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해외 나들이

신을 향한 인간들의 자취⑧

김창집 2007. 1. 16. 08:39

-- 탐라문화보존회 앙코르와트 답사기

 

 

 

                                     * 복구 중인 파프온 사원으로 들어가는 일행들

 

▲ 힌두교(Hinduism)는

 

 힌두교는 인도에서 발생한 모든 종교를 통틀어 가리키는 말로 '힌두'와 '이즘(ism)'의 합성어인 '힌두이즘'의 번역어이다. '힌두'란 원래 인더스 강의 산스크리트로 '신두(Sindhu)' 즉 대하(大河)'의 페르시아 발음으로서, 인디아나 힌두스탄과 같이 인도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므로 힌두교는 문자 그대로는 '인도의 종교'를 뜻하며, 인도에서 기원된 모든 종교, 즉 바라문교, 자이나교, 불교 등을 포함하는 말이 될 수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베다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불교와 자이나교를 배제한 좁은 의미로 사용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랜 종교의 하나로 특정한 교조나 교리, 중앙집권적 권위나 위계조직이 없으며, 오랜 시간에 걸쳐 다양한 신앙형태가 융합된 종교여서 간단히 정의 내리기가 어렵다. 힌두교 안에는 원시적인 물신숭배 · 애니미즘 · 정령숭배로부터 주술 · 제식 · 다신교 · 일신교 · 고행주의 · 신비주의 그리고 고도로 발달된 사변적 체계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형태의 종교가 발견된다.

 

 그러므로 힌두교는 다른 종교에 대해 관용적이며 덜 배타적인 것이 특징이다. 힌두교는 하나의 종교일 뿐 아니라 힌두의 사회 관습 전통 등 모든 것을 포괄하는 말로 힌두의 생활방식이자 힌두 문화의 총체이다. 힌두교에 대한 이해 없이 인도인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것은 백과사전에 나오는 내용이지만 앙코르 유적을 이해하는 데는 특징 정도는 이해해야 할 것 같다. 

 

 

 

               * 곳곳에 흩어져 있는 해체된 돌들과 왕이 목욕했던 못, 그리고 수리중인 파프온 사원

 

▲ 힌두교의 특징

 

 다양한 형태를 지닌 힌두교이지만 다음과 같은 몇 가지의 공통된 특성과 핵심 사상을 찾을 수 있다. 우선 '아트만과 브라만의 교설'로, 영원불변하고, 전우주의 근원이자 궁극적 실재인 브라만이라는 중성적 원리가 있으며, 이것은 곧 인간 내면의 참다운 자아, 즉 아트만과 동일하다. 브라만 자체는 무속성이며 비인격적이지만 비슈누(Viu) · 시바(iva)라는 인격적 최고신으로 나타날 수 있다.

 

 다음은 '이슈타데바타와 트리무르티'로, 힌두인들에게는 특별히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것이 있다. 그리고 신은 많지만 이들은 본질에 있어 단일한 존재이며, 최고신격을 가진 창조신 브라만, 유지신 비슈누, 파괴신 시바는 단일한 실재의 세 측면 즉, 삼위일체설(Trimrti, 三神一體說)이다.

 

 세 번째는 '베다와 브라만 계급의 권위'인데, 가장 오래된 종교 문헌인 베다(Veda, 지식)는 근본적이고 완전한 진리의 계시서(슈루티)로 믿어진다. 브라만 계급은 브라만의 특수한 현현(顯現)이며, 베다의 교사이자 전승자로서 신성시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힌두교는 그러한 의의를 다소 상실했다.

 

 네 번째는 '아힘사(不殺生)'로, 모든 생명의 근본적 단일성에 근거한 생명에 대한 존중을 내용으로 하는 아힘사는 채식주의, 소의 도살 금지 등으로 표현되었다. 그리고, 불교처럼 '윤회(삼사라)와 업(카르마)'인데, 모든 결과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으며, 현재의 삶은 반드시 과거의 행위(카르마)의 결과라는 업설은 생사(生死)의 반복적 순환, 즉 윤회사상과 연관된다. 업이 있는 한 시작도 끝도 없이 반복되는 윤회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해탈, 解脫)이 힌두교의 궁극적 목표이다.

