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1625

월간 '우리詩' 7월호의 시(2)

♧ 마법이 풀리는가 – 도경희 이슬처럼 청초한 아라크네가 칠 짙은 물레를 돌린다 실 한 가닥 한 가닥 몸에서 뽑은 씨줄에 달빛 날줄 엮어 금박 물린 구름 꽃 하늘에 눈부시게 얹혔다 사락사락 두메산골 긴긴 밤을 짜는 직녀의 아미는 얼마나 고운가 크고 작은 별이 눈을 깜박이며 견디고 살아낸 이방인을 신기한 듯 바라본다 은하수가 흐르고 유성이 멀리 날아간다 ♧ 설악 해변에서 – 방순미 한낮 수평선 끝 시선 던져 놓고 멸치 떼 은비늘 튀듯 잔물결 눈부시다 오래 바라보니 파도 소리 사라지고 고요만 남아 밀려가며 밀려오다 섰다 지는 물 그림 말끄러미 바라보면 모래톱처럼 남은 상흔마저 지워져 흔적 없다 ♧ 백석천 – 오명헌 에미 청둥오리가 갓 부화한 그의 가솔 열두 마리를 데리고 학익진 대형으로 백석천을 유영해 가네..

문학의 향기 2023.07.12

'혜향문학' 2023년 상반기호의 시(4)

♧ 사월 다랑쉬굴 – 김정희 -다랑쉬굴 시혼제에서 일어서서 간다 긴 시간 속으로 동굴 속처럼 깊은 첼로 소리 검정 고무신 등에 올려놓고 걸어라 뛰어라 온몸으로 말을 걸어도 지긋한 미소 지난 일인걸 가랑비에 보슬보슬 젖은 풀밭 흙이 몸이 되고 몸으로 기어 나와 살아 구음으로 건네는 말 들어보면 눈물이 비가 되어 내린다 어둠에 누워 한 바퀴 돌아 나온 다랑쉬 굴 안으로 안으로 이름을 불러내어 검정고무신 가지런히 놓고 온몸으로 걸어 나와 몸으로 드네 비가 되어 흐르는 음악 소리 무겁게 젖는다 ♧ 사람이 없습니다․1 – 윤봉택 사람이 없습니다 국제선에는 사람이 바글거리는데 마당에 널어놓은 날레* 당그네질 하여 줄 개촐* 막뎅이 ᄒᆞ나 없습니다 시방, 강남땅에는 미어 밟히는 게 사름 닮은 거라는데 내 눈에만 콩깍..

문학의 향기 2023.07.11

'산림문학' 여름호의 시(4)

♧ 장항선 – 김황지 역사 밖 의자에 햇살이 졸고 있다 상 하행선 시간표도 침목 위 철로도 기다림에 늘어지고 가까스로 웅천역에 멈춘 열차 무창포에서 잡은 해산물과 속 찬 가을 텃밭 한 평 떼어 싣고 서울로 향한다 내 젊은 날을 운반하던 장항선 지금은 어느 청춘을 북적거리는 서울역에 부려놓는가 급행도 완행도 종점은 한 곳인데 혼자 남아 눈시울 붉히는 먼 산 장항선 천천히 웅천역을 떠난다 ♧ 무명용사 유월이 오면 전설을 노래한다 총성과 포성 사선死線을 넘나들던 용사들 서서히 잊혀져 간다 흙에서 자라 흙으로 돌아간 이들의 선혈 산하는 붉고 뜨거운데 승리는 희생으로 피는 꽃 불후의 서사가 되고 유성처럼 스러져 잠든 영혼 하늘에 올라 별이 되어라! ♧ 보랏빛 생 – 엄선미 아침 햇살에 나팔꽃 웃음이 쏟아진다 바지..

문학의 향기 2023.07.09

남대희 시집 '어느 날 찾아온 풍경들의 기억'(4)

♧ 풍경 능수버들 사이 물안개 자욱한데 새벽마다 머리 내밀고 창공을 유영하는 꿈을 꾸었던 시절이었다 끝내 중력을 이기지 못해 물 위에 파문만 내던 시절이었다 꿈은 마른하늘에서도 지느러미를 세우고 그림 같은 풍경을 그려낸다 창공에 풍경을 만들고 스스로 갇힌 허공에 바람을 끌어와 소리로 파문을 내는 붕어 한 마리 ♧ 비 오는 날 숲속 초목들 운다 개복숭아 나무가 망개 넝쿨이 산수국 돌배나무 온몸 눈물범벅 되어 운다 체면 가식 다 버리고 한 번쯤 울어보라고 천둥처럼 통곡해 보라고 회초리 자국 어루만지며 눈물 떨구시던 엄니 그리워서 숨어 우는 청개구리 곁에 서서 그렇게 울고 싶다 ♧ 화석과 바람 숨을 멈춘 지 몇 년 그것은 역사 이전의 사건 명치끝 잔뜩 힘주고 어금니 곽 깨물고 참았다가 확 뱉어낼 때 큰 짐승은..

