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월간 '우리詩' 2021년 10월호의 시(2)

김창집 2021. 10. 14. 01:36

이방인 시편 - 장성호

    - Rainy Days and Mondays

 

서초 고속도로변 오솔길

숲속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며

평생 살아온 한 여인

비오는 월요일이면 혼자 중얼거린다

늙은 것 같아

삶의 마침표를 찍어야 하나요

매일 그녀를 찾아오던 그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주변을 둘러보아도 혼자인 것 같다

그녀의 얼굴은 점점 마비되어 간다

그녀는 가슴을 후벼 파듯이 노래한다

난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어요

숲속에서 겉도는 이방인 같아요

비 오는 월요일이면 언제나 우울해요

그 사람과 함께한 것은 여기까지예요

이제 날 진정으로 사랑하는 다른 누군가를 찾아 나서고 싶어요

숲속에 카펜터스가 부르는 노래 “Rainy Days and Mondays” 빗물처럼 흐른다

저기 흠뻑 젖은 나무벤치

지나가는 우산 쓴 사람을 하염없이 바라만 보고 있다

 

착시 이주리

 

매일 전생처럼 살아나는 기억

그 기억의 인장

지울 수 있을까

 

언젠가 난 9층 건물 옥상에 올라가

한낮이 피워 올린 담배연기를

안개라 생각한 적 있었다

 

밤이 원고지라면

낮은 박박 지워 버릴 원고

 

그것이 혹독한 착시라 해도

밤새 한번 써 버린 원고는

낮이 오기 전엔 지울 수 없다

 

단전리 느티나무 - 임미리

 

마을 어귀에 들어서니 당산나무가 있다.

과거의 기억을 전설처럼 품고 의연하게 외지인을 맞이한다.

 

단전리 끝자락에서 이끌리듯 마주한 느티나무다.

누군가 다녀간 자리에 재물처럼 쌓여있는 쌀과 과자

신목의 영험함을 믿는 간절한 자였으리라.

 

나무의 이력을 살피니 사백여 년을 훌쩍 넘긴 아름드리다.

임진왜란 때 순절한 장군을 기린다는 반구형 장군목.

그동안 마을을 지켜준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듯

여기저기 울퉁불퉁한 골로 얽힌 채 누군가의 한을 씻어주고 있다.

 

나무 아래는 품격을 갖춘 오래된 정자도 있다.

잠시 쉬어가라는 듯 외지인의 고된 발품을 받아준다.

긴 세월 오고 간 행인들 고단한 몸 눕혀 쉬어갔으리라.

 

처마 끝에 걸린 느티나무 가지 사이로 드러나는 파란 하늘

흰구름과 더불어 유유자적한다.

수려한 하늘풍경을 엿보느라 잠시 속세를 내려놓는다.

 

벙어리매미 - 이제우

 

염천에

만물이 지쳐 적막한데

천지를 진동하는 매미 소리

 

세상에

제 잘났다고 내지르는

목소리 크기도 하다

 

그 옆에

입 다물고 꿈적도 하지 않는

매미 한 마리

 

하안거에 들어

묵언 수행 중인가

참선 삼매에 빠졌는가

 

적멸을 꿈꾸는 그대여

언제쯤 성불 하시려나?

 

동종에게 - 김명옥

 

우체국 가는 길가 중형 믹스견

지날 때마다 살랑살랑 꼬리 친다

낯도 안 가리는

순둥이가 집이나 볼까 싶었는데

어느 날 지나는 소형견 보더니

우렁차게 왈왈거린다

 

헤이 덩치도 작은 꼬맹이

예가 어디라고 허락 없이 지나가는 거야

왈왈

호령해 대는 것인데

동종에게 더 사납다

 

강아지는 품에 안고

쓰다듬어주면서

나도 동종에게

저리 짖어댄 적이 있었을 것이다

 

마음의 소매를 걷어붙이고

못난 이파리에 묻은 먼지

말갛게 씻어내야지

 

길상사 김정식

 

가을바람

도심의 산사(山寺)

 

작은 연못

 

연꽃 위에 울리는

고요한 풍경소리

 

나무의자 하나

 

마음 빈 언저리에

그어보는 밑줄

 

 

                                           * 월간 우리202110월 통권 400호에서

                                               * 사진 : 아직도 가을 생각이 없는 나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