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길 이야기 65

오라동 '면암 유배길'(2)

# 조설대를 나오면서 조설대의 시설물이라든지 내용이 기대했던 것보다 조금 허전한 느낌이 들었는데, 문득 작년 조설대 집의계 12인 경모식 때의 해프닝을 생각하며, 전에 어느 학자가 지적했던 ‘경모비’를 찬찬히 들여다본다. 광무 9년(1905) 3월이라면 을사보호조약(11월)과 경술치욕(1910) 이전인데도 ‘의거문’에 그 단어가 언급된 걸로 보아 ‘신뢰가 안 간다.’는 주장은 일면 일리가 있어 보인다. 또 어떤 분은 문연사와 관련, ‘면암과 이기온의 교류에 대해 근거가 희박한 데도 유명인사에 너무 기대려는 게 아니냐?’라고 평한다. 하지만 당시를 회고해 보면 어떤 입장이었는지 이해는 간다. 이기온은 어렸을 때 전라도 장성으로 건너가 공부했다고 한다. 그러나 돌아온 후에는 주변에 크게 배울 만한 스승이 없..

길 이야기 2023.03.13

오라동 '면암유배길' (1)

# 오라동 일대에 개설된 면암유배길 면암 최익현이 제주에 유배 와서 머물렀던 곳은 제주시 일도1동 당시 윤규환(尹奎煥) 댁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오라동 일대를 그의 유배길로 만든 데에는 아무래도 그와 연관되었다는 문연사(文淵社)와 그가 한라산에 가면서 거쳤을 것으로 예상되는 방선문(訪仙門)까지의 길을 연결하기 위함일 것이다. ‘제주유배길’은 2010년 지식경제부가 지원하는 광역경제권 연계․협력 사업에 제주대학교 양진건 교수팀이 제안한 ‘제주 유배문화 스토리텔링 콘텐츠 개발사업단’에서 내놓은 사업이 그 대상에 선정돼 열어놓은 길이다. 내용은 ‘제주유배길에서 나를 찾다’라는 주제로 옛 제주성을 중심으로 , 오라동의 , 그리고 대정읍의 이다. 면암유배길은 2012년 5월 12일 제주관광공사 제주웰컴센터에서..

길 이야기 2023.03.08

제주 오라동 4․3길 '해산이동네 가는 길'

□ 오라 4․3성을 지나며 4․3길 센터 옆 연미마을회관 앞에서 해산이동네 가는 길은 시작된다. 거기서 조금 동쪽으로 걷다 오른쪽 연사7길로 들어가는 4․3길 입구엔 ‘조설대 300m’ 표지판이 크게 세워져 있고, 그 뒤에 짧게 복원한 ‘연미마을 4․3성’과 해설 안내판이 보인다. ‘이곳은 1949년 봄 토벌대의 진압 과정에서 폐허가 된 오라리를 재건할 당시 주민들과 무장대 간의 연계를 차단하고, 주민들을 효율적으로 감시 통제하기 위한 전략촌을 조성하여 쌓은 4․3성이다. 축성작업은 연미마을 주민들을 동원하여 1개월에 걸쳐 이루어졌다. 이미 많은 젊은이들이 희생되었기 때문에 밤낮없이 보초를 서는데 16세 이상의 여성과 노약자도 동원되었다.’ 하긴 당시 어느 마을이던 비슷한 상황이 펼쳐졌었다. □ 오라리 ..

길 이야기 2023.03.05

제주 오라동 4․3길 – '선달벵디 가는 길'

□ 희망 가득한 봄길 올 4월은 실로 오랜만에 ‘잔인한 달’을 피해 간 느낌이다. 아니 희망 가득한 봄길이 열렸다고나 할까. 그 동안 완전한 4․3해결에 부정적 영향을 끼쳐왔던 보수진영의 대통령 당선인이 추모행사에 참석해 ‘4․3의 아픔을 치유하고 상흔을 돌보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며 화해와 상생,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대한민국의 몫’이라 전제하고, ‘희생자들의 온전한 명예 회복만이 아니라 유가족들의 삶과 아픔도 국가가 책임 있게 어루만질 것’이라 했기에. 취재 가려고 들른 버스 정류소 알림판에도 ‘제주4․3사건 희생자 가족관계 등록부 작성 및 실종신고 청구신청은 도 4․3지원과나 행정시 자치행정과, 읍면동 주민센터에 문의’하라는 내용이 전화번호와 함께 나오고 있었다. 불과 30여 년 전만 해도 관에서 언..