문학의 향기 2023.07.08

월간 '우리詩' 7월호의 시(1)

♧ 골치 – 김석규 처리된 방사능 오염수가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굳이 바다에다 쏟아버릴 이유가 무엇인가 저수지를 만들어 가두어두었다가 혹심한 가뭄에는 농업용수로 쓰거나 하늘을 찌르는 생산시설의 공업용수로 쓰거나 도시의 하수관로와 연결해 처리하면 될 것을 왜 이웃나라 사람들의 머릿속을 끓게 하는지 ♧ 열대야 – 홍해리 벽에 걸려 있는 시래기처럼 실외기室外機가 뜨겁게 울고 있는, 골목마다 널브러진 쓰레기같이 사내들이 헉헉대고 있는, 한여름 밤에 나는 이 불은 이불을 걷어차고 열 대야의 찬물로도 꺼지지 않는 화염지옥 내 다리 나의 다리 겹치는 것도 열나는 밤, 열대야! ♧ 연필을 들면 – 김영호 연필을 들면 문이 열리네 문이 열리면 영혼이 숲 속 새들의 결혼식에 초대를 받네 연필을 들면 문이 열리네 문이 열리..

문학의 향기 2023.07.07

'혜향문학' 2023년 상반기호의 시와 능소화

♧ 어머니 회상 – 오기환 밤 이슥한 섣달 추위 아들에게 등불 들리고 맑은 물 흐르는 곳 별빛에 치성드린다 하늘땅 신령님들께 수도 없이 빌어댄다. 촛불이 펄럭이고 어둠의 무서움도 당신의 지극정성 한 곳에 꽂아둔 듯 어머니 바램의 소지 기원들이 타오른다. ♧ 손님별 - 우아지 사람이 온다는 건 설레는 일입니다 기대를 등에 업고 마중하는 앳된 먹밤 이 아침 은수저를 닦는 마음도 윤이 나고 간밤을 적시던 비 풀잎마다 끼운 반지 오늘을 기다렸어 양초에 불을 켜고 새하얀 순도 100% 식탁보를 꺼냅니다 오븐을 예열하는 창 너머 어스름 녘 열과 성을 듬뿍 넣어 저녁을 익힙니다 가슴에 꽃이 피도록 새 밥 지어 올립니다 ♧ 놀멍놀멍 봅서* - 이석래 먼 바당 내려다본다 온몸으로 꿈을 꾼다 은물결 출렁이듯 보송보송 솜털..

문학의 향기 2023.07.06

정드리문학 제11집 '박수기정 관점'의 시(1)

[오승철 시인 추모 특집 – 주요 수상작] ♧ 오키나와의 화살표 오키나와 바다엔 아리랑이 부서진다 칠십여 년 잠 못 든 반도 그 건너 그 섬에는 조선의 학도병들과 떼창하는 후지키 쇼겐* 마지막 격전의 땅, 가을 끝물 쑥부쟁이 “풀을 먹든 흙 파먹든 살아서 돌아가라” 그때 그 전우애마저 다 묻힌 마부니언덕 그러나 못다 묻힌 아리랑은 남아서 굽이굽이 끌려온 길, 갈 길 또한 아리랑 길 잠 깨면 그 길 모를까 그려놓은 화살표 어느 과녁으로 날아가는 중일까 나를 뺏긴 반도라도, 동강난 반도라도 물 건너 조국의 산하, 그 품에 꽂히고 싶다 ---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군 소대장으로 참전했으며, 조선학도병 740인의 위령탑 건립과 유골 봉환사업에 일생을 바쳤다. 수상작. ♧ ᄆᆞᆷ국 그래, 언제쯤에 내려놓을 거냐고..

문학의 향기 2023.07.05

'산림문학' 2023년 여름호의 시들(3)

*울진산불지역에 새 생명을 심다 -시의 나무를 심은 문인들 편 ♧ 모두 봄이 되었다 – 김재준 풀 가지 하나 입에 물지 못해 죽은 새와 숟가락 빨다 잠든 아이들 사막이 삶이 된 불모지에 나무 심다 먼저 간 이들은 초록별이 되었다 그 별들이 사는 하늘에서 지저귀며 노래하는 새와 아이들 괜스레 눈가에 얼룩이 진다 하늘을 나는 새여 무덤 없던 아이와 그리고 초록을 심은 이들이여 풀때기 하나 없던 산하에 나무가 자라 푸른 생명이 되었구나 숲의 신령이 내려 모두 봄이 되었다. ♧ 가시 벗은 음나무를 심고 – 장재관 화마가 할퀸 자리를 고이 다듬어라 천적을 방어하던 가시갑옷 과감히 내려놓았으니 이제 옥토로 가꾸어라 오늘은 하늘이 보살피는 은혜로운 날 가뭄으로 타들던 이 강토 적시는 악비가 흠뻑 내리는구나 우리도 한..

문학의 향기 2023.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