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홍초꽃 보슬비 내리는 늦여름 고향 밭둑길에서 홍순이를 만났다 그 옛날 내 옆구리 쿡쿡 찌르며 한번 안아 달라고 매달리던 그렇게 발랑발랑 까졌던 그 계집애 홍순이 수십 년 동안 까맣게 잊었던 홍순이가 밭둑길 탱자나무 울타리에 걸터앉아 빨간 입술을 홀라당 까고는 배시시 웃고 있다 ♧ 동백 구질구질한 건 질색 죽어도 모가지 팍 꺾고 따갈따갈 구를 뿐 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핏빛 사랑 서걱거리는 모래바람에도 북풍한설에도 자욱 하나 남지 않은 사시사철 푸른빛 놓지 않고 한 번 붉게 피었다가 뚝! 뛰어내리는 것이다 동백이 ♧ 자두꽃 이른 봄 하얗게 센 머리에 비녀를 곱게 꽂은 할머니는 밭둑에 앉아서 늘 하늘을 쳐다보시더니 어느 바람 심하게 불던 날 홀연히 서쪽하늘로 날아가셨다 노을은 불타올랐고 붉은 도화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