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아름다운 세상 353

권도중의 '풀꽃 사랑'과 산수국

♧ 풀꽃 사랑 외 6편 바라는 게 있어서 외로움이 있다네 바라는 게 있어서 그리움이 생긴다네 애증은 구름이 되어 소나기로 씻기지 외롭지 않다네 그립지가 않다네 꿈으로 살린 얼굴이 바람 밖에 있다네 기대지 않는 사랑이 자존으로 피는 꽃 ♧ 그 날개 내 사원寺院보다 네 뜰에 목련이 있다 그, 날개 내 살에 있어 퇴화되지 않는다 부름에 말 없는 응답이 가지마다 앉았다 ♧ 애모 가을의 능선이 된 구절초 들국화도 머리칼 휘날린다 되돌릴 수 없는 사랑 기억에 불려 와서는 흔들린다 않는다 인연은 끝없는 날 그립다 하지 말 것 감꽃 소문 떨어지고 감은 달려 익어갔다 구름은 강을 떠났지만 강은 구름을 품었다 ♧ 주산지 생각이 너에게 닿자 슬픔이 시작되었다 걸어 들어간 깊이에 붙들린 사랑도 안개 속 윤곽이 있다 그것이 슬..

아름다운 세상 2020.07.18

'혜향' 2020년 상반기(제14호)의 시

♧ 산사에서 2 - 강상돈 걸어가도 어둠 속, 홰치는 소리 따라가고 초승달도 소원하나 간직하는 시간에 부처는 가부좌한 채 열반경을 외고 있다 그 누가 가슴에다 상처를 놓았는지 번뇌의 아픔들이 봉합되지 못하고 잠 설친 새벽별만이 긴 묵상에 잠긴다 그까짓 아픔쯤은 견디면 되는 거지 백팔 번 절을 하며 번뇌를 내려놓을 때 남국사 풍경소리가 내 마음을 울린다 ♧ 바다풍경 – 김대봉 바다가 경을 치네 아 난바다 풍경이네 山 앞의 절寺도 운다, 노대도 절이란다 山寺에 못다한 공양 바다에나 지들일까 ♧ 바다는 조각 중 – 김성주 바다의 내장을 훔친 갈매기를 본다 새끼들이 있을 바위 그늘을 생각하는 동안 바다는 저의 조각물을 몇 걸음 물러서서 본다 또 다가와서 정으로 쫀다 그때마다 정소리 제 안의 불을 내뿜는 현무암의..

아름다운 세상 2020.07.14

'우리詩' 2020년 7월호의 시와 숲

♧ 인생이란? - 이제우 비 오는 어느 날 선술집 소주잔을 부딪치며 나누는 담론 인생이란? 누구는 연기煙氣라 하고 누구는 연기演技라 하고 또, 누구는 연기緣起라 하네. 누구는 일장춘몽이요 새옹지마라 하고 누구는 고해苦海며, 생로병사라 하고 또 누구는 ‘다만 모를 뿐’이라며 입을 다무는데 장님 코끼리 만지듯 사람마다 각양각색, 천태만상 정녕, 인생은 알 수 없는 수수께끼인가 보다. ♧ 늙은 트럭 - 정유광 경부 고속도로 무심히 지나가는 고물 트럭 엉덩이를 촐싹대며 충혈된 눈 부릅뜨고 후들대는 다리로 삐뚜름히 짐짝 업은 채 엉거주춤 터덜터덜 달팽이처럼 끌면서 점선을 넘나들며 한쪽 눈 깜빡깜빡 살아온 생 덜커덩 신음은 허공 닿고 차가운 도로에서 버둥대는 시간 속 저 멀리 십자가 불빛 서서히 굴절되어 무거운 짐..

아름다운 세상 2020.07.09

월간 '우리詩' 2020년 7월호의 시

♧ 우이천에서․2 - 洪海里 물은 천 개의 칼을 갖고 있다 햇빛에 칼을 갈면, 물의 가슴은, 꽃 같은 너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 꽃잔디 – 이규홍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상을 꽁꽁 묶고 있을 때 꽃밭 가득 번져가는 꽃잔디처럼 마음의 거리 좁히며 삶의 터전 지켜내는 소상공 자영업자들 일용직 근로자들 비정규 노동자들 이 자잘한 꽃들에게도 단비 같은 재난지원금 보너스 근로장려금까지 듬뿍 뿌려주고 싶다 ♧ 거리 두기 – 도경희 새 풀잎 따서 치금을 부는 사월 입술에 노래를 담고 아른아른 손짓하는 복사꽃 한껏 만발해 꿀을 따는 직박구리 필필필 짧은 탄식 내뱉으며 고개를 저승 쪽으로 접는다 신산한 결 겹겹 무늬 진 손이 꽃을 솎는다 금방 피어났다가 흙으로 물로 바람으로 돌아가는 어린 영혼이 있어 수천 겹 눈물이 감..

