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진하, 시집 '제웅의 노래' 발간

김창집 2021. 11. 27. 09:19

 

[시인의 말]

 

오이디푸스의 글쓰기

 

  문학적 글쓰기는 문학이라는 모태에서 장르의 씨앗을 받아 태어난다. 그러나 글쓰기는 아버지 장르를 죽이고 다만 문학을 아내로 삼는다. 장르의 피를 부인하며 애써 어미 문학을 아내로 삼아 하나의 형식을 낳으려는 모순은 얼마나 오이디푸스적인가. 글의 형식에서 장르의 유전을 벗어날 수는 없다. 문학적 글쓰기는 부친 살해의 죄의식을 어머니이자 아내인 문학에 대한 사랑으로 갚으려는 불가능한 시도다.

 

  한 시대를 사는 개인의 삶은 얼마나 역사적인가. 가난이나 불화, 사랑이나 열망은 정치나 전쟁과 마찬가지로 역사적이다. 개인의 실존이란 호수에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물거품처럼, 동심원처럼 피었다 사라진다 해도 그 기억의 흔적들은 또 얼마나 역사적인가. 실존은 역사의 그릇에 담겼다가 수채통 속으로 버려진다.

 

  시는 형식에서나 정신에서나 무서운 매혹이다. 오르페우스의 영혼에 숨겨진 죽음의 검은 구멍이 바깥과 통한다는 걸 우리는 직감한다. 홀로 노래를 흥얼거리다가 문득 멈추었을 때 존재는 하나의 귀가 되어 타자의 목소리들이 울려 나오는 관이 된다. 존재 안에 타자의 음성들이 검은 관을 타고 들어와서 놀다 간다.

 

  시, 아버지, 역사, 지푸라기 인형, 이런 말들이 무슨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결국 모어(langue maternelle)에서 발생한 문학이라는 언어 행위가 부어(langue paternelle)의 형상으로 모어 속에 생식하는 양상을 드러내고 있는 모순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삶과 역사 형식의 형용모순. 오르페우스가 지옥으로 찾으러 간 아내는 어쩌면 그의 어머니이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형식과 말이 역사나 흔적으로 의미 있게 남더라도 결국 아무것도 아니다. 숙명으로서의 삶과 사랑만이 뜨겁게 피었다 사라져 갈 뿐이다.

 

  결국 삶은 사랑의 힘으로 죽음과 대결하는 결투다. 시는 말의 힘으로 분열된 영혼을 구제하려는 랩소디이자 죽은 영혼을 위무하려는 레퀴엠이고. 한 세월을 살고 사라지는 삶의 노래는 광시곡과 진혼가가 뒤엉킨 넋두리가 아닌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벚꽃 하얗게 날리는

둑길 아래

목이 긴 새 한 마리

그림자 짙다

 

잿빛 물고기 한 마리

물방울 몇 개

뚝뚝 흘리며

그 목을 넘어갔다

 

은빛 유리판 같은

개울 속을

다시 들여다보는

죽음의 부리

 

나무는 마냥

꽃 몸살에 바쁘고

홀린 사람들은

딴 데로 몰려간다

 

 

봄밤

 

감기 뒤끝

 

천식에 깨어

 

숨 고르다가

 

문득

 

어둠 속 마당을 보니

 

복사꽃이 환하다

 

벚꽃이 좋다던

 

소녀의 눈빛처럼

 

 

목련이 필 때

 

목련이 필 무렵

아버지는 입원하셨다

가을의 폐렴이 재발했다

 

사월에도

눈밭 날리는 곳이

어딘가에는 있다

 

늘 진눈개비가 내리는 곳도

이 세상 어딘가에는 있다

하얀 목련이 가리키는 그곳이

 

 

아버지의 행장

 

구름 머무는 산자락

패랭이꽃 한 줄기

철 따라 보고 지고

 

바람 좋은 날

휘파람 소리

휠릴리 휠릴리

 

담배 연기 한 줄기

풀 이슬에 젖을 무렵

아침저녁으로 한결같던

 

 

 

살아 있다는 건 살이 있는 거

그대가 내 곁에서 숨 쉬고 움직이고

손을 잡을 수 있고 심장이 뛰고

손아귀에 따뜻함이 느껴지는 거

 

살아 있음이 삶이고

살음으로써 사람이 되고

삶을 살고 살림을 이루나니

 

살이 온 생명의 에너지로

사랑과 즐거움으로 살을 태워

불처럼 살아나고 살아 오르고

 

끝내 삶을 불사르고 흔적을 지우며

살아지고 사라지나니!

막막히 사라지나니!

 

 

                                *진하 시집 제웅의 노래(시작시인선 0394, 2021)에서

                                                  *사진 : 봄꽃의 향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