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길 이야기 65

쫄븐 갑마장길(3)

□ 잣성길을 따라서 잣성은 조선시대 유적으로 제주지역의 목장에 만들어진 10소장의 경계를 표시한 돌담이다. 요즘의 목장에는 철주를 박고 철조망을 3~4겹으로 두른 철책으로 울타리를 두르지만, 그게 여의치 않던 당시에는 주민들을 모아 돌을 쌓게 하여 만든 경계용 돌담이다. 이러한 잣성은 말이 한라산 고지대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상잣성과 해안쪽 인가나 밭으로 나가지 못하게 쌓는 하잣성, 그리고 그 두 잣성 사이를 막아 목장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중잣성으로 구분한다. 쌓을 때는 모은 돌의 크기를 보면서 굽에는 보통 겹담으로 쌓고 그 위로는 큰 돌로 쌓는 것이 보통이다. 안내판에 따르면 이곳 따라비오름과 큰사슴이오름 사이는 중잣성으로 되어 있다. 잣성을 따라 길이 나 있는데, 동쪽에서 서쪽으로 약 2km 구간은..

길 이야기 2022.11.17

쫄븐 갑마장길(2)

□ 따라비 오름에서 ‘따라비’에 오를 때마다 그 이름이 어디서 왔을까 하는 궁금증이 도진다. 하기야 이 세상 만물이 이름을 가질 때 다 고만고만한 사연을 갖고 태어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오름’을 가지고 15년간 강좌를 하고 있는 필자가 그걸 알고 있을 거라고 믿고 자꾸 물어오는 사람들에게 속 시원히 대답을 못해서다. 지금 제주의 오름이 도합 368개라고 한다든지, 오름 이름의 전범(典範)으로 삼을 만한 건 아무래도 1997년 12월 제주특별자치도에서 발간한 ‘제주의 오름’이다. 이 책에는 이 오름 이름이 ‘따라비오름’이 아니라 그냥 ‘따라비’다. 그러면서 뒤에 ‘오름명의 유래, 어학적 해석’이라고 장황하게 주석을 달았다. ① 오름 동쪽에 모지오름이 이웃해 있어 마치 지아비, 지어미가 서로 따르는 모..

길 이야기 2022.11.10

쫄븐 갑마장길(1)

□ 제주 목축문화의 본고장, 가시리 가시리는 표선면 서북부에 위치한 중산간 마을로 오름까지 합쳐 90m~570m의 고도에 위치해 있으면서, 면적은 10㎢로 표선면 전체 면적의 41.4%를 차지할 정도로 넓다. 전통적으로 야초지가 많아 예부터 목축업이 활발하였다. 마을 안내판을 들여다보면, ‘가시리는 중산간 지대이고 분지 형태를 갖추고 있어 조선시대부터 말을 길러냈던 산마장(녹산장)이 설치될 정도로 목축이 큰 비중을 차지했던 곳’이라 했다. ‘갑마장(甲馬場)’은 우수한 말들만을 따로 길러 조정에 진상했던 마장으로 현재 마을 공동목장이 그 터다. 그래서 제주의 목축문화를 한눈에 살필 수 있는 유적들도 남아 있는데, 그 중에는 잣성의 원형이 많이 보존돼 있을 뿐만 아니라 테우리들의 쉼터인 목감막터와 급수통, ..

길 이야기 2022.11.04

추사 유배길 3코스 – 사색의 길(완)

□ 창고천 임관주의 마애명 감산리 마을회관에서 창고천 임관주의 마애명을 찾아간다. 일주도로를 따라 동쪽으로 가다가 창천초등학교 앞 교차로에서 남쪽 냇가로 난 감천로를 따라 들어가면 진입로에 아이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만화로 그린 ‘임관주의 마애명’ 안내판이 서있다. 거기서 냇가로 내려가는 널빤지 계단이 유실되고 하천이 마구 패여 30m 앞이라고는 하나 쉽게 찾을 수 없었다. 한 40년 전쯤에 우연히 보고 수첩에 옮겨 적느라 벌에 쏘이기까지 했는데, 그 후 수차례 하천의 범람으로 주위가 완전히 달라져 한참을 헤맸다. 스스로 글을 새겼는지 아주 얇게 파놓은 마애명이라 돌이끼가 끼어 읽기가 어렵다. 내용을 보니, 귀양에서 풀려난 감회와 주변 풍광을 읊었다. 始出荊門日(시출형문일) 先尋枕下川(선심침하천) 蒼巖三曲..

