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2023/04 16

월간 '우리詩' 4월호의 시(1)

♧ 물의 유혹 - 김정범 조용한 거울, 심장의 혈관이 보이는 공기의 호수에 서 있었다 바람에 깨지는 물비늘 파랗게 놀란 죽음의 지느러미가 돋아났다 물 아래서 쓸려가는 것들, 절대 돌아오지 않을 침묵의 입술 가슴이 하얀 부레 오월, 그 헝클어진 하늘색에 금빛 피라미처럼 몸을 던져 물과 사투를 하고 싶었다 한참 동안 중력에 끌려 몸을 가누지 못했다 떠 있는 나뭇잎에 검은 송충이가 기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 왕생에 대하여 – 김석규 왕생이란 반드시 죽은 후의 세계가 아니라 살아가면서 마음을 바꾸면 가는 곳이다 항상 마음 하나 정갈히 하는 것이 곧 왕생이니 살아 있으면서 확실한 무엇도 하나 파악 못 하는데 어찌 죽어서 가는 일에 믿음이 생길 것인지 ♧ 신언잠新言箴 – 洪海里 세상에 입맛대로 되는 일이 어디 있으..

문학의 향기 2023.04.08

오승철 시집 '다 떠난 바다에 경례'의 시(6)

♧ 혼자 우는 오름 온다 간다 말없이 억새 물결 갔다니 온다 간다 말없이 장끼마저 갔다니 양지꽃 등을 끄려나 저 혼자 남은 오름 ♧ 바람이 끌고 온 석굴암 단풍아 산아 산아 한라산아 절아 절아 석굴암아 바람이며 등반대가 끌고 온 한 줄기 단풍 여기를 오간 가슴들 그 불은 누가 끄나 ♧ 긁다 만 부스럼같이 에라 그만 두자 긁다 만 부스럼같이 에라 그만두자 끄다 만 집어등같이 솔째기 바다빛 살빛 얼비치는 하늘 한켠 눈 감거나 뜨거나 그저 그런 밤이었을까 가시처럼 박혀있는 이야기가 남았는지 갯마을 올레길 돌아 눈을 뜬 듯 감은 듯 ♧ 눈물 창창 바다 불빛 바다가 켰나 하늘 불빛 하늘이 켰나 바다엔 불빛이 창창 하늘에도 불빛이 창창 이 섬이 날 가둬 놓고 눈물 창창 그러네 ♧ 섬벌초 끊어야지 술 담배 끊듯 그렇..

카테고리 없음 2023.04.07

계간 '산림문학' 2023년 봄호의 시(4)

♧ 봄 새잎 – 임정현 어디서 삼동을 견디었을까 저 맑은 연둣빛 얼굴 새순의 옹알이 바람과 바람 빗방울 띠뜨르르 가지 위에 새잎 눈 뜨는 날 색색의 빛깔들 해에게서 나와 지상의 열락이 시작되었다 ♧ 여행의 맛 – 김수연 온밤을 달려가면 기꺼이 맞이하는 발가벗은 선바위 꼭대기에 비추던 아침 해 황홀히 퍼져 금빛의 출렁거림 밤과 낮이 바뀌고 마주한 뜨거움이 하루를 안아 품고 서서히 빠져들어 백룡담 푸른 물속은 경이로움 차고 넘쳐 액체 같은 햇살이 수면 위를 휘저을 때 저 바람 파고들어 시리게 흔들리며 태화강 십리 대밭이 용암정을 기웃댄다 ♧ 휴양지에선 ‘숲 멍’을 - 우형숙 숙제하듯 밥을 먹고 창문을 활짝 연다 오늘도 여지없이 수런대는 녹색물결 그렇지 침묵의 햇살도 숲 속에선 저리 웃지 따뜻한 차 한 잔에 ..

문학의 향기 2023.04.06

제주시 전농로 벚꽃 잔치

♧ 꽃피는 편지 - 김형술 제 노래를 받으시겠습니까 마른 바람 황사처럼 떠다니는 도시에서 봄이 와도 꽃피지 않는 우편함 한껏 열어 온몸으로 꽃피는 제 노래 꽃소식인 양 웃으며 받아주시지 않겠습니까 경남 진해시 웅동1동 소사마을 예전엔 창원군 웅동면 소사리였던 진해 변두리 굼뜬 바다가 봄기운에 뒤척이기도 전에 번져나는 분홍빛으로 둘러싸이는 마을 진해 군항제 벚꽃 쯤 흰눈으로 흘겨보는 구름더미같은 벚꽃동산이 있지요 꼭 처녀 젖꼭지같다 어른들이 이야기 하던 아직 눈 못뜬 어린 꽃망울따라 신작로 가득 꼬리를 물던 뽀오얀 먼지 속 구경꾼 가득 실은 버스행렬이 산모퉁이를 돌아서기 시작하면 마을은 술렁였지요 육 이오 동란 때도 쥐죽은 듯했었다는 바다를 낀 산마을이 딸 단속 과부 단속 심란한 총각들 단속으로 때 아닌 ..

