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디카 일기 2714

튤립마저 외면한 코로나19

바야흐로 꽃들의 수난시대다. 화훼시장으로 유명한 네덜란드에서 꽃의 여왕이랄 수 있는 튤립이 코로나 여파로 시세 0원을 기록하자 내년을 위해서 꽃 4억 송이를 따서 폐기처분 한다는 소식이다. 예년에는 3월부터 5월까지 여성의 날, 부활절, 어머니날이 끼어 있어 1일 평균 3000만달러(약 366억원), 총 76억 달러의 꽃이 이 시기에 팔렸었다고 한다. 그리고 여러 곳에서 열리는 꽃 축제들 특히 쿠켄호프 꽃 축제 주최 측은 정부 지침에 따라, 개장 예정일이었던 지난달 21일부터 5월 10일까지 축제를 취소하고 공원을 폐쇄했다는 소식이다. 필자는 평생 소원이던 튤립 축제를 2017년 4월 21일 수요일에 이번에 행사가 취소된 곳인 쿠켄호프 꽃 공원에서 즐겼던 기억이 있다. 몇 가지 색과 왕관 모양의 꽃만 머..

디카 일기 2020.04.28

김수열의 '물에서 온 편지'

♧ 물에서 온 편지 - 김수열 죽어서 내가 사는 여긴 번지가 없고 살아서 네가 있는 거긴 지번을 몰라 물결 따라 바람결 따라 몇 자 적어 보낸다 아들아, 올레 밖 삼도전거리 아름드리 폭낭은 잘 있느냐 통시 옆 먹구슬은 지금도 토실토실 잘 여무느냐 눈물보다 콧물이 많은 말잿놈은 아직도 연날리기에 날 가는 줄 모르느냐 조반상 받아 몇 술 뜨다 말고 그놈들 손에 질질 끌려 잠깐 갔다 온다는 게 아, 이 세월이구나 산도 강도 여섯 구비 훌쩍 넘어섰구나 그러나 아들아 나보다 훨씬 굽어버린 내 아들아 젊은 아비 그리는 눈물일랑 이제 그만 접어라 네 가슴 억누르는 천만근 돌덩이 이제 그만 내려놓아라 육신의 칠 할이 물이라 하지 않더냐 나머지 삼 할은 땀이며 눈물이라 여기거라 나 혼자도 아닌데 너무 염려 말거라 네가 ..

디카 일기 2020.04.16

이종형의 4.3시 '통점' 외

♧ 통점 햇살이 쟁쟁한 팔월 한낮 조천읍 선흘리 산 26번지 목시물굴에 들었다가 한 사나흘 족히 앓았습니다 들짐승조차 제 몸을 뒤집어야 할 만큼 좁디좁은 입구 키를 낮추고 몸을 비틀며 낮은 포복으로 엉금엉금 기어간 탓에 생긴 통점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그해 겨울 좁은 굴속의 한기寒氣보다 더 차가운 공포에 시퍼렇게 질리다 끝내 윤기 잃고 시들어 간 이 빠진 사기그릇 몇 점 녹슨 솥뚜껑과 시절 모르는 아이의 발에서 벗겨진 하얀 고무신 그 앞에서라면 당신도 아마 오랫동안 숨이 막혔을 것입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나처럼 사나흘 족히 앓아누웠을 것입니다 ♧ 山田 가는 길 아래턱이 떨어져 나간 노루의 두개골을 주웠다 살도 뼈도 다 녹아 사라지고 두 갈래 뿔만 남은 얼굴이다 젊은 목숨이었을 게다 잘생긴 ..

디카 일기 2020.04.05

김영란의 '4 ․ 3 '에 관한 시들

♧ 꽃 피지 않는 봄 애비 있는 산으로 뛰어라 그러면 살려 주마 죽어라 달렸어요 나도 이제 다섯 살인 걸 서천꽃밭 흐드러진 환생의 꽃무더기 열린 동공 안으로 와락 안기고 날개가 돋으려나 겨드랑이가 간지러워요 둥실 떠오르는 몸 아, 날개 생겼나 봐 코끝에 확 스치는 풀냄새 아버지 냄새 아버지, 보고 싶은 아버지 탕, 탕 타타탕!…… 아버지 등에서 흙냄새가 나네요 언제나 잉크냄새 났던 아버지 고개 들어 하는 한 번 봤어요 잉크빛 하늘이 주르륵 쏟아질 것 같아요 나, 잘 뛰었나요? 이제 아버지 만났나요? 졸려요, 아버지 얼굴이 안보여요 등 돌려 나를 봐요 아, 졸려…… 철모른 숟가락 하나 떨어뜨린 어느 봄 ♧ 벚꽃이 피면 이른 봄 쇠창살로 햇살이 숨어든다 어느 날 빨갱이 기집이라고 느닷없이 잡혀갔을 때 내 등..

디카 일기 2020.04.03

오영호 시조 '연동리 사설'

♧ 연동리* 사설 - 오영호 1945년 지축을 흔드는 해방의 만세 소리 36년 멍들대로 멍든 상처뿐인 한반도를 미·소가 꽉 틀어잡고 줄다리기하는 사이 1946년 달려온 우파와 좌파 전선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현실 앞에 5천석 추곡수집 결정 터져버린 성난 도민 1947년 제주북교 3.1절 기념대회 ‘3.1 정신으로 통일 독립 쟁취’ ‘미·소는 간섭을 말라’ 외치는 3만의 군중 엇싸, 엇싸 관덕정을 행해 갈 때 날아온 총탄에 6명이 희생되자 분노는 하늘을 찔러 4·3의 불 지필 줄이야 1948년 숲이 떨고 바다도 우는 소릴 위정자는 귀가 멀어 듣지를 못했었지 이념의 잣대를 세운 먹장구름 뜬 하늘 광풍이 몰아치자 한 치 앞도 볼 수 없어 마을을 지키던 팽나무 가지 뚝뚝 부러져 뒹구는 골목길 사이로 이웃들은 ..

디카 일기 2020.04.01

송구영신(送舊迎新)

♧ 섣달그믐 - 장진숙 날 저문 귀향길엔 폐가를 뒤지다 온 찬바람 홀로 울며 내닫고 알곡의 싸락별들 누가 죄다 실어냈는지 샛별 하나 뜨지 않았다 가는 해 걸직이 엮어 복조리에 너스레 담아 돌리던 총각 깜부기로 타서 떠났다 하고 들몰댁 사십 년 정한수 사발 귀밑머리 허옇게 얼어 고샅을 지키는데 너덜겅 푸서리 누가 갈아엎느냐고 오는 해 싱싱한 꿈 누가 건지느냐고 어머니 한숨엔 숭숭 바람이 들어 생솔 매운 연기에 짓무른 눈 연신 벌게지는데 좀처럼 시루떡은 익지 않았다 ♧ 송구영신 - 靑山 손병흥 늘 바쁘게만 달려 나왔던 한해의 끝자락 묵은해를 떠나보내고 새해 맞이하는 시기 신년의 운수대통 기원해보는 음력 섣달그믐밤 옛것을 물린 채 새로운 것을 받는다는 새해맞이 어려운 일들로 점철된 서민들의 주름살 펴고서 다시..

디카 일기 2020.0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