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양철 지붕에 햇살이 튕기고 마른 발바닥으로 햇살을 밟고 있는 회색 털 사이로 파고든 햇빛이 꼬리를 잘라가고 눈알을 빼 가는 줄도 모르고 바람 따라 귀만 쫑긋거리고 있는 섣달그믐 몰려든 어둠은 산자락을 베물고 그림자를 조금씩 키우고 있는 애완으로 변해버린 야생의 본능을 바람이 쿡쿡 찔러보고 있는 한 호모사피엔스가 햇살을 밟고 서 있는 한 고양이를 바라보고 있는 오후다 --- *나쓰메 소세키의 장편소설 ♧ 지우개 똥 ‘이별’이라고 쓰고 지우개로 문지르면 지우개도 아픈지 하얀 몸 까맣게 태우며 ‘이별’을 돌돌 감고 쓰러지네 책상 위 지우개 똥 거룩한 성자의 이름도 화려한 스타의 이름도 억만장자의 이름도 돌돌 말아 흩어져 있네 몸 문질러 지워낸 자리 하얗게 비워지네 내가 누군가의 허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