아름다운 세상 2023.04.05

서안나 시집 '새를 심었습니다'의 시(8)

♧ 그늘의 질량 아홉 마리 용이 한 그루 꽃나무를 피운다는 대승원 귀룽나무 나무 그늘에 나무 한 그루가 다 들어있다 그늘의 한쪽을 막으면 고요다 귀룽나무 백 년의 그늘을 다 밟은 점박이 고양이 한 마리 몸 안의 캄캄한 골목을 다 건넜다 분홍 발바닥 근처 상처 난 그늘을 핥는다 그늘을 열고 그늘을 굴리고 그늘을 논다 고양이를 쓰다듬으면 저승이 축축하다 고양이가 그늘을 몰고 다닌다 그늘마다 미지근한 꼬리가 길다 명부전 금강경을 머리에 얹은 염라대왕 이마까지 꽃잎이 다 번졌다 그늘은 머리와 꼬리가 분별이 없는 꽃 머리부터 꼬리까지 다 열렸다 ♧ 새를 깨닫다 2 관흉국 사람들은 가슴에 구멍이 나 있다. 존귀한 이는 옷을 벗고 비천한 것들로 하여금 대나무로 가슴을 꿰어 들고 다니게 한다. -산해경 달걀을 놓쳤다 ..

문학의 향기 2023.04.04

제주 4.3 75주년 추념식과 시화전

♧ 아무도 아닌 자*의 섬 – 원양희 당신은 어느 해변에서 어느 계곡에서 어느 바위굴에서 어느 오름에서 모래가 되었나요 바람이 되었나요 사랑하는 이들이 눈앞에서 핏방울로 살점으로 흩어져 갔나요 뜨거운 각막의 고통, 기억의 세포마다 대못이 박혔나요 천 조각 만 조각 갈라진 가슴 부여잡고 비명조차 삼킨 채 숨죽여야 했나요 추위보다 배고픔보다 더 혹독한 건 사람이 사람을 믿을 수 없는 막막함이었나요 생명이 생명이지 못했던 폭력 앞에 광기 앞에 푸른 하늘 푸른 바다만 서럽게 서럽게 바라보았나요 아직 섬을 떠나지 못한 당신 영혼은 긴 침묵의 시간 건너 겹동백 붉은 꽃잎으로 피었나요 생채기 선명한 잎사귀가 되었나요 보랏빛 순비기꽃으로 피었나요 하얀 나비로 날아올랐나요 --- *파울 첼란의 시 『찬미가』중. ♧ 열 ..

문학의 향기 2023.04.03

오승철 시조집 '다 떠난 바다에 경례'의 시조(5)

♧ 우성강을 건너다 바다에도 강이 있다 힘줄 같은 강이 있다 우도와 성산 사이 ‘우성강牛城江’ 건너러면 갈매기 네댓 날리며 과자 뇌물도 바친다 시인 강중훈 고향 오조리도 흘려보내고 내 누이 시집 살던 종달리도 흘려보내고 보내고 남은 사람만 그 죗값이 푸르다 천진항 뱃고동 소리 마지막 울고 나면 어느 집 올레인들 이별 없이 버텼을까 물 천장 막 깨고 나온 숨비소리 저 갯메꽃 ♧ 저 말이 가자 하네 사진작가 권기갑의 말 한 마리 들여놨네 고독은 고독으로 제련하란 것인지 삼백 평 눈밭도 함께 덤으로 사들였네 십년 넘게 거실 한켠 방목 중인 그 말이 불현듯 투레질하네 이 섬을 뜨자 하네 나처럼 유목의 피가 너에게도 흐르느냐 살아야 당도하는 사나흘 뱃길인데 해남인지 강진인지 기어이 가자 하네 고향도 하룻밤 잠시 ..

문학의 향기 2023.04.02

계간 '산림문학' 2023년 봄호의 시(3)

♧ 봄의 소리 – 석연화 그대여 목소리를 낮추어 주십시오 속삭여 부르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습니다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재잘거리는 새들의 소리가 있습니다 마음을 열어 주십시오 뺨을 더듬는 바람소리가 있습니다 고개를 돌려 주십시오 수줍게 터뜨리는 꽃망울의 신임소리가 있습니다 그대여 시인의 마음이 되어 주십시오 이 기막힌 윤회의 소리가 당신을 찾아오고 있습니다 ♧ 봄꽃의 첨병 – 성명순 뒤에 서 본 적이 없다 눈보라 온몸으로 헤치며 걸어온 언덕에 비로소 벙근 매화 나를 보고 모두 저마다 꿈을 보이라고 당당히 외친다 ♧ 아주 짧은 소설처럼 – 손현숙 통유리 창가에 하품으로 앉아서 아슴아슴 햇살을 읽네 화장도 하지 않은, 매캐한 암향이 하늘 문을 연다 구름 속에 구덩이를 파고 푸른 질의 여자가 발목을 내린다 남쪽..

문학의 향기 2023.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