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때기 청봉 나는 아직 설악 상상봉에 가 보지 못했네 이 산 밑에 나서 마흔을 넘기고도 한 해에도 수만 명씩 올라가는 그곳을 나는 여태 가보지 못했네 그곳에서는 세상이 훨씬 잘 보인다지만 일생을 걸어도 오르지 못할 산 하나는 있어야겠기에 마음속 깊은 곳에 대청봉 묻어 놓고 나는 날마다 귀때기 청봉쯤만 바라보네 ♧ 미천골 물푸레나무 숲에서 이 작두날처럼 푸른 새벽에 누가 나의 이름을 불렀다 개울물이 밤새 닦아놓은 하늘로 일찍 깬 새들이 어둠을 물고 날아간다 산꼭대기까지 물 길어 올리느라 나무들은 몸이 흠뻑 젖었지만 햇빛은 그 정수리에서 깨어난다 이기고 지는 사람의 일로 이 산 밖에 삼겹살 같은 세상을 두고 미천골 물푸레나무 숲에서 나는 벌레처럼 잠들었던 모양이다 이파리에서 떨어지는 이슬이었을까 또 다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