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집으로 레일 위를 미끄러지는 금속성 경적이 사라지자 지하철이 바로 내 발 앞에서 멈춘다 사람들이 우르르 지하철 밖으로 터져 나오고, 그 숫자만큼의 사람들이 지하철 안으로 구겨진다 오후 세 시의 지하철 안은 조용하다 눈을 감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습관적 피로가 묻어 있다 창 너머로는 허약하고 얕은 건물이, 술 권하는 광고의 남자 배우가 빠르게 지나간다 지하철이 터널로 들어설 때는 먼지를 뒤집어쓴 천장의 전등들이 짓누르는 어둠에 일제히 저항한다 어떤 사람은 가방에서 책을 꺼내지만, 또 다른 어떤 사람은 책을 가방 속으로 밀어넣는다 아무도 무엇에 대해 말하지 않고, 어디를 쳐다보지도 않는다 지하철 안의 둥글게 휘어 있는 벽면 틈으로 종착점임을 알리는 여자 아나운서의 음성이 새어 나온다 사람들은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