길 이야기 2022.10.27

추사 유배길 3코스 – 사색의 길(3)

□ 추사와 아호(雅號) ‘추사와 사랑’에서 산방로 126번길을 따라 약 400m쯤 되는 곳에 ‘추사와 아호’ 안내판과 함께 길과 밭 사이 경계 바위에 20개 정도의 아호를 새겼다. 그 사이 더러는 돌이끼에 묻히거나 음각 속의 하얀 페인트가 벗겨진 것도 있다. 안내판에 따르면 ‘추사의 아호는 무려 100여 개나 된다. 그래서 백호당(百號堂)이란 호까지 생겨날 정도였다. (…) 그 가운데 우리에게 가장 낯익은 것은 추사(秋史) 또는 완당(阮堂)이다. 본래 호를 사용하는 이유는 본 이름을 피하는 풍속에 그 근원을 두고 있어 일반 적으로 많아야 서너 개일 뿐이다. 그러나 추사의 경우는 특별한 인연이나 자신의 심경에 따라 다양한 호를 사용하였다. 아마도 수백 개의 다른 호를 사용함으로써 예술가적 면모를 과시하고 ..

길 이야기 2022.10.22

추사 유배길 3코스 – 사색의 길(2)

□ 산방산으로 가는 길 올해는 추사 유배길을 튼 지 만 10년이 되는 해다. 그런데 지금까지 관심을 기울이는 분이 안 계셔서인지, 갈림길에 세운 표지판이 소실된 곳이 있고, 주제를 소개하는 안내판이 빛바랜 곳도 있다. 따라서 길 걷기 전에는 시작점에 있는 안내도를 잘 살피고, 휴대폰으로 찍어 둘 필요가 있다. 그리고 항시 자신이 있는 지점이나 방향, 특히 오름 같은 지형지물을 살피며 걷지 않으면 쉬 길을 잃는다. 산방산이라 하면 보통 산방굴이 있는 남쪽 큰길을 생각하기 쉬운데, 이번 길은 반대편 옛날 농로를 이용해 서쪽으로 들어가 북쪽으로 도는 길이다. 한 때 올레길 10코스 일부 대체 길로 이용한 바 있고, 요즘은 산방산․용머리해안 지질 트레일 일부 구간과도 겹쳐지는데, 이곳을 추사 유배길로 사용하고 ..

길 이야기 2022.10.15

추사 유배길 3코스 – 사색의 길(1)

□ 다시 이어지는 추사길 “하늘이여! 대저 나는 어떤 사람이란 말입니까?”(天乎此何人斯). 3코스 출발점에 세워놓은 안내판에 나오는 표제어이다. 그리고 ‘위리안치(圍籬安置)라고는 하지만 비교적 자유스럽게 유배지 인근을 돌아다니며 풍경을 감상하고, 또한 사람을 그리워하고 건강을 관리하던 추사의 자취를 통해 그의 방황과 사색을 엿볼 수 있는 길이다.’란 해설을 덧붙였다. 필자가 쓰는 ‘길 이야기’는 보다시피 주변 풍광과 그 길에 얽힌 역사나 인물 등을 추적 소개하는 선에서 그치고 있다. 전문성을 갖고 너무 파고들면 분량 때문에 기사로 적합지 않고, 또 사색(思索)은 길 가는 자의 전유물이기에 될 수 있으면 생략하려는 것이다. 3코스는 대정향교에서 출발하여 추사와 전각(篆刻), 추사와 건강, 추사와 사랑, 추..

길 이야기 2022.10.10

서귀포시 서홍동 추억의 숲길(2)

□ 전통적인 자연순환 방식인 ‘통시’ 집터 주변에 ‘통시(뒷간)’라 하여 돌로 쌓은 대여섯 평 정도의 터가 남아 있다. 과거 우리나라는 농업 위주로 생활했기 때문에 사람의 배설물은 한데 모아 썩혀서 거름으로 사용하는 문화가 생겨났다. 그런데 제주도는 비교적 따뜻한 남쪽에 위치해 있어 배설물이 쉽게 변하기 때문에 이를 바로 재활용해서 돼지까지 기르는 방식을 생각해 낸 것이다. 그러고 보면 ‘돗통시’는 돼지우리와 뒷간의 개념을 포함하는 형태다. 서홍동 주민자치위원회에서 세운 안내판에는 ‘통시는 제주만의 독특한 주거문화의 요소 중의 하나인데, 대개 마당에서는 직접 보이지 않도록 전통가옥의 한 쪽 옆을 돌아가 있었다.’면서 ‘변을 보는 곳은 자연에서 두 단에서 세단 정도 높게 두 개의 긴 돌을 놓고, 흙담돌을 ..

길 이야기 2022.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