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길 이야기 65

서귀포시 '하영올레' 1코스(2)

□ 추억의 숲길 ‘서귀포 삼촌들이 어린 시절 기억을 되살려 찾아낸 숲길 구간’이라는 부제처럼 매화원에서 냇가를 따라 ‘서귀교’ 다리 밑을 오르내리는 좁은 길. 고기 낚으러 바다로 오가거나 천지연을 들락거리던 ‘샛길’로 짐작되는 정감 있는 길이다. 진입로에 곱게 핀 팔손이가 아는 체를 하고, 계단을 따라 내리면 아직 폭포가 아닌데도 물소리가 요란하다. 비가 많이 올 때는 다리 위로 돌아가야 한다. 운동장으로 나가면서 보니 무덤 한 자리가 고즈넉이 자리 잡았다. 작년에 분명히 벌초를 했을 텐데도 따뜻한 곳이어서 그런지 고사리가 가득하다. 고사리 사이로 표석과 동자석이 숨바꼭질 하는 것 같다. 넓은 곳으로 나오니 커다란 초생달 모양의 구조물이 서 있는데, 이탈리아 작가의 작품으로 한라산을 지향한다고 풀이했다...

길 이야기 2022.01.16

서귀포시 '하영올레' 1코스(1)

□ 서귀포를 아시나요 제주시에서 출발하는 281번 시외버스를 타고 가 옛 버스터미널이 자리했던 서귀포 중앙로터리에 내렸을 때, 오랜만에 여행의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코로나 19로 섬을 벗어나지 못하고 갇혀 있던 2년의 시간을 딛고, 여행 차 낯선 소도시에 첫발을 디딘 느낌이랄까. 길을 건너 서귀포시 제1청사로 가는데, 건물 바깥벽을 반쯤 차지한 녹색식물이 색다르게 다가온다. 출발점에 안내지도가 잘 구비되어 있어 일행과 함께 자세히 살펴보고 나서, 1코스를 목표로 첫걸음을 뗀다. 그리고는 서쪽으로 조금 걸어 나와 코스 따라 남쪽 길로 접어들었다. 제주시와는 다른 밝고 따뜻한 기운이 감돈다. 이제까지 같은 섬에 살면서도 서귀포로 일을 보러 오거나 지나다가 식사 정도 했지, 오래된 골목 곳곳에 숨어 있는 ..

길 이야기 2022.01.15

제주 안덕 동광마을 4․3길 2코스(완)

□ 옛 공고판과 광신사숙 터 최초 학살 터 조금 지나서 맞은편에 옛 공고판과 광신사숙 터가 이웃해 있다. 옛날 이곳은 7소장에 소속된 목장지역이었다. 19세기 중반을 넘어서면서 병인양요(1866)와 신미양요(1872) 같은 외세와의 일련의 사건을 겪고 나서 신무기에 대항해 말의 쓸모가 현격히 떨어졌는지 말 목장에 대한 관심이 덜해졌고, 이곳에 화전을 일구는 사람들이 하나둘 찾아들기 시작하였다. 지금 집터만 해도 꽤 넓은 면적이고 주변에 많은 밭을 일구었다. 4․3 당시만 해도 130호 가량 되었다는 것으로 보아 꽤 큰 마을이었으며, 철종 때 농민들의 수탈에 분개해 일어난 제주민란(1862) 제2차 봉기 때 앞장섰던 강제검(姜悌儉)도 이곳 출신이다. 그런 때문인지 교육에 대한 열의가 강해 일제강점기인 19..

길 이야기 2021.05.18

제주 안덕 동광마을 4․3길 2코스(1)

□ 임문숙 일가 헛묘 동광마을 4․3길은 1, 2코스 모두 동광리 복지회관을 시작점과 종착점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다른 곳처럼 상주하는 안내자는 없다. 밖에 걸린 안내도만 보면 그냥 무난하게 다녀올 수 있는 곳이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 싶다. 2코스는 헛묘를 거쳐 잃어버린 마을 ‘무등이왓’을 돌아보고, 안덕면 충혼묘지를 지나 원물오름에 올라갔다 돌아오는 노정(路程)이다. 헛묘는 복지회관에서 나와 동광육거리에 이르기 직전에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밭 하나 건너 한 산담 안에 3기와 4기를 구분지어 모두 7기의 봉분이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두 봉분이 합묘(合墓)여서 모두 아홉 분의 영혼을 모신 셈이다. 가운데 배롱나무 한 그루를 심었고, 그 왼쪽에 ‘헛묘’라는 이름으로 안내판을 세웠다. 안내판에는 ‘이곳 ..