 

 

 

                             * 파푸온에서 해체된 돌들과 화려하게 조각된 기둥의 하나

 

▲ 아직도 복구중인 파푸온 사원

 

 점심을 먹고 소나기를 피하기 위해 잠시 보석 제조 가게에 들렀다. 열대 특유의 소나기인 스코올이 한바탕 신나게 쏟아진다. 옛 월남 생활을 떠올리며 비가 가늘어지기를 기다려 버스에 오르니, 준비해 두었던 우산을 하나씩 빌려준다. 그만큼 비가 자주 온다는 증거다. 우산을 들고 다시 앙코르 톰 남문을 거쳐 들어와 이번에는 바이욘 사원 옆에 있는 파프온으로 들어간다.     

 

 바푸온 사원은 앙코르에서 세 번째로 세워진 유서 깊은 사원으로 앙코르 톰이 건설되기 이전부터 이미 이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고 한다. 우다야디트바르만 2세에 의해 1060년에 완공된 바푸온은 힌두교의 쉬바신에게 바쳐진 웅장한 성소인데, 훗날 쟈야바르만 7세가 앙코르 톰을 건설할 때 바푸온이 자연스럽게 속에 위치하게 되었다. 다른 건물보다 오래 된 사원이어서 때문에 앙코르톰 내의 다른 건축물들과는 건축 양식이 현저하게 다르고 더 많이 훼손되었다. 

 

 바푸온은 아직도 복구중이다. 그래서 들어가진 못하고 가까이 다가서서 보고 올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 발굴팀인 프랑스 극동학원(EFEO)은 이 사원의 역사적 가치를 생각해서 미화 1천만 불 상당의 막대한 자금을 들여 돌더미를 해체하고 다시 맞추는 작업을 진행했다. 그러나 인도차이나 전쟁이 심화되어 1972년에는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불행한 사실은 이 해체된 돌 조각에는 정교한 설계도에 따라 번호를 매겨 놓았는데, 크메르 정권이 들어서면서 설계도가 사라져버렸고, 돌도 마구 흩어지는가 하면 번호표도 사라져 복구가 힘들게 돼버렸다. 그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여기저기 그 돌들이 놓여져 있다.

 

 건물의 뜰은 넓어 긴 코즈웨이(신도, 神道)를 따라 가는데 옆에 석상이 가끔 보인다. 테라스 같은 곳의 부조들을 눈여겨보며 숲을 따라 가까이 다가가서 보고 돌아왔다. 바이욘이 조각조각 꿰어 맞춘 거대한 조각상인데 비해 바푸온은 둥근 원형의 단순한 산체 같다. 바푸온의 북쪽 벽으로 다 쓰러져 가는 거대한 돌단 아래로 뚫린 조그만 문을 지나니 피미아나카스라는 천상의 궁전(Celestial Palace)과 마주친다.

 

 

 

                                          *  보수중인 파푸온 사원으로 가는 길

 

▲ 왕의 제단 '피미아나카스'

 

 바푸온 왕궁에서 이렇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 궁성 안에 위치해 있어 밤마다 왕이 올라가 제사를 지내는 곳이었다고 한다. 라젠드라바르만 2세가 건축을 시작했으나, 대부분의 중요 시설물은 후대인 수르야바르만 1세(Suryavarman I)가 완성했다. 주 출입문은 동쪽에 있어 코끼리 테라스가 있는 곳에서 들어오게 되어 있다.

 

 3단으로 되어 있는 이 제단은 가파른 계단 양옆으로 각단마다 돌출된 받침대 위에는 후리후리하고 미끈하게 생긴 12마리의 사자가 고개를 쳐들고 지킨다. 그리고, 각단의 코너에는 코를 늘어뜨린 코끼리가 조각돼 있는데 사자보다 작아 보인다. 계단은 모두가 가파른데 왕은 제일 완만한 서쪽으로 오르내렸다 한다. 그래도 왕이 옷을 제대로 입고 어두운 밤에 올라오려면 매우 위험했을 것이다.