아름다운 세상 2020.07.06

7월에 핀 산수국을 보며

♧ 7월의 산이 되어 – 박종영 가장 현란하게 색칠한 푸른 7월의 산을 만나기 위해 산수국 향기 가슴에 달고 산을 오른다. 가파른 산등성이 듬성듬성 피어 마음 설레게 하는 솔나리 눈웃음에 마음을 빼앗기고 쪽빛 하늘을 이고 달리는 푸른 동백, 그 울창한 숲에서 짝짓기하는 동박새 분탕한 날갯짓 소리 더운 여름 속 타는 마음을 뒤흔들고 빛바랜 입술은 산도라지 웃음 찍어 곱게 칠하면, 내가 나를 의심하는 세월은 짙푸른 녹색의 그늘에서 환하게 열리는데, 올곧은 길 위에 서서는 이렇게 아름다운 7월의 우주를 누구에게도 빼앗기기 싫어 나 스스로 산이 되어 풋풋한 기운 오래 안을 수 있는지? 늘 그렇게 짙푸른 7월 너에게 묻는다. ♧ 서러운 편지 - (宵火)고은영 나는 가슴이 시키지 않는 일은 하지 않는다 아카시야 향..

아름다운 세상 2020.07.02

백수 정완영 선생의 제주시조

♧ 섬 격정激情 육백 리, 달래도 설레는 섬아 남해 쪽빛 다 마시고 초록도 울먹이는데 제 마음 이기지 못해 나도 너를 찾아 왔네. ♧ 간만干滿의 차 서울에서 바라볼 때는 이 제주가 섬이더니 정작 제주에 서니 서울이 또한 절도絶島로고 생각도 차고 이우는 이 간만干滿의 사이사이. ♧ 유자柚子 세월이 바다에 와서 돛배처럼 떠 있는 섬 그 섬이 바다가 되어 마을들은 또 떠있고 바람 끝 되살아나는 등불만한 유자 하나. ♧ 바람 서귀포 귤 밭에서 술래 잡던 맑은 바람 모슬포 돌아온 길엔 장다리꽃 흩어놓고 님 오실 바다를 향해 시시덕여 갑니다. ♧ 한라산 해발 일천구백 미터, 한라漢拏는 탐라耽羅 제일 경景을 상춘常春을 거역하여 홀로인 채 눈을 쓰고 창파도 눌러 앉았네, 다스리고 앉았네. ♧ 한라의 달 절도엔 어둠도 ..

아름다운 세상 2020.06.27

'산림문학' 2020년 여름호와 함박꽃

♧ 날마다 숲을 보아도 - 김청광 날마다 숲을 보아도 숲의 모습 다 볼 수 없네 뻐꾸기 산비둘기 꿩 울음소리 진종일 숲의 소리를 들어도 들을수록 귀는 멀고 이팝나무 아까시 향기 숲의 냄새 어머니 분 냄새 썩어가면서도 이끼며 버섯이며 벌레를 키우는 길게 누운 나무 등걸 이것이 숲의 품인가 어머니 젖가슴인가 푸른 잎 반짝이는 숲속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으며 침묵으로 몰입하는 나무들 사이사이 바람은 산책하듯 불어와 우듬지 쓰다듬으며 사라지고 날마다 숲에 서 있어도 숲의 마음 다 알 수 없어 해질녘 나만 홀로 다시 숲 언저리 언제쯤 풀잎 같은 진실한 사랑 그대 가슴에 닿아 숲의 한 줌 흙이 되어도 부끄럽지 않을까 ♧ 천태산 은행나무 주장자 아래서 – 김혜천 중심에 심지 하나 꽂고 산다 여겼으나 경계 일어날 때마..

아름다운 세상 2020.06.24

정찬일 시집 '연애의 뒤편'과 산딸나무

어제는 한라산 둘레길인 ‘돌오름길’을 걷고 돌아오는 길에 1100도로 휴게소에 차를 세우고, 제주의 람사르 습지 중 하나인 1100습지 관찰로를 한 바퀴 돌았습니다. 많은 꽃이 사라진 6월말이어서 유독 이 산딸나무 꽃에 눈길이 갔습니다. 멀리서 보면 마치 나비가 나뭇가지 위에 앉아 있는 것 같지만 이 꽃의 꽃잎처럼 보이는 하얀 잎 4장은 꽃받침 역할을 하는 포(苞)입니다. 자세히 보면 진짜 꽃은 가운데 열매 모양의 둥그런 곳에 모아져 아주 작게 꽃을 피웁니다. 나뭇잎이 울창한 계절이어서 멀리서 꽃처럼 보이게 하여 벌나비를 모으고 수분이 끝나면 이처럼 점이 나타나고 서서히 마르면서 떨어집니다. ♧ 큰넓궤 겨울 볕뉘 흐린 물빛 같은 전생(前生)의 사랑 다시 한 번 하기 딱 좋은 날 바람 한 점 잠시 머물지 ..

아름다운 세상 2020.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