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홍해리 시 '꿈길에 서서' 외 5편

김창집 2021. 8. 12. 01:52

꿈길에 서서

 

걸어서 갈수 없어 아름다운 길

눈부터 취해 가슴까지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멀리멀리 돌아서도 갈 수 없는 길

안개 속으로 구름 속으로 헤매고 있었습니다

 

눈으로 입술로 가슴으로도 못 가는 길

가까워도 멀기만 해 어둠 속 둥둥 떠 있었습니다

 

내 생의 이물과 고물 사이 가지 못할 길 위로

그리움은 다리를 절며 돌아가고 있습니다.

 

아내가 가는 길은 가지 말아야 할 길

그 길을 아내가 홀로 가고 있습니다.

 

병원길

 

아내랑 병원에 갑니다

어디 가느냐 열 번을 묻습니다

왜 가느냐고 또 묻고 묻습니다

그 물음을 나는 가슴에 묻습니다

병원에 간다

의사 만나러 간다 해도

아내는

묻고 또 묻고

그럴 때마다 나는 묻습니다

지금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아늘대는 버들가지처럼

흔들리는 내가 바보겠지요

그래도 함께 갈 수 있는 길이 있어

손잡고 병원 길을 올라갑니다

인생 한 번 살았다고

인생을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한번 지나친 길이라고

다 볼 수 있었겠습니까

아느작아느작 흔들리며 병원으로 들어갑니다.

 

흔적

 

여기저기 부딪치다

세월은 가고

뜨거웠던 피

퍼렇게 맺혀

멍한

내 생의 하오

말간 물빛으로

하늘에 어리는

나의 그림자

짧은 허상으로

사라질 내 삶의

흔적

하나, 하나, 지우려

잦아드는

마지막, 나의

적빈을 흔드는

아내가 늘인

흐린 그림자

하나.

 

노래

 

눈물로 노래를 씻어 부르면

노래마다 구구절절 빛이 날까

눈썹 끝에 별을 달고

홀로 가는 길

별 내린 풀숲에서

실을 짜 엮고 있는 풀벌레들

계절은 가릉가릉 현악기로 울리고

달빛 타고

하늘 가득 날아가는 기러기 떼

허공중에 떠가는

수많은 섬이구나

날갯짓마다 파도가 일어

가을이 젖는데

내 저 섬을 비추는 등대라면

하늘길 안내하는 불빛이라면!

 

 

절망과 희망은 한집에 삽니다

슬픔과 기쁨은 같은 이름입니다

고통과 즐거움은 위아래일 뿐입니다

미움과 사랑은 본시 한 몸입니다

삶과 죽음도 한 길의 여정입니다

앞과 등이 따로 보일 뿐입니다

크게 보이고 작게 보일 따름입니다

짚신도 짝이 있듯

하물며 짝이 아닌 게 없고

손바닥도 마주쳐 짝짝 소리를 냅니다

그런데, 아내는 지금

고장난명孤掌難鳴의 외손뼉을 치며

칠흑 같은 밤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행복

 

몸 안의 철이 다 빠져나갈 때

우리는 철이 든다 합니다

철이 난다 합니다

그러니 들고 나는 것이 하납니다

한때는 불 속으로 들어가

설레고 안달했지마는

이제는 은은한 염불소리

물빛으로 흐르는 속에

영혼의 빈자리마다

난초꽃 한 송이 피워 놓고

물처럼 바람처럼 흘러가니

세상, 사람들 모두가 따뜻합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눈을 떴습니다

아내 손을 잡고 산책을 나갑니다.

 

 

                                  * : 홍해리 시선집 마음이 지워지다(놀북, 2021)에서

                                                     * 사진 : 해오라비난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