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김병택 시집 '벌목장에서' 발간

김창집 2021. 10. 22. 00:20

시인의 말

 

  이 시집에 수록한 시들을 천천히 읽으면서, 예전에 비해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적지 않게 바뀌었음을 확인했다. 이와 더불어, 시를 쓸 때마다 비시(非詩)’가 아닌 를 쓰기 위해 마음을 다잡던 시간들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어떻든, 정체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다행스럽다.

 

20218

김병택

 

벌목장에서

 

일상에 부딪힌 내 희망이

통나무 모양으로 잘린 채

허공으로 빠져나간다

 

그때마다 들뜬 시간의

한복판에서 자맥질하던

얼굴을 바로 세우고

서둘러 하늘을 찾는다

 

나뭇가지 사이로는

시간이 빠른 속도로

어지럽게 이동한다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에는

흔들리는 세상이 잠시

눈앞에 나타났다 사라진다

 

세상을 이기는 방법이

여기저기 널려 있지만

내가 찾는 방법은

이 땅의 어디에도 없다

 

깊은 산속에 놓인 벌목장에는

차가운 눈비가 자주 내린다

 

사막을 건널 때의

스산함이 연신 주위를 맴돈다

 

보이지 않는 길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은

산을 오르는 길도

바다로 가는 길도 아니다

 

일 년에도 수십 차례

생채기 난 다리를 끌며

우왕좌왕 골목을 헤매며

 

마땅히 걸어가야 할 길을

동반자 없이 걸어왔는데

 

밀려오는 추위, 더위에도

굴하지 않고 걸어왔는데

 

숲속의 희미한 불빛을

유일한 길잡이로 삼아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여기까지 걸어왔는데

 

끝까지 걸어가야 할 길은

여전히 잘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완성될 때

 

사랑은 센 바람 부는 날의

들판을 쉬지 않고 걸을 때

 

우정은 지금까지 닫았던

마음의 창문을 다시 열 때

 

이별은 떨어진 별을 보며

힘들었던 일을 떠올릴 때

 

조금씩 완성되지만

 

우리는 이 모든 것이 실낱같은

시간이었음을 확인할 때

 

자연스럽게 완성된다

 

마이웨이

 

신중히 부르는 그의 노래에는

단단한 장벽을 뚫고 살아온

의 방식들이 자주 등장한다

 

운명의 지침은 매우 뚜렷했고

신의 가르침은 엄격했을 텐데

 

시대의 기준은 아주 분명했고

일상의 요구는 한결같았을 텐데

 

습관의 힘은 어디서나 강했고

욕망의 무질서는 끝없었을 텐데

 

그는 옛날을 이야기하듯 노래한다

 

 

                              * 김병택 시집 벌목장에서(새미, 2021)에서

                                          * 사진 : ‘제주 올레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