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1625

배진성 시집 '서천꽃밭 달문 moon'의 시(4)

♧ 헛묘 1 정방폭포로 간다 정방폭포 앞바다로 간다 태평양으로 간다 혹시, 아는 사람이 뼈 한 조각이라도 가져왔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다시 고향으로 간다 동광리로 간다 무등이왓으로 간다 삼밭구석으로 간다 혹시, 살 한 점이라도 붙어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또 다시 낭떠러지 위로 간다 절벽의 바위를 뒤진다 폭포 아래 바위를 뒤지고 물속을 뒤지고 바다 속을 뒤지고 바다 속 물고기들을 뒤지고 물고기 뱃속을 뒤진다 혹시, 숨결 하나라도 만날 수 있을까 싶어서 허공 속을 뒤진다 더 높은 하늘을 뒤진다 구름 속을 뒤진다 빗방울 속을 뒤진다 뒤지다 눈이 멀어버린 사람들이 지상을 떠난 뒤에도, 집 앞으로 몰려든다 죽어서도 몸을 찾지 못한 영혼들이 작은 단서라도 얻어 들어려고 찾아든다 이렇게 찾아와 밤새 이야기하는 영혼들을..

문학의 향기 2023.08.31

양동림 시집 '여시아문'의 시(4)

♧ 귀곡사 1 귀신이 곡할 노릇 집이 넷이나 있는데 곡사면 살아 있다 했는데 하필 집 지은 곳이 막다른 곳이라 죽음을 맞는 귀곡사 2 살아있는 줄 알았다 동굴에 숨어서 숨쉴 활로도 있고 당장 누가 공격해오지도 않을 줄 알았다 가만히 있으면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간간이 총소리 들리고 연기가 피어올라도 토벌대가 찾기 힘든 험한 곳 그들도 들어가면 죽을 수 있는 곳 아무 일 없는 줄 잊혀졌었지 대국이 끝나고 하나 둘 주검들을 찾아낼 때 통곡 소리만 들렸다 아직 살아 있는 듯한 유골이 세상에 드러날 때 굴속에서 생을 마감했을 아픔이 온 다랑쉬를 울렸다 ♧ 먹여치기 살 수 없음을 알지만 진주 남강 푸른 물에 적장을 껴안고 주저 없이 뛰어든 논개처럼 내가 죽어도 이 나라가 살 수 있다면 폭탄을 부여잡고 적진에 뛰..

문학의 향기 2023.08.30

정드리문학 제11집 '박수기정 관점'(8)

♧ 저녁노을 - 고해자 때로는 저녁노을 경쾌한 저 붓놀림 예술적 감성마저 가감없이 표출한다 제트기 새하얀 연기 직선으로 앉은 터 어떠한 의식 중인 순간 속 찰나처럼 하얀 줄 가로 구름 주홍빛 연출 무대 긴 한 획 한 획씩마다 오롯한 저 집중력 저들도 가감 없이 올곧은 터치 즐겨 사람도 자연계와 맞장뜨면 안 될 처지 갑자기 숙연해지는 이심전심 화들짝 ♧ 형제섬 – 윤행순 모슬포 찾아오면 몸쓸 내가 보인다 들물날물 거센 날도 서로가 부둥켜안고 어머니 안 계신 바다 지켜내는 저 섬들 ♧ 친정의 별 - 양시연 내 어깨 반쯤 적시고 돌아서는 봄비처럼 춘분 언저리쯤 별 하나를 놓쳤네 서귀포 올레길에서 별 하나를 놓쳤네 한때는 이팔청춘 수평선도 떠돌았다 테왁도 울릉도도 함께 도는 육지 물질 그렇게 여름 한철을 물숨 ..

문학의 향기 2023.08.29

월간 '우리詩' 8월호의 시와 제주상사화(5)

♧ 꽃병 - 이강산 꽃에 사무쳐 꽃 품고 사는 봄처럼 내 몸의 골짜기마다 꽃이다 골짜기가 깊어 꽃도 나도 빠져나가지 못하는 4월은 꽃병처럼 붉다 봄 신호등에 걸린 낡은 자동차의 앙가슴에 진달래 두어 가지 꽂혀 있다 저 여인도 꽃에 사무쳐 꽃 품고 가는 것이라면 십중팔구 나처럼 꽃병 든 거다 ♧ 밀물과 썰물 – 백수인 밀물 나무 한 짐 가득 지고 쿵쾅거리며 산비탈을 뛰어내려오는 일꾼들의 기세다 뒷마당에 무거운 짐 다 부려 놓고 막걸리 한 잔 나누는 호흡이다 먼 바다에서 건져온 미역, 다시마, 파래, 톳, 청각들을 모래밭에 잔뜩 내려놓고 판소리 한 대목 가다듬는 추임새다 이제 비로소 밀물은 스스로 썰물이 된다 썰물 모든 욕망 다 버리고 돌아서는 순례자의 뒷모습이다 텅 빈 등허리에 햇빛 쏟아진다 꽃상여 메고 ..

