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제주어 글

만경 선생의 '제주어 시조' 4수

김창집 2020. 10. 30. 01:31

 

우연한 기회에 인쇄소에 갔다가

친구 아버님 문집(文集)을 다시 보게 되었다.

아버님은 돌아가시기 전 학창시절에

친구네 집을 많이 방문해 자주 뵈었기로

아들 친구로 스스럼없이 대하셨다.

 

말하면 잘 아실 정도의 직장 책임자로

일도 많이 하셨고,

취미삼아 하시던 시조창으로

명인 칭호를 받으셨던 분이시다.

 

이제 우리가 그 나이가 되어 돌아보니

참 인생을 부지런히 사셨던 분으로 생각된다.

집에 와서 찾아보니, 조문 가서 받은

문집 만경집이 있다.

 

 

처음에는 시조창(時調唱)에 매료되어

전국민요경창대회에서 장원을 여러 번 계속한 끝에

명인(名人)이 되셨다.

 

두 번째는 서예(書藝).

집에 가보면 마루에 줄을 여럿 매어놓고

글씨 연습한 종이를 널어놓은 것이 끊기는 날이 없었다.

아버님이 훈장(訓長)을 하시고 명필(名筆)이셔서

손자까지 대를 이어 여덟 폭 병풍을 완성하는

꿈을 가지고 계셨다. 바람대로

전국 서예로 이름 있는 분들과 교류할 정도의 위치에 이르셨고,

아드님인 내 친구도 남들을 지도하고 있다.

 

세 번째는 한시(漢詩).

서예를 하시면서 어느 정도 가까이 하긴 했지만

정년퇴임 후 정식으로 사사 받고 향교에서

지도자의 자리에 오를 만큼 즐겨 쓰셨고,

한시집인 晩耕集(만경집)’을 낸 것이다.

 

네 번째는 한방(韓方)이다.

그 중에 침술(鍼術)에 매료되어 방안에 혈과 맥을

나타낸 인체도를 걸어놓고 계셨는데,

시술(施術)을 할 기회가 없어서

언제나 나만 보면 어디 아픈 데 없느냐?’

물어보셨다.

 

 

한시 문집 뒤쪽을 보니,

제주어로 쓰신

시조 4수를 실으셨다.

 

네 수 모두 교훈을 주는 내용이어서

너무 반가운 나머지

해설을 곁들여 이곳에 소개해 본다.

 

저 세상에 계신 친구 아버님께서

어허, 게난 창집이가 나 글에 토 ᄃᆞᆯ안 올려서.’ 하고

반가워했으면 좋겠다.

 

 

들락날락 癸酉 저슬

 

아흰 때 얼먹어사

그민 망지곡

두린 떼 호강ᄒᆞ민

ᄆᆞᆫ 큰 뒤 몰명ᄒᆞ난

게메선 바당을 보나네

싸사 드는 걸라고

 

*우리는 흔히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그래서 아이 때 고생해야/ 자라서 야무지고, 어린 때 호강하며 크면/ 다 자란 뒤 미련해진다.’는 얘기다. ‘바닷물을 보면 써야(물이 나가야) 결국 들더라는 자연의 이치를 끌어들였다. # '요그문 요망지곡' 요는 모두 'ㅇ..'임.

 

 

질로 ᄒᆞ심 癸酉 저슬

 

이녁이 쇠촐 비난

아픈 눈 쓰러가듯

놈 빌언 조 싱그난

헌 맥에 불치 담듯

게메선 아명 ᄀᆞᆯ아도

지냥으로 ᄒᆞ여사

 

*‘스스로 하라는 표제처럼 모든 일은 내가 할 일이 있고 남이 해줘도 되는 일이 있듯이 스스로 소꼴을 베니/ 아픈 눈이 다 나은 것 같고/ 남을 빌어 조의 묘종을 심으니/ 헌 멱서리에 재를 닮는 것처럼(남을 게 없더라)’ ‘그러니 아무리 말해도/ 제 할 일은 스스로 해야 된다는 교훈을 실제 일에서 얘를 들고 있다.

 

어떵ᄒᆞ젠 癸酉 저슬

 

이ᄎᆞ록 호강ᄒᆞ당

무리민 어떵ᄒᆞ젠

무리영 간세ᄒᆞ당

썩으민 어떵ᄒᆞ젠

썩어도 ᄆᆞᆫ 놀당 망ᄒᆞ민

어떵ᄒᆞ젠 ᄒᆞ염쏸

 

*‘이렇게 호강하다가/ 몸이 다 상해버리면 어쩌려고즉 움직여야 건강에도 좋고 몸이 튼튼해진다. ‘그렇게 됐는데도 게을리 했다가/ 못 쓰게 되면 어쩌려고 하느냐’, 결국 못 쓰게 될 정도로 몸을 망쳐 버리는 걸 걱정해서 건강에 부지런히 힘쓰라는 교훈으로 보인다.

 

내 ᄒᆞ리 탓 乙亥 영등ᄃᆞᆯ

 

부지런 ᄒᆞ여그네

못ᄒᆞᆯ 일 어디 시멍

간세만 ᄒᆞ여그내

되는 일 어디 시리

어즈버 모든 일 됨됨이

내 ᄒᆞ리 탓일라고

 

*표제어 내 ᄒᆞ리 탓자신이 하기 나름이라는 뜻이다. ‘부지런해서/ 못할 일이 어디 있으며/ 게으르기만 해서/ 되는 일이 어디 있겠느냐/ , 모든 일 됨됨이가/ 제 하기 나름이더라는 교훈이 들어 있다.

 

 

                       *: 김관옥晩耕集(풍신인쇄사, 2002)에서

                       *사진 : 제주의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