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해외 나들이

신을 향한 인간들의 자취⑦

김창집 2007. 1. 14. 00:25

-- 탐라문화보존회 앙코르와트 답사기

 

 

 

 

                           *  바이욘 사원 전경과 쌓여 있는 돌, 그리고 문과 탑

 

▲ 앙코르 톰 한가운데 자리잡은 바이욘 사원

 

 남문에서 북쪽으로 바로 이어진 길을 1.5km 정도 올라가면 거대한 돌더미가 눈에 들어온다. 이것이 앙코르 톰의 정중앙에 자리한 바이욘 사원이다. 수미산을 가운데 놓고 엔클로저를 겹쳐가면서 정교하게 대칭으로 배열한 시바 사원의 모습과는 딴판을 보이고 있는데 바로 대승불교의 영향이다. 바이욘이 세워진 것은 대승불교가 받아들여진 훨씬 후대였기 때문이다. 

 

 이 사원에 오르면 여기저기 무너져 있어 매우 혼란스러운데 탑은 커다란 바위를 맞춰 깎은 것이 아니라 여러 개의 돌을 맞춰 쌓은 후 거대한 얼굴을 사면(四面)에 새겨놓았다. 그런 탑은 남문의 신과 악마의 숫자인 54개 있었던 것으로 추측하나 지금은 36개만 남아 있다. 얼굴도 어떤 것은 3면만 남아있기도 하고 2면이 남아 있거나 얼굴의 형태가 아예 없는 것도 있었다.   

 얼굴들도 다 다른 것 같지만 공통적인 점도 있다. 두툼한 입술, 뭉툭한 코, 치켜올린 눈매, 튀어나온 널찍한 이마와 미소와 명상이다. 안내자는 이 얼굴은 부처님의 얼굴로 크메르인의 얼굴이면서, 이 사원을 지은 건물을 완성한 자야바르만 7세의 얼굴이라고 말했다. 도올 선생은 관세음보살상과 자야바르만 7세의 현실적인 얼굴이 중첩되어 있다고 주장하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  앙코르 매직버스 홈(http://goangkor.com.ne.kr/)의 앙코르 톰 개념도

 

  '우리나라 석불들도 모두 부처님 얼굴이라고는 하지만 현실적인 한국인들의 얼굴이 겹쳐 있는 것이다. 참족에 의하여 점령된 국가를 독립군을 조직하여 참족을 물리치고 수복한 탁월한 용사요 전략가였던 자야바르만 7세는 수많은 인간들을 전장의 잿더미로 만들고 왕위에 올랐지만 그는 그의 이미지가 무서운 무인(武人)으로서보다는 자애로운 민중의 어버이로서, 세상의 고통에 귀를 기울이는 자비로운 관세음보살로서 기억되기를 원했던 것이다.'

 

 바이욘 사원의 모습은 복잡한 설계에 서투른 시공, 그리고 단기간에 서투른 건축을 했기 때문에 훼손이 많이 되었지만 크메르 유적에서는 가장 경이로운 존재가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석불의 얼굴에 드러나는 미소와 신비뿐만 아니라 사방 600m의 외부 회랑을 장식하고 있는 석벽 부조의 내용에도 있다. 그것은 앙코르와트의 신화와는 달리 그들이 체험한 생생한 삶의 모습을 담아 놓았기 때문이다.  

 

 물론 앙코르와트의 1층 서쪽 회랑에 전쟁의 모습을 새긴 것이 있지만 이 바이욘 사원에 와서는 그 사원을 지은 위대한 성군인 자야바르만 7세가 참족의 침탈로부터 크메르제국을 구원하고 재건한 그 역사를 기록한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과 평화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이욘의 벽화는 일러한 주제를 매우 리얼하고 처절하게 우리에게 전달해준다. 표현이 비록 어설프고 거칠지만 생동감이 넘치고 혼란스러운 만큼 해석의 여지를 많이 남겼다. 

 

 

 

  

                        *  여러 가지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벽의 부조들

 

▲ 바이욘 사원을 돌아보며 마주친 얼굴

 

 바이욘 사원은 넓고 그 구조가 복잡하다. 앙코르 톰 남문을 지나 차에서 내리니, 눈앞에 바로 커다란 돌 건축물이 보이고 많은 돌들이 쌓여 있다. 행렬을 따라 그 사이로 동쪽 입구로 들어가 고푸라문을 보았다. 지도의 그림처럼 8개의 고푸라문과 각 방향으로 난 테라스를 통해 나왔다 들어갔다 할 수 있었지만 주로 동문을 통해 들어가도록 되어 있으며, 내외벽에 조각해 놓은 부조를 제대로 보려면, 동문으로 들어가 왼쪽을 향하여 시계 방향으로 뱅뱅 돌면서 1층, 2층, 3층을 본 뒤 마지막에 북쪽 계단으로 내려와 북쪽 테라스 밖으로 나간 뒤 공터로 바로 바푸온 쪽을 향하면 된다. 건물을 한 바퀴 도는 것도 만만찮지만 복잡 미묘한 내부를 우왕좌왕하지 않으려면 이 구조를 잘 익혀 두어야 하며, 제일 간편한 코스는 저 그림에 나온 대로 화살표를 따라가면 된다.

 

 바이욘은 전체 3층 구조로 이루어졌다. 1층은 8개의 고푸라문과 16면으로 구획된 정사각형 구조를 취하며 2층도 정사각형이나 3층은 원형탑 구조의 지성소로 구성된다. 각 층과 면은 대단히 복잡한 복도와 문, 그리고 별실로 이어지며 갤러리의 길이는 총 1,200m로 11,000여 점의 섬세한 부조가 조각되었다. 일부 지워지고 알아보기 힘든 곳도 있지만 미로 같은 복도를 거닐며 아름다운 부조를 감상하다보면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린다. 사원의 외곽은 크고 작은 탑들이 중앙 성소를 에워싸고 지붕에는 216개의 큰 바위 얼굴인, 자비의 관음보살이며 자야바르만 7세 자신의 얼굴이라 믿어지는 '앙코르의 미소'가 천년 세월 변함 없이 자비로운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고 있다.

 

 '앙코르의 미소'란 말은 1920년 Jennerat de Beerski란 사람이 3층 성소를 둘러 선 큰 바위 얼굴을 일컫어 "Smile of angkor"라 표현한 이래 자연스레 그 석상들을 '앙코르의 미소'로 통용되고 있다. 이곳을 돌면서 느껴지는 것이지만 어디선가 시선이 인식되는 것은 바로 이 석상 때문이다. 신성을 강조한 앙코르와트와 달리 바이욘은 인간미가 느껴지기 때문에 훨씬 정감이 가는 곳이다. 

 1층 갤러리는 인간의 영역으로 쟈야마르만 7세의 전승(戰勝)과 훌륭한 왕의 덕치(德治)로 평화로웠던 시절을 섬세하게 새겼고, 2층 갤러리는 신들의 영역으로 신들의 전쟁과 업적에 대해 새겼다. 건물의 대부분은 힌두교 양식이며 부조의 등장인물 또한 힌두교의 신들이지만 한마디로 신들의 업적에 견주어 자야바르만 7세 자신의 업적을 승화시킨 전승기념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내부 회랑은 자야바르만 7세 사후에 자야바르만 8세에 의해 일부 조각되었다고 한다. 3층에는 갤러리가 없는 지성소 부분이다.

 

 

 

 

 

                       *  '앙코르의 미소'로 불리는 비이욘 석탑의 여러 모습

 

♬ Georges Moustaki - Ma Solitu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