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2023/07 31

'정드리문학' 제11집 박수기정 관점의 시(2)

♧ 서귀포 동문로터리 닭내장탕 - 오승철 어느 도시에도 찾기 힘든 닭내장탕집 무김치 너덧 개면 접시가 넘치지만 그 식당 아줌마 볼도 김치처럼 물이 든다 닭장에 갇히거나 아파트에 갇히거나 닭의 길, 사람의 길, 그게 그걸 테지만 아리랑 아리랑 같은 구불구불 닭내장길 무김치와 닭내장탕, 아줌마와 사십 년 간판 궁합도 저리 맞아야 세상맛을 아는 걸까 주문을 넣기도 전에 보글대는 저 냄비 ♧ 별천지 – 문순자 산이 깊어 그런가 별이 별을 부른다 자정을 훌쩍 넘긴 내설악 어느 절 마당 낮에 본 불사리탑이 별처럼 반짝인다 불상 하나도 없는 대웅전 들어서면 통유리창 안으로 언제 들어오셨나 비워둔 연꽃좌대에 가뿐히 앉아계신다 새벽 다섯 시면 하산을 한다는데 그렇게 부처님과 뜬눈으로 지샌 별들 벗어둔 등산화에도 독경소리..

문학의 향기 2023.07.15

서귀포시 붉은오름자연휴양림 상잣성길(2)

□ 목재문화 체험장 상잣성 숲길로 연못을 지나면 휴양림 서쪽에서 여러 가지 시설들과 만나게 된다. 목재문화 체험장과 해맞이숲길 입구, 야외공연장이 그것이다. 목재문화 체험장은 ‘목재에 관한 지식과 정보 제공을 통해 목재문화의 중요성을 알리고, 남녀노소 누구나 목재 체험의 기회를 통해 관람객에게 소중한 추억을 선사’하기 위한 곳이라고 했다. 사실이지 우리가 어렸을 당시엔 일부 특별한 사람들을 제외하면 목재를 만지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목공 실습 체험실과 스토리텔링실, 아로마테라피 체험실, 편백․참나무 체험실, 유아 목재 체험실, 목재 정보관, 규화석 전시실 등에서 체험을 하거나 정보를 얻고, 간단한 가구나 장난감을 만들어 볼 수도 있다. □ 말찻오름과 해맞이숲길 목재문화 체..

길 이야기 2023.07.14

남대희 시집 '어느 날 찾아온 풍경들의 기억'(5)

♧ 팔월의 강 강물이 천천히 흐르고 새들의 발자국 더 깊고 돌들도 발목을 걷고 아이들도 아지랑이 같이 걸었다 햇살도 까치발로 걷고 바람도 그늘 찾아 숨는 팔월 소나기라도 내리면 빗줄기 타고 오른 송사리 떼 무지갯빛 하늘 가득 비늘을 털어 놓던 그 강가 거품 뭉개며 쏟아 내는 저 말들, 말들 강물처럼 휘돌던 세월 초록이 고이고 고여 가슴마저 현현玄玄해지던 팔월의 그 강 ♧ 하늘과 우주 구름이 떠 있고 새들이 날고 바람이 흐르고 고인 시간이 창공에 가득해 시간은 말랑한 물질 달리는 우주에 시간을 빼면 공간이 함께 사라져* 구름이 모이고 햇살이 내리고 낙엽이 지는 것은 바람 때문이 아니라 그냥 그럴 뿐 --- *시時공간에서 시간과 공간은 불가분이다. ♧ 지나가다 차창 밖으로 풍경이 지나간다 구름이 흐르고 전봇..

문학의 향기 2023.07.13

월간 '우리詩' 7월호의 시(2)

♧ 마법이 풀리는가 – 도경희 이슬처럼 청초한 아라크네가 칠 짙은 물레를 돌린다 실 한 가닥 한 가닥 몸에서 뽑은 씨줄에 달빛 날줄 엮어 금박 물린 구름 꽃 하늘에 눈부시게 얹혔다 사락사락 두메산골 긴긴 밤을 짜는 직녀의 아미는 얼마나 고운가 크고 작은 별이 눈을 깜박이며 견디고 살아낸 이방인을 신기한 듯 바라본다 은하수가 흐르고 유성이 멀리 날아간다 ♧ 설악 해변에서 – 방순미 한낮 수평선 끝 시선 던져 놓고 멸치 떼 은비늘 튀듯 잔물결 눈부시다 오래 바라보니 파도 소리 사라지고 고요만 남아 밀려가며 밀려오다 섰다 지는 물 그림 말끄러미 바라보면 모래톱처럼 남은 상흔마저 지워져 흔적 없다 ♧ 백석천 – 오명헌 에미 청둥오리가 갓 부화한 그의 가솔 열두 마리를 데리고 학익진 대형으로 백석천을 유영해 가네..

