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애월문학' 2021년 제12호의 시(2)

김창집 2021. 11. 24. 01:09

어머니의 손 강규진

 

내가 어릴 적에는

젊어서 예쁜 어머니

추운 겨울이 되면

시린 내 손을 잡고

추위를 녹여주던 어머니

어머니의 사랑으로

북두칠성을 바라보면서

희망을 노래할 줄 알았다

돌담 옆에 감나무가

지붕보다 더 크는 동안

나도 어른이 되고

어머니는 팔순이 넘으셨다

어머니의 은혜를 잊지 않고 있지만

날이 갈수록 어머니의 손은

꽃잎마냥 시들어 야위어 간다

먼 하늘에 뜬 별은 변함없이

그때처럼 아름답게 빛나는데.

 

낡아가는 사랑 - 김종호

 

배암이 벗어놓은 허물에

겨울 햇살이 눈을 찌를 때

새벽이슬도 차마

마른 잎을 적시진 못했으리

 

함께 창밖을 바라보면서 너와 나

서로 다름도 참 싱그러웠는데

노래하던 새들은 겨울 숲을 떠나고

얼마쯤 사이를 두고 나무들은 서서

지음知音의 기억 속으로 젖어들고 있다

 

고집을 버린 페인트의 순한 눈빛과

벽을 끌어안은 푸름을 버린 담쟁이

세월의 너그러움에 너와 나

끄덕이면서 함께 낡아가는 사랑

난로의 온기에 무심히 손을 펴며

착한 눈빛을 내리고 묵묵히 있다

 

애월에 가면 7 김창화

 

흰머리 지금이나 어렸을 적에도 마을뒷산

고내봉에 오르면

바다를 바라보는 것이 좋았다

 

만년 세월에 애월을 지켜보며 키워온,

수평선 저쪽

청잣빛 얼굴의 큰 관탈과 작은 관탈이

장송들 사이로 오롯하게 다가오면,

 

장송 숲 어딘가에서 다문다문 들려오는

까투리 찾아 부르는 장끼의 짝사랑 노래

 

햇살 환한 숲 나뭇가지에 앉아 쉬는

산새들 노래처럼

쪽빛 바다 해녀들 숨비소리

 

남풍에 흐르는 푸른 하늘 흰 구름 마냥

해변에 부서지는 쪽빛바다의 물너울들.

 

살면서호흡이 가쁘도록 살아가면서

등 너머로 찬바람이 밀어닥칠 때도

애월에 가면

마음속 잃어버린 서정을 찾을 수 있다네.

 

할머니의 황토방 김충림

 

두메산골 옹기종기 초가마을

세 칸 남짓 안팎거리*와 쇠막사리*

밖거리에 있던 할머니의 방은

붉은 진흙을 이겨 바를 황토찜질방

 

겨울이 보이는 늦가을부터

골체* 들고 올레길에 나가

말똥 소똥 주워 말려 추운 날은 ᄀᆞ시락 섞어

굴묵을 지덧지*

 

금이 간 방바닥 사이로

매캐한 연기 모락모락 피어올라

방안 가득 흘러도

방바닥 아랫목은 지질 듯 따스하여

할머니의 언 몸 녹여주었느니

 

벽에는 메주덩어리 주렁주렁

파랗게 물들어 가고

방 한 구석에선 오메기* 술항아리가

구수한 술 향을 풍기며

부글부글 익어가고 있었네

 

칠십여 년이나 지나온 세월 저편

할머니 방은 흙 내음 흐르던

따뜻하고 풍요로움이 가득한

낙원이었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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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팎거리 : 안채와 바깥채

*쇠막사리 : 외양간

*골체 : 삼태기

*ᄀᆞ시락 : 까끄라기

*굴묵을 짓다 : (제주식)온돌을 때다.

*오메기술 : 차좁살로 빚은 술

 

밤비는 오는데 문경훈

 

지난밤 내린 비에 기온은 쌀쌀하고

오래전 다친 상처 다시금 쓰려온다

덧없는 세월은 대나무 피리 되어

추억의 숨소리로 애간장 태우네.

 

단풍이 떨어지면 낙엽이 되는데

내 마음 기댈 곳을 찾고 있노라면

밤비는 그대의 발자국만 적셔주고

밤비는 오는데 추억만 흘러 젖네.

 

김태호

 

따돌림 당한 게 아니다

스스로 떨어져 나왔을 뿐이다

사귀고 싶지 않은 게 아니다

만남의 번뇌를 피하고 싶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니

반갑게 악수를 하고 돌아서는

너와 나의 어깨는

언제나 쓸쓸하지만 우리는

그 모습을 바쁜 걸음 속에 숨기려 한다

 

정겨운 말잔치

웃음의 불꽃놀이

화려한 포옹에

눈과 귀를 빼앗겨

그렇게 한바탕 넋을 잃고 나면

약속이나 한 듯 찾아오는 공허

 

남들은 나를

외톨이라 말하겠지

그러나 나는 스스로 찾아드는,

물감처럼 스며드는

나만의 섬에서 자유로운 새가 된다

 

 

                                       * 애월문학회 간 涯月文學2021 12호에서

                                                    * 사진 : 제주 풍경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