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2023/06 29

월간 '우리詩' 6월호의 시(4)

♧ 봄 들판에서 - 정순영 꽁꽁 얼어서 갈라지는 고난에서 얻은 생명의 이파리가 연두 물결 봄 윤슬로 반짝거리네 산과 들 잔설 녹이는 바람결에 복수초가 데리고 오는 냉이랑 달래랑 종달새 노래 신바람 나도 좋소 하늘빛 찬란한 봄날 가난한 믿음에 화관을 씌워주시거든 새 생명 나부끼는 싱그러운 봄 들판에서 나투시는 주님을 보리라 ♧ 눈물이 짠 이유 – 김세형 눈물이 짜지 않으면 사랑이 무척, 싱겁기 때문이다. ♧ 이밥 – 나영애 보릿고개 그 마지막에 서숙 밥 한 그릇도 과분한데 하얀 이밥을 주겠답니다 보기만 하여도 냄새만 맡아도 설레는 마음 터질 듯 벅차서 눈물 보가 팽팽하게 부풀어 오릅니다 토닥토닥 진정하지 않으면 심장이 쿵! 쾅! 쓰러질 것 같습니다. 하얀 이밥 같은 그대여 ♧ 밥은 먹었니? - 여연 “밥 ..

문학의 향기 2023.06.30

'산림문학' 2023년 여름호의 시조(2)

♧ 초석잠草石蠶 - 신후식 흔찮아 귀하던가 봄여름 가을살이 나날이 가꾼 꿈이 지우地友 품 멋지더니 전서구傳書鳩 타고 온 소식 맛깔스런 산우가山友家 ♧ 곰솔을 바라보며 - 우아지 지나던 한 남자가 목 빼고 바라본다 태종대 벼랑 끝에 버티고 선 굽은 곰솔 쉬운 길 다 마다하고 너는 그곳 편안하냐 추락의 아찔한 틈 윤슬 위로 퍼 올리며 짧은 생각 굳게 닫고 간이의자에 앉는다 편하게 가려고 한 생生 누추해 옷깃 여민다 ♧ 수리산역 인근에서 – 전현아 철쭉꽃 필 무렵에 수리산역 가보아라 여기 저기 사방에서 활활 타는 불꽃들 이 땅의 피 끓은 청춘 사랑으로 타나보다 비탈진 언덕 위에 떼 지어 핀 꽃잎들 꽃잎이 피어나듯 사랑도 피어나고 헌화가 사랑노래도 가슴 안에 퍼져간다 옛 사랑 그리우면 4호선 전철 타고 수리산역..

문학의 향기 2023.06.29

남대희 시집 '어느 날 찾아온 풍경들의 기억'(2)

♧ 유홍초꽃 보슬비 내리는 늦여름 고향 밭둑길에서 홍순이를 만났다 그 옛날 내 옆구리 쿡쿡 찌르며 한번 안아 달라고 매달리던 그렇게 발랑발랑 까졌던 그 계집애 홍순이 수십 년 동안 까맣게 잊었던 홍순이가 밭둑길 탱자나무 울타리에 걸터앉아 빨간 입술을 홀라당 까고는 배시시 웃고 있다 ♧ 동백 구질구질한 건 질색 죽어도 모가지 팍 꺾고 따갈따갈 구를 뿐 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핏빛 사랑 서걱거리는 모래바람에도 북풍한설에도 자욱 하나 남지 않은 사시사철 푸른빛 놓지 않고 한 번 붉게 피었다가 뚝! 뛰어내리는 것이다 동백이 ♧ 자두꽃 이른 봄 하얗게 센 머리에 비녀를 곱게 꽂은 할머니는 밭둑에 앉아서 늘 하늘을 쳐다보시더니 어느 바람 심하게 불던 날 홀연히 서쪽하늘로 날아가셨다 노을은 불타올랐고 붉은 도화는 ..

문학의 향기 2023.06.28

'혜향문학' 2023년 여름호의 시(3)

[초대시] ♧ 하이힐 - 서일옥 어느 겨울 받아 든 출생의 운명처럼 가도 가도 높고 가파른 하이힐이 여기 있다 찬바람 무찌르려고 찬바람 허리에 감고 세상은 목마르고 뜨거운 사막이었다 그 길을 여자 하나가 절며 걸어간다 똬리 튼 파충류처럼 맹독의 입술을 하고… ♧ 대나무 꽃 - 임애월 대나무가 벼禾과라는 걸 우연히 알았다 하늘로 가는 가장 정직한 거리 직립의 길을 선택한 그의 의지가 육십갑자의 시간 속에서 가볍게 부풀어 오른다 바람이 불 때마다 부서지던 생生의 조각들 게워내고 비워버린 제 속살들은 어디쯤서 포만의 게으름을 좇고 있을까 마지막 공명共鳴으로 밀어올린 한 생애의 방점 딱 한번 피워 올린 꽃이여 나무도 아니고 풀도 아닌 것의 꿋꿋함이여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땅 속 어둠을 거머쥐었던 단단한 발톱 ..

