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홍 넥타이 송악산 비탈, 한 뼘만 한 풀밭 나이 든 조랑말 한 마리 말뚝에 묶여 있다 발굽 아래가 바로 벼랑인데 캄캄한 낭떠러지인데 고삐에 매인 맴돌이가 어제오늘 일만은 아니라는 듯 제자리를 맴돈다 이따금 고개 들어 바다를 바라보다 다시 고개 숙이는, 한 뼘 원주에 묶인 내 몸도 많은 날 해 저물고 목이 마르다 그러니 생은 팽팽한 심줄 끌어당기는 풀밭 그 한가운데를 바라보는 것 올봄, 내 아이가 처음 맨 ♧ 붉은 꽃으로 가다 저것들, 헤픈 듯한 웃음을 흘리며 길모퉁이에 서 있다 꽃잎 안을 살며시 들여다본다 반점 같은 씨방이 고요히 잠들어 있다 벌거벗은 내가 잠들어 있는 자궁 속이 저리 푸르다 저렇게 푸르다 칸나에게로 가면 붉은 꽃잎으로 둘러싸인 생명을 볼 수 있다 까맣게 숨어 있는 나를 들여다 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