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길 이야기 65

외도동 탐방로 ‘외도물길 20리’(2)

□ 보리밭 길은 콩밭 길로 변해 해안도로에서 바로 내도 보리밭 길로 통하는 곳은 지금 건축 중이다. 때문에 도로가 어질러져 있어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길목을 놓치기 쉽다. 그곳을 지나야 중요한 지점에서 길을 안내해주는 작은 돌하르방을 만나 쉽게 진입한다. 정작 ‘내도 보리밭길’로 소개된 길은 계절이 계절이니만치 진작 보리를 벤 뒤 대부분 콩을 심어놓아 일찍 씨를 뿌린 것은 얼마 없어 콩잎을 따 먹을 정도로 자랐다. 보리 대신 기장을 심은 밭 중 한 곳은 이미 베었고, 한 곳은 시원치 않은지 아직 그대로다. 길섶엔 옛 시골길에서 보이던 식물들이 많이 사라졌지만, 밭 구석에 커다란 명아주들이 눈에 띈다. 이 풀은 제주어로 ‘제낭’ 또는 ‘제쿨’이라 하는데, 한해살이풀이지만 잘 키우고 말려 지팡이를 만들면 ..

길 이야기 2022.12.27

외도동 ‘외도 물길 20리’(1)

□ 제2회 월대천 축제 때 개장 광령천, 그리고 도근천과 어시천이 만나 바닷가에 이르기 전 마지막 한 줄기로 합쳐 절경을 이루는 곳. 주민들은 이곳을 명승 월대를 내세워 ‘월대천(月臺川)’, 또는 ‘외도천(外都川)’이라 부른다. 그렇게 주민들이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월대천은 바다와 한라산 계곡물이 만나는 곳으로 건천(乾川)이 대부분인 제주에서 몇 안 되는 상시천(常時川)이다. 이렇게 좋은 물이 있기에 주민들은 팽나무와 느티나무, 소나무 등을 줄줄이 심어 그늘을 만들고 은어를 불러들여 유원지로 가꾸었다. 이에 시인 묵객들이 모여들어 ‘월대(月臺)’라 이름하고 음풍농월(吟風弄月)을 즐겼다. 육지에서 부임한 관리들 중 누대(樓臺)에서 즐기는데 익숙한 이들이 성안에서 말을 타고 나들이하기에 딱 알맞은 거리가 아니..

길 이야기 2022.12.21

고산리 차귀도 트레일(2)

□ 제법 넓은 섬 집터를 넘어서자 눈앞에 넓은 풀밭이 펼쳐진다. 제주본섬에 딸린 유인(有人島) 즉 우도, 가파도, 비양도, 마라도 다음으로 크고 또 한때 사람도 살았던 섬이다. 먹을 것도 없고 농사지을 땅도 부족하던 때, 점심만 주면 김을 매어주던 시절이었다. 이 정도 땅이면 얼마든지 개간해 농사지을 수 있었겠지. 등대가 서 있는 언덕까지는 억새 사이로 길이 나 있다. 아직도 지기 싫은 듯 늦가을 해풍(海風)에 더욱 보랏빛이 짙어진 갯쑥부쟁이가 발을 걸며 아는 채를 한다. 그들과 일일이 눈을 맞추려면 주어진 1시간을 가지고는 어림도 없겠다 생각하며 속도를 높인다. 이 땅에서 고구마와 감자를 심었었다는데, 그게 언제적 이야기였는지 지금은 아무런 근거가 없다. 이제쯤이면 이 들판에서 고구마를 거둬들이며 땔감..

길 이야기 2022.12.16

고산리 차귀도 트레일(1)

□ 차귀도 유람선에 오르며 자구내 포구에 있는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주변을 둘러본다. 언제나 한결 같은 풍경들…. 우선 긴 줄에 매달린 한치(오징어)에 눈이 간다. 물 건너온 사람들은 얼핏 ‘아! 이곳에서 한치가 많이 나나 보다.’ 할지 모르지만, 요즘 한치 낚는 시기가 아닌 것을 아는 제주사람들은 누구도 저게 제주산이라는 걸 믿지 않는다. 그렇다고 외면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아무도 그런 걸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이곳 자구내의 해풍에 꾸덕꾸덕 마른 반 건조 오징어를 ‘준치’라며 즐긴다. 또 다른 하나는 오랜 세월 자구내 포구를 지켜온 고산 옛 등대인 ‘도대불’이다. ‘도대불’이란 어원은 분명하지 않으나, 제주시 화북포구나 조천읍 북촌리 등 몇 곳에 ‘燈明臺(등명대)’라 새긴 것을 보면, 등대가 없는 작..

