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읍내 교회 첨탑 십자가 위 비둘기 날아가고 하늘이 살짝 흔들렸다 유리창은 노을로 물들고 도시는 화장을 고치고 첨탑 너머 목욕탕 간판이 덩달아 번쩍이고 노인 몇 태운 마을버스 꽁무니 탈탈 흔들며 지나가고 포플러 잘린 가지도 새잎을 내밀고, 그것을 노을이 가만히 만지고 갔다 ♧ 미호천 백로가 백 년 동안 이 강을 찾는 까닭이 있었다 묘천이 미호천이 될 때까지 발목을 잘라 가는 강물 위에서 외다리로 서는 법을 익히기 위해서였다 --- *묘천이라는 이름이 미호천으로 변하였다는 전언이 있다. 청주와 오창 사이를 가로질러 흐르는 강. ♧ 둥구나무 무수한 혀가 있다는 것 그 혀만큼 세상을 맛볼 수 있다는 것 휘파람 불고 노래하고 집을 짓고 연애도 하고 숭숭한 몸집 세월만큼 부풀었지만 어둠이 골목을 숨길 때까지 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