문학의 향기 2023.06.27

문영종 시집 '물의 법문'의 시(5)

♧ 큰 슬픔은 드러나지 않게 둥지를 튼다 -큰곶 검흘굴에서 큰 슬픔은 드러나지 않게 둥지를 튼다 큰곶 검흘굴 들어가는 굴천장이 무너져도 여기 살고 있는 이끼들, 고사리들, 돌무더기들 하늘로 몸을 드러낸 채 나무뿌리들도 공중으로 발을 내민 채 위태롭게 바람을 딛고 빛 속에 서 있다 캄캄한 세상 아직도 무자년 하늘빛 어둠이 쌓여 있다 하늘이 펑 뚫려 살 만한 세상 열리기 이 동굴 어디에 숨어서 기다리던 이들 다 죽어 없다 동굴은 삶의 길이 아니라 죽음의 길이었던 것을 더 이상 깊숙이 나는 걸어갈 수가 없다 ♧ 용눈이오름 휘어진 곡선이 관능적이다 매혹적인 여인이 살고 있다 마주보이는 다랑쉬오름보다 가파르지 않아 안심된다 입구에 도착하니 싸락눈이 쏟아진다 용눈이 능선 오르는 것은 그리운 이 만나는 기분이다 우리..

문학의 향기 2023.06.26

월간 '우리詩' 6월호의 시(3)

♧ 동백冬栢 - 이학균 우주 하나가 떨어졌다 설레는 첫사랑 하나 운석보다 무겁고, 한설寒雪 속에서 더 짙어진 사랑은 죽어서도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모습 그대로, 네 심장에 직선으로 꽂히는 불꽃같다. ♧ 봄비 – 위인환 치부를 감추기 위해 또 다른 핑계를 댄다 만취된 하루가 띄엄띄엄 먹구름 사이로 나타날 때 봄은 왔으나 봄이 아니다 노지에서 탈의한 죄 땅속 양분을 훔친 죄를 씻어내는 거룩한 의식 밤새 성수를 뿌려 세례를 하고 있다 각질 같은 죄가 사해지는 봄 용서 받은 땅에서 새로운 삶이 움트고 있다. ♧ 소금 – 김용태 아무리 먹어도 포만감을 모르는 저 바다는 잡식성이다 밤낮 가리지 않고 무언가를 삼켰다 뱉어 내면서 성난 물살을 물어뜯기도 하고 태풍으로 멀리 밀어내기도 한다 그걸 알고 있는 염부는 바닷..

문학의 향기 2023.06.25

한남리 '서중천 탐방로'

서중천 탐방로는 머체왓 숲길과 연계되어 있다. 머체왓 숲길과 소롱콧길의 축을 이루는 서중천을 따라 한남마을 위쪽까지 이어지는 탐방로다. 출발점은 마을 위쪽 고남물교. 냇가를 따라 용소, 제한이곱지궤, 절도/절터, 용암바위 등을 거쳐 머체왓 안내센터까지 이르는 총 연장 3km의 생태․문화 탐방로로, 종주하는 데만 1시간 20분 정도 소요된다. □ 서중천을 따라서 서성로 810번길은 한남마을의 중산간동로와 서성로를 잇는 도로다. 이 도로와 서중천이 만나는 지점엔 ‘고남물교’라는 다리가 놓여 있는데, 그 남쪽에 한남리 마을지도를 포함한 탐방로, 한남7경 등 여러 가지 안내판을 세웠다. 안내판 ‘한라산 너머 남촌 건강보따리 마을’이란 부제가 붙은 마을소개에는 ‘마을 면적 총 3,327ha의 87%가 임야이며, ..

길 이야기 2023.06.24

계간 '산림문학' 여름호의 시(1)

♧ 수목원을 걸으며 – 김용학 매일 새벽 수목원을 홀로 걷는다 그곳은 사계절이 사이좋게 오간다 꽃들의 향연이 열리는 봄 녹음이 짙어가는 여름 풍요로운 단풍의 가을 침묵과 적막 속의 겨울 삶에도 이 모든 흐름이 너울거리지만 그곳은 인생이라는 공식도 정답도 없이 모든 과정을 담아낸다 흐르는 세월 속 법이 없고 식이 없는 꽃이여, 나무여! 치유의 스승이여 나의 벗, 나의 애인 사랑이여 ♧ 해변으로 가면 – 김학균 두 어린이 엄마 손잡고 천천히 걸어가는 해변 길 파도는 이랑지며 놀고 태양이 스치듯 지나다가 추억을 널어놓은 수평선 꿈 노래를 연주하는 파도 햇살 아래 잠든 꽃 등대 넘실거리며 다가와 해변을 쓰다듬는 잔물결 여인이 사랑했던 추억과 어린이의 꿈이 찰랑거린다 ♧ 간월도 – 구자운 달을 감상하기에 안성맞춤..

문학의 향기 2023.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