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김윤숙 시집 '가시낭꽃 바다'의 시(2)

김창집 2021. 10. 18. 12:45

용두암

 

꿈꾸는 사람들은 용바위를 안고 산다

수평선 눈높이로 손가락을 걸었던

그 멍에 경매에 부쳐 겨울 파도에 싯기고

 

유채꽃 그 뿌리로 용담동에 찾아왔다

터 잡은 늙은 어부 흔들리는 일상에도

외끌이 매어둔 바다 갈치바늘 반짝인다

 

끌어라 외끌이여, 샛바람을 끌어라

승천을 저당잡힌 용두암이 꿈틀댄다

천년의 팽팽한 닻줄 시방 툭 끊고 싶다

 

신제주 나팔꽃

 

용케 살아 있었구나

늦가을 이 새벽에

어느새 농장까지 먼저 와 있었구나

비행기 뜨고 내리듯

또 피고 지는구나.

 

근조화도 못되고

꽃다발도 못되고

그래서 미안한지 돌담 곁에 비켜서서

한 세상 밥값을 하듯

뱃고동 소리 피워낸다.

 

사철나무 생울타리

한낮을 떠메고

예닐곱 햇살 같은 내 그리움 떠메고

밤마다 대문을 걸어도

되살아난다, 이 야성.

 

가을 편지

 

떡갈나무 밑둥치 눈 시리게 새기던

마른 꽃 언저리 마른 냄새나는 이름

들녘의 사금파리로

내 손등을 찍고 싶다

 

햇살 한 움큼이 목젖으로 숨어든다

남문통 그 골목에 차압당한 노을이

철대문 딱지 붙이듯

내 가슴에 붙은 딱지.

 

여름파장

 

한여름 꽃잎에도 복병처럼 가을은 있다

주일날 성당에 못간 철 이른 코스모스

현금도 추스르지 못한 때 절은 여름은 간다

 

젊은 애인 고백이다 순명하는 저 차도 변

판자로 덧댄 길에 못 자국이 녹슨다

바다는 아침녘에야 간신히 파장한다

 

밀물로 든 포구 목젖까지 차올라

받을 도시 하나 없는 장미 목을 잘라낸다

한 세상 폐기처분된 검붉은 가시가 된다

 

나의 행간

 

다호동 꽃마을 비행기 뜨고 내리면

 

오늘도 또 피었다, 거베라 저 망할 것

 

까치들 총포소리에 시위하는 날갯짓

 

하늘이 부친 경매 너를 낙찰 받은 거다

 

거베라꽃 피는 사이 제대 앞둔 아들아

 

오너라, 저 거친 불배 향기로 뜬 이 포구에

 

옛 등대로 오라

 

여태껏 못 떠났나 제주항 저 방파제

금채기 해녀들을 다 가둔 바다가

산지천 거슬러 와서

등대로 핀 쇠별꽃.

 

애당초 그 불빛들은 승선하지 않았다

사라봉에서 별도봉으로 바닷길만 감아 돌던

잘 가라 허기진 청춘

다시 못 올 이 세상을.

 

누가 나를 매었나 항구의 비트에

연삼로 왕벚꽃 훑고 간 상끌이선단

먼 바다가 불빛 하나가

속절없이 나를 끈다.

 

 

                                  *김윤숙 시집 가시낭꽃 바다(고요아침, 2007)에서

                                              *사진 : 한라산 상고대(옛날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