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시] ♧ 하이힐 - 서일옥 어느 겨울 받아 든 출생의 운명처럼 가도 가도 높고 가파른 하이힐이 여기 있다 찬바람 무찌르려고 찬바람 허리에 감고 세상은 목마르고 뜨거운 사막이었다 그 길을 여자 하나가 절며 걸어간다 똬리 튼 파충류처럼 맹독의 입술을 하고… ♧ 대나무 꽃 - 임애월 대나무가 벼禾과라는 걸 우연히 알았다 하늘로 가는 가장 정직한 거리 직립의 길을 선택한 그의 의지가 육십갑자의 시간 속에서 가볍게 부풀어 오른다 바람이 불 때마다 부서지던 생生의 조각들 게워내고 비워버린 제 속살들은 어디쯤서 포만의 게으름을 좇고 있을까 마지막 공명共鳴으로 밀어올린 한 생애의 방점 딱 한번 피워 올린 꽃이여 나무도 아니고 풀도 아닌 것의 꿋꿋함이여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땅 속 어둠을 거머쥐었던 단단한 발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