길 이야기 2023.03.01

하도리 '숨비소리길'(3)

□ 비온 날 갠 날 없이 모진다리불턱에서 비를 만났다.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가 엄청난데 급히 비를 피할 곳조차 없다. 급하게 배낭에서 비상용 우산을 꺼내 펴고, 급한 대로 사진을 찍는다. 사진에 사선으로 빗줄기가 나올 정도다. 그렇지 않았으면 그 아래 할망바당 같이 얕은 곳에서 물질을 하는 분들에게 다가가서, 무엇을 잡고 있는지 물어보려 했는데…. ‘물로나 벵벵 돌아진 섬에/ 삼시 굶엉 물질허영// 한 푼 돈도 돈일라랜/ 두푼 돈도 돈일라랜/ 한 푼 두 푼 모아논 돈은/ 서방님 술값에 다 들어간다.// 어여도 사나 어여도 사나’ 사실 비가 온다고 해도 물속에선 크게 상관없다. 먹구름으로 날이 컴컴해지든지 흙탕물이 들어오기 전에는…. 요즘 고무제품 해녀복이 좋아져 웬만한 날씨에는 추위에 상관없이 물질하는 ..

길 이야기 2023.02.25

하도리 '숨비소리길'(2)

□ 돌담길을 걸으며 올레길 21코스와 잠시 떨어져 북쪽으로 걸어가면 ‘밭담’이란 안내판과 함께 시멘트 포장길로 방향이 바뀐다. 안내판에 나온 사진은 일련의 마을 아낙네들이 돌담 사잇길을 걸어 물질 가고 있는 모습이다. 아홉 사람 중 한 사람만 테왁을 졌고, 나머지는 탈의장에 걸어둔 걸로 생각된다. 설명문에 따르면, ‘화산활동으로 인해 돌이 많은 제주에서는 돌을 쌓아 밭 경계를 하였는데, 이를 밭담이라고 한다. 밭담을 쌓은 후부터 토지 분쟁이 없어지고 가축에 의한 농작물 피해가 줄었으며, 경지 면적이 넓어져 제주농업 경제에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비단 오늘 돌아볼 하도리만이 아니라 구좌읍에는 밭담이 비교적 많이 남아 있다. 고 김종철 선생은 역저 ‘오름 나그네’(1995)에서 구좌읍을 ‘오름의 왕국’이..

길 이야기 2023.02.14

하도리 '숨비소리길'(1)

숨비소리길은 2016년 11월 30일, 제주해녀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후, 해녀문화를 알리기 위하여 2년 동안 준비과정을 거친 끝에 2018년 12월 1일에 개장했다. 해녀박물관을 시발점으로 하도리 지역에 분포한 해녀문화 거점을 한 바퀴 돌아오는 4.4km 구간인데, 걸어서 2시간 정도 걸린다. 그런데 출발점부터 별방진성까지는 올레 21코스와 대부분 겹친다. □ 제주해녀 항일운동 기념탑 올레 21코스를 취재하기 위해 다녀갔던 해녀박물관을 다시 찾았다. 버스에서 내려 바로 옆 항일운동 기념탑으로 갔는데, 오른쪽에 전에 없던 하도리 출신 세 분의 해녀(김옥련·부춘화·부덕량) 애국지사의 흉상이 나란히 모셔져 있다. 이분들은 1932년 1월 구좌면에서 제주도 해녀어업조합의 부당한 침탈 행위를 ..

길 이야기 2023.02.09

외도동 탐방로 ‘외도물길 20리’(3)

□ 화려했던 절 수정사 고려 말에서 조선 중기에 이르기까지 제주 3대 사찰의 하나로 불릴 만큼 화려했다는 수정사(水精寺)는 해체되고 멸실되어 오늘날은 그 자취조차 더듬기 힘들다. 그러나 ‘태종실록’ 8년(1408) 2월 정미(28일) 기사 내용을 보면, ‘의정부에서 제주의 법화사와 수정사 두 절에 있는 노비수를 정하도록 아뢰었다. “제주목사의 정문(呈文)에 따르면, 주경에 비보사찰(裨補寺刹)이 두 곳에 있는데, 수정사에는 현재 노비가 130인이 있고, 법화사에는 280인이 있다고 합니다. 바라건대 두 절의 노비를 다른 사찰의 예에 의하여 각각 30인만 주고, 그 나머지 382인은 전농(典農)에 부치십시오.” 하니, 그대로 따랐다.’고 나온다. 거기다 충암 김정(金淨)의 ‘제주풍토록’(濟州風土錄, 1520..

길 이야기 2023.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