 

 계단을 오르면 4각의 화랑이 나타나고 가운데 지성소가 자리잡았다. 이 지성소는 원래 금칠이 되어 있었다는데, 주달관은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을 남겼다. "궁궐의 한가운데는 금탑(피미아나카스)이 있다. 국왕은 이 금탑 아래 지성소 위에 드러눕는다. 지역 사람들이 모두 나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탑 속에는 머리가 아홉 개 달린 뱀의 정령이 살고 있는데, 그는 이 나라 토지의 주인이다. 이 정령은 매일 밤 여자의 몸으로 변하여 나타난다. 국왕은 먼저 이 여인과 동침하여 섹스를 해야 한다. 이 시간에는 국왕의 부인이라도 감히 들어올 수가 없다. 두 번 북이 울리면(약 4시간이 지나면) 국왕은 이곳에서 나와 비로소 처첩과 함께 잠을 잘 수 있다. 만약 이 정령이 하룻밤이라도 나타나지 않으면 그 왕은 죽음을 맞게 된다. 그리고 만약 국왕이 하룻밤이라도 이 성소에 가지 않으면 반드시 재앙을 얻게 된다."  

 

 왕궁 동쪽문은 고푸라 문인데 문 상인방에는 칼라(Kala)의 귀면상(鬼面像, 힌두 설화에 의하면 항상 굶주린 칼라는 쉬바 신에게 먹이를 달라고 보챘는데, 쉬바가 네 몸을 먹으라 하여 자신의 몸을 죄다 뜯어먹고 머리만 남게 되었다. 뒤에 쉬바가 자신의 말을 잘들은 칼라의 머리를 사원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삼아주었다. 얼굴이 아주 험상궂게 생겼다)이, 문틀에는 왕에 대한 충성 맹세가 새겨져 있다. 

 

 그리고, 연못과 나가 난간 피미아나까스 북쪽에 두 개의 연못이 있었는데 동쪽 연못은 규모가 작고 왕비를 비롯한 왕실 여인들이 더위를 식히고 몸을 정갈히 하던 곳이며, 서쪽은 보다 큰 연못으로 남자들의 전용이었다. 뱀 여인과 동침하기 전 왕이 정갈히 몸을 씻던 이 연못은 지금도 흔적이 남아 있으며 아름다운 장식의 난간과 보도가 피미아나카스와 직접 연결되어 있어 매일 밤 신전을 오르내리는 왕의 모습을 연상할 수 있다. 난간에는 가루다를 비롯, 나가와 나가 여인에게 둘러싸인 왕의 조각이 새겨져 이 전설을 뒷받침한다.

 

 

 

                                            * 테라스를 떠받치고 있는 코끼리상들

 

▲ 왕의 광장인 '코키리테라스'

 

 지도를 보면 피미아나카스는 앙코르 톰을 남북으로 양분한 중앙에 있는 바이욘 사원 북쪽과 성문 사이에 몰려있는 건물들의 중앙에 위치해 있다. 그곳에서 동쪽으로 걸어나오면 왕궁의 정문이 나오는데 그곳에는 산스크리트(범어)로 선명하게 "적의 왕의 머리에서 화려하게 빛나는 보석의 빛으로 하여 이 위대한 왕의 발톱이 빛났다."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이 정문을 나오면 바로 코키리 테라스가 나오는데 남북으로 300m나 되는 사열대(테라스)이다. 돌벽으로 만든 단인데 단의 앞면에 코키리가 바로 걸어나올 듯이 새겨져 있어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이다. 12세기 후반 자야바르만 7세에 의해 만들어진 이곳은 끝없이 무리 지어 행진하는 코끼리떼를 따라 이어지며, 예전에 왕이 국가 행사 시 민중들 앞이나 군대의 사열을 받을 때 서 있던 로열 박스이다.

 

 테라스 앞으로는 길 건너 까마득한 저편 쁘라삿 수오르 쁘랏까지 넓은 평지가 펼쳐지는데 "왕의 광장"이라 불리는 이곳은 평소에는 정원으로 사용되지만 외국 사신을 영접하거나 국가의 공식행사, 군대사열, 전투에 출정하는 군대를 전송하거나 귀환한 군대를 환영하는 등 왕이 일반 군중과 접하는 장소였다. 너무 길어 북쪽으로 문둥왕 테라스까지 갔다 오려면 너무 멀다.