문학의 향기 2023.07.12

'혜향문학' 2023년 상반기호의 시(4)

♧ 사월 다랑쉬굴 – 김정희 -다랑쉬굴 시혼제에서 일어서서 간다 긴 시간 속으로 동굴 속처럼 깊은 첼로 소리 검정 고무신 등에 올려놓고 걸어라 뛰어라 온몸으로 말을 걸어도 지긋한 미소 지난 일인걸 가랑비에 보슬보슬 젖은 풀밭 흙이 몸이 되고 몸으로 기어 나와 살아 구음으로 건네는 말 들어보면 눈물이 비가 되어 내린다 어둠에 누워 한 바퀴 돌아 나온 다랑쉬 굴 안으로 안으로 이름을 불러내어 검정고무신 가지런히 놓고 온몸으로 걸어 나와 몸으로 드네 비가 되어 흐르는 음악 소리 무겁게 젖는다 ♧ 사람이 없습니다․1 – 윤봉택 사람이 없습니다 국제선에는 사람이 바글거리는데 마당에 널어놓은 날레* 당그네질 하여 줄 개촐* 막뎅이 ᄒᆞ나 없습니다 시방, 강남땅에는 미어 밟히는 게 사름 닮은 거라는데 내 눈에만 콩깍..

문학의 향기 2023.07.11

서귀포시 붉은오름자연휴양림 상잣성길(1)

□ 붉은오름 자연휴양림 자연휴양림이 자리한 붉은오름은 표선면 가시리 산158번지로 남조로변에 있는 표고 569m, 둘레 3040m의 오름이다. 오름 자체는 휴양림 밖에 있으나 건강산책코스로 활용하고 있다. 오름 북쪽 길가에 통나무를 쌓아올린 것 같은 바탕에 멋진 글씨체로 써 붙인 안내판을 지나 진입로에 들어서면 왼쪽에 붉은병꽃나무, 오른쪽에 참꽃나무가 꽃을 피워 탐방객을 맞는다. 약 300m쯤 걸어간 곳에 주차장과 방문자센터가 자리 잡았다. 붉은오름자연휴양림은 한라산 동쪽 제주시와 서귀포의 경계선 남쪽에 자리해 있다. 그래서 온대․난대․한대 수종이 다양하게 분포된 울창한 삼나무림과 해송림, 천연림 등의 자연경관이 그대로 보존돼 있는 곳이다. 휴양림에는 ‘숲속의 집’과 각종 편의시설, 그리고 쾌적한 쉼터를..

길 이야기 2023.07.10

'산림문학' 여름호의 시(4)

♧ 장항선 – 김황지 역사 밖 의자에 햇살이 졸고 있다 상 하행선 시간표도 침목 위 철로도 기다림에 늘어지고 가까스로 웅천역에 멈춘 열차 무창포에서 잡은 해산물과 속 찬 가을 텃밭 한 평 떼어 싣고 서울로 향한다 내 젊은 날을 운반하던 장항선 지금은 어느 청춘을 북적거리는 서울역에 부려놓는가 급행도 완행도 종점은 한 곳인데 혼자 남아 눈시울 붉히는 먼 산 장항선 천천히 웅천역을 떠난다 ♧ 무명용사 유월이 오면 전설을 노래한다 총성과 포성 사선死線을 넘나들던 용사들 서서히 잊혀져 간다 흙에서 자라 흙으로 돌아간 이들의 선혈 산하는 붉고 뜨거운데 승리는 희생으로 피는 꽃 불후의 서사가 되고 유성처럼 스러져 잠든 영혼 하늘에 올라 별이 되어라! ♧ 보랏빛 생 – 엄선미 아침 햇살에 나팔꽃 웃음이 쏟아진다 바지..

문학의 향기 2023.07.09

남대희 시집 '어느 날 찾아온 풍경들의 기억'(4)

♧ 풍경 능수버들 사이 물안개 자욱한데 새벽마다 머리 내밀고 창공을 유영하는 꿈을 꾸었던 시절이었다 끝내 중력을 이기지 못해 물 위에 파문만 내던 시절이었다 꿈은 마른하늘에서도 지느러미를 세우고 그림 같은 풍경을 그려낸다 창공에 풍경을 만들고 스스로 갇힌 허공에 바람을 끌어와 소리로 파문을 내는 붕어 한 마리 ♧ 비 오는 날 숲속 초목들 운다 개복숭아 나무가 망개 넝쿨이 산수국 돌배나무 온몸 눈물범벅 되어 운다 체면 가식 다 버리고 한 번쯤 울어보라고 천둥처럼 통곡해 보라고 회초리 자국 어루만지며 눈물 떨구시던 엄니 그리워서 숨어 우는 청개구리 곁에 서서 그렇게 울고 싶다 ♧ 화석과 바람 숨을 멈춘 지 몇 년 그것은 역사 이전의 사건 명치끝 잔뜩 힘주고 어금니 곽 깨물고 참았다가 확 뱉어낼 때 큰 짐승은..

문학의 향기 2023.0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