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설대를 나오면서 조설대의 시설물이라든지 내용이 기대했던 것보다 조금 허전한 느낌이 들었는데, 문득 작년 조설대 집의계 12인 경모식 때의 해프닝을 생각하며, 전에 어느 학자가 지적했던 ‘경모비’를 찬찬히 들여다본다. 광무 9년(1905) 3월이라면 을사보호조약(11월)과 경술치욕(1910) 이전인데도 ‘의거문’에 그 단어가 언급된 걸로 보아 ‘신뢰가 안 간다.’는 주장은 일면 일리가 있어 보인다. 또 어떤 분은 문연사와 관련, ‘면암과 이기온의 교류에 대해 근거가 희박한 데도 유명인사에 너무 기대려는 게 아니냐?’라고 평한다. 하지만 당시를 회고해 보면 어떤 입장이었는지 이해는 간다. 이기온은 어렸을 때 전라도 장성으로 건너가 공부했다고 한다. 그러나 돌아온 후에는 주변에 크게 배울 만한 스승이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