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장한라 시집 '철원이, 그 시정마'의 시(4)

김창집 2023. 3. 2. 01:02

 

 

목련꽃 여인

 

 

물컹, 뜨거운 기억이

빠져나간 꽃자리

몸 이별을 보셨나요

대답 아래 목련은 지고

 

지고 또

하양 떨어져

목련 아래 우는 여인

 

하얀 꽃 가득 핀 봄밤

여린 몸 이별 틈으로

파열된 심장

눈물로 파고들어

 

마침내

처음 그 자리

봉긋한 목련의 집

 

 

 

생강나무* 창가

 

 

잘 안다고

내 것이라고 여긴 향기

여전히 낯설다

 

부대끼고 살 부비며

꽃들이 웃는다

 

노란빛

네 순진무구함에

속앓이 풀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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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나무 : 암수 딴 그루.

 

 

 

어두운 진실

 

 

손아귀 따뜻한 커피 한 잔 속

아이의 검은손이 얼비친다

 

지천에 널린 커피나무와 함께

스쿨존이 아닌 커피존에 사는 아이

가녀린 팔, 작은 손에

연필 대신 낫을 쥐고

가족의 끼니를 위해 커피 열매를 딴다

하루 밥벌이에

시달리며 말라 간다

 

파란 하늘, 푸른 땅 사이

공정무역 중심에 사람이 있다

 

하얀 미소 가지런한

지구촌 아이들을 살리려는 마음이 있다

 

 

 

무안 뻘낙지

 

 

갯뻘이 아니라

갯벌이 옳다고

힘의 논리로 우길지라도 도마에 오를 수밖에 없는 뻘낙지

칠게의 영역을 넘나든 죄

어무이 애간장을 녹인 죄

치도곤을 당해도 마땅해여

메기에 받히고 꽃게에 차여

엔간히 용쓰며

뭐라도 붙잡아야 살 것이어라

워메 짠해서 우짜스까

여린 한 마디

음마야

조사지고 드세져

돌아갈 숨구멍을 헤매다

사는 동안 솔찬히

늪 바닥이 좋았어라

 

숨넘어가는 순간까지

탕타당 빨판에 새길 일

 

 

 

4, 첫 남성

 

 

정전을 확인한다

당신에게 몸을 기울였을 때

가슴속 회오리바람

불길한 기운은 전신에 드리워

 

등 굽은 천남성*처럼

삼켜버린 마지막 말

이어질 듯 끊어져

제 울음으로 맞잡은 손

슬픔도 손금을 타고 흐른다

 

더는 들려주지 못하는 애너벨 리

잊으라는 말은 할 수도 없고

잊겠다 해서도 안 되는

핏줄 속을 맴돌던 고름진 기억들

 

풋잠에서 눈 뜨면

무대 위, 영원에 누운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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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남성 : 산지의 습한 그늘에서 자라며 알뿌리 및 열매는 강한 독성을 지닌 식물.

 

 

 

                  *장한라 시집 철원이, 그 시정마(상상인 시인선 028, 2023)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