길 이야기 2021.05.17

제주 안덕 동광마을 4․3길 1코스(2)

□ 4․3 희생자 위령비 삼밭구석의 중심이었던 마을공터인 동광리 1425-1번지에는 수령 약 500년을 헤아리는 보호수 팽나무가 한 그루 있다. 서 있기 보다는 쓰러지기 직전의 모습으로 다섯 개의 받침에 의해 떠받혀 있다. 마을을 태울 때 화상을 입었는지 줄기에 시멘트로 때운 상처가 애처롭다. 죽다가 살아남아 4․3의 상흔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모습이다. 보호수 옆에는 1999년 4월, 동광리 추진위원 대표 김여수(金麗洙)의 명의로 세운 ‘4․3사건 위령비’가 서 있다. 앞면에 ‘서기 1948년 사삼사건의 슬픈 사연을 통곡의 소리로 새겨 놓습니다. (중략) 마전동(麻田洞)은 삼을 많이 재배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4․3사건이 발생하기 전에는 50여 가구가 평화롭게 한 집안처럼 목축과 밭농사를 천직으로..

길 이야기 2021.04.19

안덕 동광마을 4․3길 1코스(1)

□ 다시 4․3길로 떠나면서 이제 곧 4월이다. 영국의 시인 T. S. 엘리어트는 그의 시 ‘황무지(荒蕪地)’ 첫 연에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어/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라고 읊었다. 그런데 4월이 ‘가장 잔인한 달’이라 한 것은 우연히도 우리 제주민이 겪었던 4․3을 두고 한 말 같다. 하지만 70여 년 동안 메마른 환경에서 고통을 주었던 4․3은 올 들어 특별법 개정안을 통과시켰고, 생존 및 행방불명 수형인 다수가 무죄 판결을 받음으로써 새로운 해결의 장이 열릴 기미를 보인다. 그래서 시외버스터미널에서 251번 버스를 타고 동광으로 가면서도 여느 때보다 훨씬 마음이 편하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던가? 흑역사(黑歷史)..

길 이야기 2021.04.01

추사 유배길 2코스 - 인연의 길(2)

☐ 추사와 매화(梅花) 구억리 검은굴에서 걸어 나오면 중산간서로(1136번)와 만나는데, 그 옆이 바로 ‘노리매공원’ 입구이자 주차장이다. ‘노리매’는 우리말 ‘놀이’와 ‘매화 梅’의 합성어로 ‘매화가 있는 도시형 공원’이라고 했다. 하지만 아직 매화가 피기엔 이른 시기여서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조선시대 시인묵객 치고 사군자(四君子) 좋아하지 않았을 사람이 있었을까? 그러나 당시 제주에서는 매화를 많이 접하지 못했을 것이다. 벚나무처럼 자생하지 않을 뿐더러 그걸 육지에서 들여다 심을 만큼 여유가 없었을 테니까. 근래엔 감귤 대체 작물이랍시고 매실(梅實)을 얻기 위해 심기도 하지만, 필자가 자랄 때만 해도 주변에서 매화를 보기 힘들었다. 그로 미루어 추사에게 매화는 두어 점의 글이나 인장(印章)에서는 볼..

길 이야기 2021.03.06

추사 유배길 2코스 - 인연의 길(1)

‘바람 부는 대로 삿갓 하나 들고 인연 따라 오가니(天風一笠亦隨緣)’는 추사 유배길 2코스 ‘인연의 길’ 표제어이다. 그리고 소개 글로 ‘수십 편의 시를 쓰고, 무수한 편지를 식구와 지인들에게 보내고, 귤이나 꽃에 대해서도 남다른 호기심을 표현하는가 하면, 특히 차를 통해 여러 지인들과 우정을 나누던 추사의 귀양살이 일상과 취미를 들여다보는 길’이란 해설을 덧붙였다. ‘인연의 길’로 명명된 2코스는 제주 추사관을 출발, 수월이못을 거쳐 추사와 감귤 → 제주옹기박물관 → 매화마을 → 승마장 → 오설록에 이르는 8km의 길로, 걷는데 3시간 정도 소요된다. □ 수선화를 좋아했던 추사 2코스 출발점은 동문에서 북쪽으로 길게 뻗은 성담 밖이다. 성 굽에는 수선화가 심어져 있어 이른 것은 하나둘 벌써 꽃이 벌기 ..

길 이야기 2021.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