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월간 '우리詩' 2월호의 시(4)

김창집 2023. 2. 28. 02:13

 

 

춘설 - 정지용

 

 

문 열자 선뜻!

먼 산이 이마에 차라.

 

우수절 들어

바로 초하로 아침,

 

새삼스레 눈이 덮인 뫼뿌리와

서늘옵고 빛난 이마받이 하다.

 

얼음 금가고 바람 새로 따르거니

흰 옷고름 절로 향기롭워라.

 

웅숭거리고 살어난 양이

아아 꿈같기에 설어라.

 

미나리 파릇한 새순 돋고

옴짓 아니긔던 고기입이 오물거리는,

 

꽃 피기 전 철 아닌 눈에

핫옷 벗고 도로 칩고 싶어라.

 

 

 

현대산 통조림 love-777 - 김나비

 

 

  오늘이 마지막 기회입니다

  이 제품은, 3회차 만에 매진될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는데요, 이번에 재출시한 상품에는 웃음, 바다, 촛불 등 달달한 감미료를 첨가했습니다

 

  사용 시 주의사항 알려드릴게요

  첫째, 절단 부분이 날카로우므로 개봉 할 땐 심장이 베이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둘째, 유통 중 흠이 생겨도 절대 교환이 안 됩니다

  셋째, 진심을 담는 일은 폐기 할 때 어려움을 겪을 수 있어, 가슴 언저리만 넣었습니다

  넷째, 개봉 후 변질 될 우려가 농후하니 이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기타 마음 가공품이고 멸균제품은 아닙니다

 

  유통기한은 제품 윗면 표기일까지이구요 이번에 주문하신 분 중 선착순 다섯 명에게 보너스로 이별 통조림 하나를 더 드립니다

  헤어짐은 통통하게 살 오른 사랑으로 만들지요 love 통조림을 구매하신 분들이라면 반드시 먹어봐야 할 맛인데요 ?

자 지금 바로 전화주세요

 

  영양 정보는 눈물 소금 400g 고통 탄수화물 600g

  스트레스 콜레스테롤 65g 화난 단백질 12g입니다

  마감이 5, 5분 남았습니다

 

  드디어 매진입니다

  방송 후에는 080-6242-4545로 전화주세요 지금까지 love-777통조림이었고요, 저는 호스트 김나비였습니다

 

 

 

새벽의 처형장 - 김영랑

 

 

새벽의 처형장處刑場에는 서리 찬 마의 숨길이 휙휙 살을 에움니다

탕탕 탕탕탕 퍽퍽 쓰러집니다

모두가 씩씩한 맑은 눈을 가진 젊은이들 낳기 전에

임을 빼앗긴 태극기를 도루 찾아 삼 년을 휘두르며

바른 길을 앞서 걷던 젊은이들

탕탕탕 탕탕 자꾸 쓰러집니다

연유 모를 떼죽음 원통한 떼죽음

마지막 숨이 다 저질 때에도 못 잇는 것은

하현下弦 찬 달 아래 종고산鐘鼓山 머리 날으는 태극기

해 가는 조국의 모습

눈이 차마 감겨졌을까요

보아요 저 흘러내리는 싸늘한 피의 줄기를

피를 흠뻑 마신 그해가 일곱 번 다시 뜨도록

비린내는 죽음의 거리를 휩쓸고 숨다젓나니

처형이 잠시 쉬는 그 새벽마다

피를 씻는 물차 눈물을 퍼부어도 퍼부어도

보아요 저 흘러내리는 생혈生血의 싸늘한 핏줄기를

 

 

 

 

웃음꽃 잔치 - 이화인

 

 

누가 볼까 봐

저녁 어스름에 희미한 별빛 꼬리 붙들고

살금살금 담장을 넘는다

청상과부 호박 댁이 소리 소문 없이

허우대 멀쩡한 보름달과 정분났다

환갑 진갑 다 지나 폐경도 오랜

황천길 문턱에서 무서리 맞은 몸으로

배배 꼬인 마른 넝쿨에

크고 작은 애호박이 주렁주렁 매달렸다

하하 호호 허벌난 웃음꽃 잔치에

부러운 호박꽃들이 축하잔치 벌였다.

 

 

 

 

빛을 기웃거리고 싶은 생각까지 - 성숙옥

 

 

서리가 내린 후

하룻밤 사이에 무너지는 것들을 본다

차가워지는 대기를 몸으로 맞는 계절

잎은 말리고 엎질러진 색은 흰 국화까지 스미고 만다

낙엽을 얹어 색으로 말하는 가을 들판

갈색으로 평정하며 소멸을 받든다

나는 내미는 빛을 덥석 잡은 그림자를 보며

색과 잎 사이 뜬구름의 일을 떨군다

안갯속에서 안개를 지우려는 내 감정은 어떻게 마모되어 갈까

아직 지켜야 할 것이 있는 듯 빈 가지를 가끔 흔드는 나무

자꾸만 모양을 바꾸는 내 마음마저 흔든다

사랑이 꽃으로 올 때 그 방향에서 쏟아지던 빛, 그리고 그림자

가시에 찔리다 그늘에 묶이다

오지 않은 시간을 놓아버린 환상의 민낯들

빛을 기웃거리고 싶은 생각까지

마르는 시래기 같아지는 지금

간다고 다시 못 올 사랑은 없겠지만

가고 오는 것들 사이

헤매는 마음을 분질러 넣고

타닥거리는 아궁이 불이나 멍하니 볼까나

 

  

 

                                      * 월간 우리2월호(통권 416)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