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역류 동인 '제4시집'의 시들(1)

김창집 2021. 10. 4. 00:04

그런 가을 이종문

 

아아

꽃이 붉다

그 한 마디 남겨놓고

그는 숨을 거뒀다, 장미꽃 받아들고

그 붉은 향기香氣에 취

꽃다발을

품에 안고.

 

꽃의

향기香氣에 취

한 생애를 마감하는

그런 사람들도 더러 있는 나라,

그것이 신문에도 나는

아아, 그런

가을!

 

환선굴幻仙窟 물소리 - 홍성운

 

파도소리 비우러 환선굴을 갔다가 계류와 공명하는 이중주를 들었다

봄볕에 산을 오르던 산수유 노란 꽃빛

 

처음 들어설 땐 아름드리 전나무들

백두대간 봉을 닮아 무심해 보였지만

그늘에 주막 몇 채를 내심 지키고 있었다

 

얼추 동굴은 텅 비었다 한대도 눈 떠 어둠이 눈감으면 물소리다

돌절구 여직 따습다 좌선한 환선도인

 

곧추선 산허리에 속살 뵈는 선녀폭포

제 몸 때려 세상을 깨우고 부서져 환해진다

웬만큼 여문 물소리

동굴의 그 일갈(一喝)

 

찔레 강현덕

 

들길 찔레무더기

꽃잎 다 진 무더기

제 잎새를 찌르고

여위어 가는 줄기

긴 하루 어지러운 칠월

바람에 씻는 눈물

 

아팠던 것이다

괴로웠던 것이다

누군가에 박혀있을 가시

어두운 봄날의 기억

그래서 제 몸에 상처를 내고

저리 우는 것이다.

 

*강원도기념물 제81호 창령사지 나한상군

미이라 - 나순옥

 

흙으로 돌아가야 할

편안한 길 막아서서

산 자들의 욕망으로

내 육신 탱탱히 조율해

, 저승

단단히 잇대어

촘촘촘 박음질했다

 

산성비 썩지 않는 낙엽

그네들 바람인가

지층 속 깊이 잠든 화석

그들에겐 무엇인가

영생도

큰손 가지면

근저당 잡을 수 있나

 

동백꽃 붉은 기름

화르르 온몸에 부어

소지 올리듯 소지 올리듯

그렇게 떠났으면

흙으로

갈 수 없다면

한 줌 잰들 어떠리

 

나의 노래 권갑하

 

  내 안에 드높이 치솟는 마른 돌개바람, 그 몸살 끝 먹피마저 다시 갈아 들이켜도 허공만 바르르 떨리는 저 밑동의 속울음

 

  피 살 죄다 삭혀 맑은 이슬 달아 올리듯 한없는 눈물로도 질정 못할 몇 구절은 칠흑도 다 못 가둔 하늘 은하로나 흘리느니.

 

 

                                 *역류동인 제4시집 낯선 시간의 향기(세시, 2002)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