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세상

김윤숙 시조 '추자도' 외 5편

김창집 2021. 7. 7. 14:01

추자도

 

여름 끝 추자도는

입 안 가득 단내 고였다

누군가 내려놓은

배낭 속 오랜 기억처럼

한 번 더

발 내디뎌야 할 곡진함이 절로 일 듯

 

해안 길도, 산길도

물살에 묻혔다 여는

큰 여 앞 건너뛰는 조약돌의 물수제비도

언제나 심해 그 자리

발 딛는 일이였을

 

더 이상 내게로 오지 않는 저 바위섬

파도치는 절벽에

하얗게 글썽이는

어머니

짜디짠 생으로

망초꽃을 피운다

 

가파도

 

모슬포항 비릿함에 젖어야 이르는 곳

그리움도 질긴 인연도 여간해선 못 들이는

지금껏 쌓던 탑마저 슬며시 놓아야 하네

 

포제단 숨비기꽃이 자맥질하는 시각엔

누군가 대신해서 치렀을 제의인 듯

사방에 별빛이 내려 눈을 뜰 수 없었네

 

끝내 쫓아와 놓아주지 않던 바닷새 울음

바다식당 여주인 낭창낭창 밥 주문하라는

그 어떤, 언약보다도 나를 깨우는 시장기

 

내 한라산

 

말하리 그 슬픔의, 그 눈빛도 말하리

조립식 빨래대 마디마디 휘는 눈발

알오름 줄줄이 엮어 밤새껏 지척이던

 

마지막 저 징소리, 울림 같은 네 탄생은

발 먼저 세상에 딛고 중심을 잡았다

첫 눈발 휘청거렸을 제주 바다 그 핏빛에

 

등 돌리면 떠나리 사월의 이야기는

활시위 당기듯이 바다를 당기는 달아

한라산, 그 물음 앞에 섬으로 앉아 있다

 

우포늪

 

1

 

소처럼 돌아누운 그대 등을 밟고서야,

늪으로만 깊어지는 유월을 보았다

창포에 머리 풀었던,

그녀 다시 만났다

 

2

 

초여름 아득한 지평 다 못 전한 안부처럼

왜 그냥 가냐며, 감기는 환삼덩굴

떼내도 달라붙는다

차마 못 보내는 애인처럼

 

길상사 능소화

 

외진 도량

별채 꽃들

 

법문에 귀기울여

 

극락전 먼발치서

담장 넘는 절 공양

 

큰 스님

차마 못 뵈네

 

뙤약볕에 붉게 타네

 

울릉도 땅나리

 

소금기 밴

 

칠월 볕에

 

묵묵히 고개 숙여

 

언덕배기 빙 둘러

 

한 뼘 한 뼘

 

내려선

 

함부로

 

울지도 않는

 

동해 바다 붉은 섬

 

 

                            *김윤숙 현대시조 100인선 21 '봄은 집을 멀리 돌아가게 하고(2016)'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