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문충성 시집 '어쩌다 만난 우리끼리'의 시

김창집 2021. 9. 12. 00:21

나 혼자 부르는 노래

 

바닷가엘 가면 가슴 속에서 떠오르는 해가 보이는가

파닥파닥 날갯짓 치며 날아오르는 새벽이 보이는가

잠자리처럼 방향 없이 날아다니는 명상의 조각들

보이는가 발걸음의 조그마한 흔적들

때로 흐느낌같이 조약돌 위로

밀려오며 부서지는 저녁 노을

그 노을 소리 보이는가

별들이 뜨고

어두움이 밀려오고

목숨 가까이

독수리 날아드는 장엄한 소리

내 이마가 보이는가

 

어쩌다 만난 우리끼리

 

섬 쥐똥나무 아래 엉겅퀴꽃

그림자 하나 모로 눕는다

물 아지랑이 피어오른다 피어오른다

어쩌다 만난 우리 끼리

부질없는 발걸음들

사랑의 눈길 맞추느니 말없이

봄날

이울고

어디엔가 숨어 잦아든

꾀꼬리 울음소리

있는 듯 있는 듯

보랏빛으로 저물 때

 

내가 있는 곳은

 

초록 잎새 사이

그 잎새 사는

아파트와 아파트 사이

거기 사는 낯선

사람과 사람 사이

온갖 욕망 몸 비비는

한 잎

꿈과 돈 사이

그 잎새 죽이는

돈과 꿈

초록 잎새 사이

 

사마귀여 너는

 

천지가 푸르름으로 눈 부셔 푸르르르 잠자리 한 마리

콧노래 부르며 얼얼히 존재에 취해

하늘하늘 날아다니다

푸르름에 어깨 추스르는

풀 잎새에 매달려

달콤한 휴식 삭이고 있을 때

사마귀여 너는 뒤통수치며

사로잡는구나 노랗게 잠자리

세상이 무너져내리는구나

너는 아무 말도 않는구나

무서운 눈 커다랗게 부릅뜨고

날카로운 손으로 목 죄며 잠자리

넋까지 갉아먹는구나 으삭으삭

슬픔도 고통도 없구나 캄캄한 하늘이여

 

하루살이에게

 

눈 속으로 가득 차오는 불이여

불을 보아라 비로소

불 속에 열리는

환한 길이 있느냐

그 길 향해 어정어정

걸어 들어가면 어느 불꽃 속

불타는 침묵으로

(너무 넓구나)이여

생사의 무릉도원武陵桃源이여

어느 길 가고 있는 것이냐

기억의 어두운 곳 더듬으며

죽어도 다시 태어나도

하루살이는 하루살이일 뿐

 

 

                            * 문충성 시집 어쩌다 만난 우리끼리(탐라목석원, 1997)에서

                                                     * 사진 : 오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