길 이야기 2022.12.11

용수리 당산봉 트레일(2)

□ 제주목사 임형수 숭모비 당산봉 능선을 따라 가다 아래로 난 계단으로 내린다. 전부터 당산봉을 오르는 길의 표적이 돼왔던 급수탱크가 듬직하게 서 있다. 거기서 안으로 들어가니, 알오름 초입에 웅장하게 늘어선 석물이 보인다. 제주목사를 지낸 금호(錦湖) 임형수(林亨秀) 숭모비(崇慕碑)다. 임형수 목사는 명종 때인 1545년 을사사화와 연루되어 제주목사로 좌천되었다가 파직, 결국 사사된 인물이다. 짧은 일생(1514~1547)이지만 그의 대범함이 많은 일화를 남겼다. 제주목사로 재직 중 치정(治政)이 엄격 공정하여 세상 사람들이 명환(名宦)이라 칭하더니, 파직되자 모두 애석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이곳은 그의 아들인 정산현감 임구(林枸)의 무덤이 있는 곳인데, 평택임씨 제주 입도조 선영이다. 숭모비는 임형수..

길 이야기 2022.12.06

용수리 당산봉 트레일(1)

□ 당산봉 트레일 ‘트레일[trail]’이란 외래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명승지 따위의 산속에 난 작은 길이나 오솔길’로 풀이되었다. 그러고 보니, 어떤 대상을 마구잡이로 살피기보다는 코스를 정하여 차근차근 효과적으로 돌아보자는 의미에서 만든 길일 터이다. 수월봉 지질 트레일은 속칭 ‘자구내’의 차귀도선착장을 축으로 수월봉, 당산봉, 차귀도 세 코스를 연결해 놓았다. 그러다 보니, ‘당산봉 트레일’은 올레길 12코스를 통하여 고갯길을 오르게 된다. 그러면 고갯길에서 오른쪽으로 전망대에 올라 사방을 조망하고, 오름 능선을 걸어 북쪽 급수탱크가 있는 곳에서 내려, 왼쪽으로 들어가다가 ‘평택임씨 묘역’에서 알오름 옆으로 난 길을 돌아 다시 올레길 12코스와 만나고, 오름 외륜(外輪)인 ‘생이기정’ 능선을 돌..

길 이야기 2022.12.01

고산리 수월봉 엉알길(2)

□ 화산재 지층과 화산탄 ‘수월봉은 제주의 수많은 오름 중 하나지만 남쪽의 해안절벽을 따라 드러난 화산쇄설암층은 세계적 수준의 학술적 가치를 지닌다.’ 천연기념물 제513호를 알리는 게시판의 첫 문장이다. 수월봉은 화산쇄설물이 화산가스나 수중기와 섞여 사막의 모래폭풍처럼 빠르게 지표면을 흘러가는 ‘화쇄난류(火碎亂流)’라는 독특한 화산재 운반작용에 의해 쌓여 형성된 응회환의 일부이다. 그런 화산쇄설층이 이렇게 해안절벽을 따라 연속적으로 노출되어 있는 곳은 극히 드물다고 한다. 그 때문에 외국의 여러 지질학 및 화산학 서적에 표본으로 많이 올라있다. 여기 제시된 사진에 보듯이 모래층, 자갈층, 화산재 층이 질서 있게 쌓이기도 하고 섞이기도 하면서 생생하게 드러나 있다. 그런가 하면 화산탄이 떨어지는 압력에 ..

길 이야기 2022.11.26

고산리 수월봉 엉알길(1)

□ 세계지질공원 수월봉 트레일 제주섬은 2010년 10월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되었다. 세계지질공원은 세계적으로 지질학적, 생태적, 역사적, 고고학적 가치를 지니고 있어 정책적으로 보호 관리되는 공원을 말한다. 인증된 공원에 대해서는 이를 보호할 의무를 가짐과 동시에 교육적 목적이나 관광지로 활용할 수 있다. 제주특별자치도에서는 세계지질공원의 대표적 명소로 9곳을 처음 지정했다. 이곳 ‘수월봉’을 비롯 ‘산방산’과 ‘용머리해안’, ‘중문대포해안 주상절리대’, ‘서귀포 패류화석층’, ‘천지연폭포’, ‘성산일출봉’, ‘만장굴’, ‘한라산’이다. 이후 ‘비양도’, ‘우도’, ‘선흘곶자왈(동백동산)’, ‘교래 삼다수마을’이 추가 되어 13곳이 되었다. ‘수월봉 트레일’은 2012년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되..

길 이야기 2022.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