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런 가을 – 이종문
아아
꽃이 붉다
그 한 마디 남겨놓고
그는 숨을 거뒀다, 장미꽃 받아들고
그 붉은 향기香氣에 취醉해
꽃다발을
품에 안고.
꽃의
향기香氣에 취醉해
한 생애를 마감하는
그런 사람들도 더러 있는 나라,
그것이 신문에도 나는
아아, 그런
가을!
♧ 환선굴幻仙窟 물소리 - 홍성운
파도소리 비우러 환선굴을 갔다가 계류와 공명하는 이중주를 들었다
봄볕에 산을 오르던 산수유 노란 꽃빛
처음 들어설 땐 아름드리 전나무들
백두대간 봉을 닮아 무심해 보였지만
그늘에 주막 몇 채를 내심 지키고 있었다
얼추 동굴은 텅 비었다 한대도 눈 떠 어둠이 눈감으면 물소리다
돌절구 여직 따습다 좌선한 환선도인
곧추선 산허리에 속살 뵈는 선녀폭포
제 몸 때려 세상을 깨우고 부서져 환해진다
웬만큼 여문 물소리
동굴의 그 일갈(一喝)
♧ 찔레 – 강현덕
들길 찔레무더기
꽃잎 다 진 무더기
제 잎새를 찌르고
여위어 가는 줄기
긴 하루 어지러운 칠월
바람에 씻는 눈물
아팠던 것이다
괴로웠던 것이다
누군가에 박혀있을 가시
어두운 봄날의 기억
그래서 제 몸에 상처를 내고
저리 우는 것이다.
♧ 미이라 - 나순옥
흙으로 돌아가야 할
편안한 길 막아서서
산 자들의 욕망으로
내 육신 탱탱히 조율해
이, 저승
단단히 잇대어
촘촘촘 박음질했다
산성비 썩지 않는 낙엽
그네들 바람인가
지층 속 깊이 잠든 화석
그들에겐 무엇인가
영생도
큰손 가지면
근저당 잡을 수 있나
동백꽃 붉은 기름
화르르 온몸에 부어
소지 올리듯 소지 올리듯
그렇게 떠났으면
흙으로
갈 수 없다면
한 줌 잰들 어떠리
♧ 나의 노래 – 권갑하
내 안에 드높이 치솟는 마른 돌개바람, 그 몸살 끝 먹피마저 다시 갈아 들이켜도 허공만 바르르 떨리는 저 밑동의 속울음
피 살 죄다 삭혀 맑은 이슬 달아 올리듯 한없는 눈물로도 질정 못할 몇 구절은 칠흑도 다 못 가둔 하늘 은하로나 흘리느니.
*역류동인 제4시집 『낯선 시간의 향기』 (세시, 2002)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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