 

 코끼리 테라스에는 중앙 계단 외에 남쪽과 북쪽 끝에, 그리고 그 사이에 쪽 계단이 있다. 중앙계단의 용도는 대단히 중요하다. 나가의 낭창한 허리로 테를 두른 계단 위에는 늠름한 사자상이 서 있어 범상한 용도가 아님을 알려준다. 이 계단 위에 서면 현재의 풍광만으로도 지휘자가 된 느낌이다. 도로 건너 저편 12개의 쁘라삿 수오르 쁘랏 건물을 에워싼 밀림까지 드넓은 평지를 뚫고 승리의 문까지 길이 쭉 뻗쳐 있다. 계단을 떠받치는 단에는 가루다와 용맹스런 사자가 새겨져 있다 .
 

 

 

       * 테라스 나가 난간의 모습과 건너편에 있는 건축물은 천옥의 12탑, 그리고 사자상의 확대

 

▲ 이어지는 문둥왕의 테라스   

 

 문둥왕의 테라스(Terrace of the Leper King)는 코끼리 테라스 북쪽으로 이어지며 그 이름에 대해서는 수많은 억측과 가설이 있다. 첫째는 문둥왕의 상(像)이 인간 왕의 상이 아니라 불교에서 북쪽 방향의 수호신이자 힌두교에서 재물의 신인 쿠베라(Kubera)이며, 쿠베라가 문둥병 환자였을 가능성을 제시하지만 힌두신화의 쿠베라는 비록 재물을 많이 취해 배가 불룩하고 쉬바의 아내를 엿보다가 한쪽 눈을 잃었지만 전설은 거의 신빙성이 없어 보인다.

 

 둘째는 문둥왕 조각상의 피부가 매끄럽지 못하고 발진이 돋은 듯한 형상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이고, 세 번째는 조금 구체적으로 근접하여, 크메르의 전설 중에 왕 앞에 무릎 꿇기를 거부하던 대신의 목을 밸 때 독기 어린 액체가 튀겨 왕의 몸에 닿아 문둥병에 걸렸다는 내용이 있다. 그보다 더 근접한 주장으로는 바이욘 신전의 이층 갤러리에 새겨진 부조에서 찾는다.

 

 바이욘 신전의 2층 갤러리에는 뱀과 싸우던 용맹한 왕이 뱀의 맹독에 쏘여 문둥병에 걸리고 치료에도 불구하고 죽음에 이르는 장면이 새겨져 있다. 따라서 문둥왕은 바이욘을 건립힌 쟈야바르만 7세로 추정한다. 그래서 그런지 쟈야바르만 7세는 연이은 전쟁에 재원 출혈이 심했음에도 불구하고 특이하게도 그의 덕치(德治)에서 돋보이는 것이 병원 건설에 주력했다는 점이다. 그는 전국적으로 많은 병원을 지어 백성들을 치료했는데 그 이유가 자신이 문둥병 환자이기 때문에 동병상련의 배려가 아니었나 짐작하고 있다.

 

 코끼리 테라스는 쫘악 뻗은 직선인데 반해 문둥왕의 테라스는 그만큼 크진 않지만 각진 기단에 내벽과 외벽의 이중 벽의 형상을 취한다. 왕궁의 동쪽 고푸라 문쪽의 성벽 아래로 들어가, 내외벽 사이 통로를 따라가면 그 차이를 자세히 볼 수 있다. 쟈야바르만 7세는 왕궁을 확장하면서 왕국의 위용에 걸맞는 장엄한 코끼리 테라스를 건설하였고 테라스의 선을 맞추기 위해 원래의 것을 놔두고 같은 선상에 테라스를 새로 건립하다보니 두 겹의 테라스가 형성된 것이다.

 

 

 

                  * 사자와 가루다가 번갈아 조각된 문둥왕의 테라스 기단과 잘 생긴 사자상

 

 

                         *  분쟁 해결을 위해 당사자들을 가두고 살폈다는 천옥의 12탑 

 

♬ Dream Polonaise - Los Chacos(인디오 앙상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