문학의 향기 2023.08.28

'서귀포문학' 2023호의 시(2)

♧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 - 강영은 당신은 나를 건너고 나는 당신을 건너니 우리는 한 불빛에 닿는다 눈발 날리는 저녁과 검은 강물처럼 젖은 이마에 닿는 일 떠나가는 물결 속으로 여러 번 다녀온다는 말이어서 발자국만 흩어진 나루터처럼 나는 도무지 새벽이 멀기만 하다 당신의 표정이 흰색뿐이라면 슬픔의 감정이 단아해질까 비목어처럼 당신은 저쪽을 바라본다 저쪽이 환하다 결계가 없으니 흰 여백이다 어둠을 사랑한 적 없건만 강둑에 앉아 울고 있는 내가 낯설어질 때 오래된 묵향에서 풀려나온 듯 강물이 붉은 아가미를 열고 울컥, 물비린내를 쏟아낸다 미늘 하나로 당신은 내 속을 흐르고 나는 당신 속을 흐른다 ♧ 추억의 솔렌자라Solenzara – 강중훈 어젯밤 산책길엔 가마우지 한 마리를 만났네 녀석은 바닷가 바위 끝에 ..

문학의 향기 2023.08.27

김병택 시집 '서투른 곡예사'(6)에서

♧ 극장 객석에 홀로 남아 바람 세게 부는 어느 가을날 극장 객석에 홀로 남아 배우들의 목소리가 부딪치던 무대를 천천히 바라본다 아직 남아 있는 배경 그림의 길게 웃자란 대나무 숲에선 맑은 웃음소리가 흘러나오지만 정작 극장에 홀로 남은 이유를 자연스레 깨닫게 하는 기호는 어딘가에 숨어 보이지 않는다 한 배우가 분장 그대로인 얼굴로 객석 통로를 천천히 지나간다 옛 그리스의 유려한 그릇처럼 정교하게 잘 짜인 작품에 힘입어 인물의 삶을 연기하는 배우라면 극장의 정해 놓은 기간 동안에는 배우의 위치를 잘 지킬 수 있으리라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배우의 연기와 배우의 삶은 다르다 배우의 삶에도, 우리의 삶에도 앞을 가리는 막幕은 아예 없다 돌이킬 수 없는 결말이 있을 뿐 그것은 누구의 삶에도 적용된다 바늘..

문학의 향기 2023.08.26

양동림 시집 '여시아문'의 시(3)

♧ 여시아문如是我聞 1. 나는 이렇게 들었노라 바둑을 두며 친구를 얻고 평화를 얻고 교훈을 얻고 심오한 뜻을 깨우치고 결국에 첨수를 누리리라 나는 이렇게 들었다 2 승부의 세계에 친구가 어디 있느냐 하겠지만 친구이기에 승부를 겨룰 수 있다 술수와 간계가 아닌 승부를 걸 수 있는 친구가 앞에 있다 응원해주는 사람보다 승부의 세계로 같이 걸어주는 사람이 진정 친구라고 나는 들었다 3 한 수 한 수 내가 말을 하고 친구가 말을 듣고 화답을 하고 산사에서 스님이 목탁 치는 소리마냥 딱딱 딱딱 이기고 지는 가운데 교훈을 얻고 서로를 인정할 때 평화를 얻는다고 나는 들었다 4 혼자 가는 길은 편견이 생기리니 여럿이 같이 가다 보면 더 좋은 길 진정 옳은 길을 갈 수 있으니 대국을 하는 것은 심오한 깨달음을 얻을 수..

문학의 향기 2023.08.25

월간 '우리詩' 8월호의 시(4)

♧ 물의 변증법 – 나병춘 보이는 물방울, 얼음은 물이 아니다 숲속에 가서 헌걸찬 키 큰 나무 분수대 노래를 들어라 초록 잎사귀들이 늴리리야 춤사위를 보라 참나무는 참나무 소나무는 소나무 자작나무는 자작나무의 초록 물방울 소리 새초롬한 오솔길의 슴슴한 바람 소리 성난 바다의 얼굴로 섣불리 판단하지 마라 진달래 꽃불의 노래 만리향 만병초 수만리 향기에 함빡 젖어서 천지연 장백폭포 소리 들어라 물은 그냥 물방울이 아니다 네 심장 박동소리 그것이 바로 진정한 물방울이다 ♧ 개밥바라기별 – 이화인 어슴푸레 동트는 꼭두새벽 길 옷깃을 붙드는 이 그 누구신가? 징검징검 건너온 해쓱한 달님 걸망 속에 넣어 준 통감자 한 알. ♧ 노송의 말씀 – 이윤진 병풍산 제일봉 기슭 면앙정자 솔바람 불어와 억새꽃 은빛으로 몸을 ..

문학의 향기 2023.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