜만에 눈밭을 헤매다

김창집 2007. 1. 29. 07:24

▲ 2006년 1월 28일 일요일 눈 오락가락. 삼형제 가족의 눈을 밟다

 

 

 

 

"사각사각, 사각사각사각…"

 

눈 밟는 소리. 폭삭폭삭 빠지는 눈길
노루가 먼저 밟고 지나간 산길을 걷는다.  
오늘 15명의 나그네들은 형제 오름을 방문했다.

 

눈눈눈. 눈밖에는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전날 아침부터 시작하여 밤새 쌓인 고운 눈.

삼형제샛오름이 숲 사이로 드러난다.

 

형제오름 중 가운데에 위치해 있어 샛오름이다.
형제 중 면적으로는 제일 크다.
큰오름 능선을 따라 들어갈 수도 있으나
휴게소에서 남쪽으로 400m쯤 떨어진 곳 표고밭 길로 들어가는 것이 쉽다.

 

 

 

1,100도로 변에서는 큰오름보다 높이가 낮기 때문에 큰오름에 가려 보이지 않으나
한라산이나 애월읍, 안덕면 일부 지역에서는 세 개의 봉우리가
동서로 나란히 자리잡고 있는 게 보인다.

 

큰오름의 남서쪽 기슭과 가파른 벼랑을 사이에 두고 있는데,
그 사이에는 꽤 큰 협곡을 형성하고 있다.
전 사면에 자연림이 무성하여 시야가 가려있으나
정상에서는 한라산과 볼레오름, 이스렁오름 등 주변 오름을 조망할 수 있다.

 

북서쪽으로 향한 말굽형 굼부리는 깊은 계곡을 이룬다.

단풍나무, 고로쇠나무, 비목나무, 소나무, 서어나무, 때죽나무, 산딸나무….
아래로는 주목(노가리), 꽝꽝나무, 억새가 눈을 쓰고 서있다.
노가리나무에 눈이 쌓이니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보인다.

 

  

삼형제말젯오름을 바라보며 내려와
그 조카뻘인 샛오름 Ⅰ, Ⅱ를 방문해보기로 했다.
먼저 바싹 붙어 있는 Ⅱ.
조그만 내를 건너니 바로 Ⅱ의 옆구리다.
들어올 때 걸었던 말젯오름으로 난 길도 가로지른다.

 

비고가 낮기 때문에 곧 정상에 닿는다.
서쪽 봉우리를 보며 능선을 따라 가 보았다.
눈은 오다 말다를 반복하고….
Ⅰ이 눈보라에 가려 보이질 않는다.

 

나침반을 보며 방향을 가늠하여
Ⅱ의 옆구리를 가로질러 동남쪽으로 가다보니
남쪽에 Ⅰ의 자락이 보여
가파른 오름자락을 엉덩이 썰매로 내려가
조그만 내를 건너 바로 Ⅰ으로 들어선다.

 

 

비고는 낮지만 엄청난 넓이다.
능선을 한 바퀴 비잉 돌아 절벽 끝 정상의 무덤에 이른다.
비문을 보니 변씨 무덤인데 특이하게 건국 589년이라 새겼다.
조선 건국이 1392년이라, 계산해보니 1931년쯤에 세운 비석이다.

 

눈이 쌓였다고 정상주를 생략할쏘냐.
눈 위에 벌려 놓고 송순 향기와 상동 색을 음미한다.

 

반 바퀴 다시 돌아 동쪽으로 나오니, 들어온 길과 마주친다.
그 길을 따라 어디로 어떻게 걷었는지 모르게
보드라운 눈만 탐하며 걸어 나오니
큰오름 자락에선 아이들의 썰매가 한창이었다.

 

제주시에 돌아오니 눈은 자취도 없는데
꿈속인 듯 하루종일 걸었던 눈길….

 

"사각사각, 사각사각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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