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세상 353

이런 날은 알프스에 오르자

세상은 넓고 갈 곳도 많다. 작년까지는 맞고 올해는 틀리다. 기를 쓰고 6대륙을 가본다고 작년에 마지막으로 남미를 다녀왔다. 누구는 올해 이렇게 될 줄 어떻게 알았냐며 부러워하지만 진짜로 올해 코로나19로 갇히고 보니 그런 말이 나올 만도 하다. 하지만 보통 사람으로선 세상 좋다는 곳에 다 가볼 수는 없다. 이럴 땐 그림과 상상 만으로라도 즐기자고 TV 여행 프로그램을 즐겨본다. 오늘 같이 덥고 습한 날은 알프스 설산(雪山)만 봐도 살 것 같다. ♧ 알프스로 간다 – 강희정 빨간 통 기차 톱니바퀴기어 기차를 타고 알프스를 오른다 산길을 오르다가 만나는 소 떼들의 목에서 흔드는 소 방울 소리 드넓은 초지위에 부는 바람 초지의 조용함 스위스의 양지바른 언덕에 집 한 채 있어 담장 안에서 키우는 화려한 꽃들이..

아름다운 세상 2020.08.29

김영란 시조 '표절' 외 5편

♧ 표절 한마디로 젊음은 뭐라 할 수 있을까? 단박에, 가을! 대답하는 딸아이 따뜻한 아메리카노와 아이스커피 그 갈등! 춥지도 덥지도 않은 애매한 그 지점 결정 장애 있는 듯 길은 늘 두 갈래 젊음은 선택지 앞에 서 있는 가을이지 ♧ 공항 커피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떠나시라 당일치기 여행이라도 떠나고 싶은 날 무작정 차를 몰아 공항 대합실 찾아간다 설렘이란 가스로 애드벌룬 띄우고 알록달록 뽐내는 공항 패션에 캐리어, 탈출을 꿈꾸며 견뎌온 나날일까 혹, 어디서 날아와 꿈인 듯 사는 걸까 고치를 벗어난 나비 팔랑팔랑 날갯짓 열심히 일해야 할 당신, 돌아오라 돌아오시라 ♧ 멸치의 눈 제발 엄마, 이런 멸치 볶지 쫌 마세요 들던 수저 내리며 밥상머리 등 돌리곤 오늘도 일그러진 얼굴 울먹이는 딸아이 땡그랗게 ..

아름다운 세상 2020.08.27

월간 우리詩 8월호 시와 여름새우란

♧ 소, 그리고 나는 – 박은우 소는 자면서도 결코 머리를 땅에 내려놓지 않는 지존 오랜 사유와 깨달음으로 굳어진 뿔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보는 크고 맑은 눈 하루를 세세하게 되돌아보는 되새김질 고행을 통한 자기 수행의 다짐 같은 코뚜레 그리고 저 힌두교의 어머니 나는 조금만 힘들어도 머리 처박고 드러눕는다 생각은 많지만 깨달음의 관冠이 없다 본질을 굴절시켜버리는 편견의 눈을 가졌다 아집我執에 갇혀 누구의 원망이나 눈물을 보지 못한다 수양을 위한 고행보다는 양지만을 찾아다닌다 그리고 어디에도 기억됨이 없는 유랑자 생각이 환히 보이는 소의 눈처럼 감출 것 하나 없는 양심이 해맑은 나는 어디쯤 있을까 ♧ 옹이 – 백수인 가슴에 사무친 멍울 그 멍울 위에 덧씌운 또 하나의 멍울이다 삶의 고갯마루 오를 때 내..

아름다운 세상 2020.08.17

김혜천 시 '노구' 외 1편

♧ 노구 외 1편 - 김혜천 아름드리 느티나무 가로수 길을 걷는다 저마다 깊숙한 옹이 한두 개씩 품고 있는 나무들 굴곡진 나무들을 안으로 새겨 단단하고 고집 센 무늬를 새겨놓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터널을 달려왔다 시간은 상처와 희열을 포함한 정동精動의 기록 구멍을 들여다본다 들여다본다고 깊은 속내를 가늠이야 하겠는가 거칠수록 속살 보드랍고 결기에 차 가지마다 푸르게 푸르게 그늘을 달아 갓 태어난 어린 숨결 받아내고 행인의 어깨를 다독이고 있다 살아오면서 품은 옹이들이 누군가 디딜 수 있는 언덕이라면 지친 몸 쉬어가는 그늘이라면 그 사유만으로도 마음이 벅차 옹이 박힌 거친 손 내밀 수 있겠다 ♧ 느티나무를 읽다 - 김혜천 뼈대 있는 가문이다 생애의 무드라다 가을 떠난 전등사 마당 뒤틀어진 어깨 갈라지..

