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극장 객석에 홀로 남아 바람 세게 부는 어느 가을날 극장 객석에 홀로 남아 배우들의 목소리가 부딪치던 무대를 천천히 바라본다 아직 남아 있는 배경 그림의 길게 웃자란 대나무 숲에선 맑은 웃음소리가 흘러나오지만 정작 극장에 홀로 남은 이유를 자연스레 깨닫게 하는 기호는 어딘가에 숨어 보이지 않는다 한 배우가 분장 그대로인 얼굴로 객석 통로를 천천히 지나간다 옛 그리스의 유려한 그릇처럼 정교하게 잘 짜인 작품에 힘입어 인물의 삶을 연기하는 배우라면 극장의 정해 놓은 기간 동안에는 배우의 위치를 잘 지킬 수 있으리라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배우의 연기와 배우의 삶은 다르다 배우의 삶에도, 우리의 삶에도 앞을 가리는 막幕은 아예 없다 돌이킬 수 없는 결말이 있을 뿐 그것은 누구의 삶에도 적용된다 바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