아름다운 세상 2020.08.11

배진성 시 '심우도'

♧ 심우도 / 배진성 심우도(尋牛圖) 속으로 걸어간다 나의 흰 소는 보이지 않고 검은 소들이 있다 소들이 소나무 아래 모여 있다 멍에도 꼬뚜레도 없다 숲에서 뜯어먹은 풀을 되새김질 하며 서로의 눈빛을 본다 서로의 등을 핥아주는 소도 있고 꼬리 죽비로 엉덩이를 치는 소도 있다 새로 발견한 풀밭을 알려주는지 귓속말을 속삭이는 소도 있고 조용히 바다를 바라보는 소도 있다 나도 소를 길렀다 나는 늘 길을 들이려고 했다 내가 기르는 소는 코뚜레를 하였고 멍에를 하고 쟁기질을 해야 했다 갱본에서 쉬는 동안에도 말뚝에 박혀 있어야 했다 나의 소는 소나무 그늘에서 쉬어보지 못했다 나는 흰 소를 타고 구멍 없는 피리를 불 생각만 하였다 소와 함께 놀아줄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내가 소를 업어 줄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소..

아름다운 세상 2020.08.01

정호승 시 '바닥에 대하여' 외 3편

♧ 바닥에 대하여 - 정호승 바닥까지 가본 사람들은 말한다 결국 바닥은 보이지 않는다고 바닥은 보이지 않지만 그냥 바닥까지 걸어가는 것이라고 바닥까지 걸어가야만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바닥을 딛고 굳세게 일어선 사람들도 말한다 더 이상 바닥에 발이 닿지 않는다고 발이 닿지 않아도 그냥 바닥을 딛고 일어서는 것이라고 바닥의 바닥까지 갔다가 돌아온 사람들도 말한다 더 이상 바닥은 없다고 바닥은 없기 때문에 있는 것이라고 보이지 않기 때문에 보이는 것이라고 그냥 딛고 일어서는 것이라고 ♧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슬픔 많은 이 세상도 걸어보아라 첫눈 내리는 새벽 눈길 걸을 것이니 지난 가을 낙엽 줍던 소년과 함께 눈길마다 눈사람을 세울 것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걸어보아라 기다려도 기다려도 오지 않던 사람들이 ..

아름다운 세상 2020.07.30

김정서 시인의 시 '저녁해' 외 2편

♧ 저녁해 - 김정서 저 벗은 몸 좀 보아 혼자 빨갛게 달아올랐네 빛 옷 구름에 다 적시어 노을 커튼 치고서 뒤로 살살 숨어 산에 스오옥 빠지네 알몸 품은 산허리 어질어질 보라색 경련 일어 잠시 두리번거리다가 속눈썹 내리깔고 어둠만 내쉬며 돌아앉네 눈 감아 버리네. ♧ 더덕 가는 싹줄에 아래로 매달린 족두리 꽃이었던가! 얼기설기 붙은 잎 섶이라도 여미었나 땅심에 길들여져 다랑논 비늘 같은 돋을새김의 상흔들이 심란하다 고단한 겉살 걷어내니 백삼이라 했던가 하얀 속살에 저며 나는 뽀얀 진액 단내인가 쓴내인가 찐득이는 밤낮을 닦아내며 정수리부터 갈라보니 가슴 아래 길게 박힌 검은색 옹이 아! 너 어미였구나. ♧ 가랑잎 내려놓고 비워간다는 것은 별과 더 가까워지는 것이다 더는 부여잡을 한줄기 앙금이 없어질 때 ..

아름다운 세상 2020.07.28

김연미의 시조 산책

♧ 이중섭, 양하꽃으로 피어난 그 남자 성긴 어깨엔 바람이 늘 머물렀다 섶섬이 보이는 자리 예감된 외로움처럼 밑그림 안개 사이로 문득 솟은 슬픔처럼 감싸 주고 싶었지 초록의 울타리 치고 실선 따라 피어나던 아이들 웃음소리 겹겹이 손을 내밀며 그 여름을 넘다가, 빛이 바래질수록 그리움은 짙어져 더 낮게 엎드리며 빈몸이 된 늦가을 뿌리째 꽃이 되었네 양하꽃이 피었네 ♧ 시 당신이 참 낯설다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별에서 살지 별자리 운세 풀이에도 알 수 없던 너의 등 몇 광년 건너가면 옷자락에 닿을까 휘어진 시공간을 빠져나올 수도 없어 창가의 별빛에 기대 잠이 들곤 했었다. ♧ 잔돌이 되어 반쯤 포기한 이력에 방점 하나를 꿈꾼다 어머니 걱정들이 자잘하게 흩어진 텃밭의 돌들을 모아 탑을 쌓..

아름다운 세상 2020.0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