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꽃병 - 이강산 꽃에 사무쳐 꽃 품고 사는 봄처럼 내 몸의 골짜기마다 꽃이다 골짜기가 깊어 꽃도 나도 빠져나가지 못하는 4월은 꽃병처럼 붉다 봄 신호등에 걸린 낡은 자동차의 앙가슴에 진달래 두어 가지 꽂혀 있다 저 여인도 꽃에 사무쳐 꽃 품고 가는 것이라면 십중팔구 나처럼 꽃병 든 거다 ♧ 밀물과 썰물 – 백수인 밀물 나무 한 짐 가득 지고 쿵쾅거리며 산비탈을 뛰어내려오는 일꾼들의 기세다 뒷마당에 무거운 짐 다 부려 놓고 막걸리 한 잔 나누는 호흡이다 먼 바다에서 건져온 미역, 다시마, 파래, 톳, 청각들을 모래밭에 잔뜩 내려놓고 판소리 한 대목 가다듬는 추임새다 이제 비로소 밀물은 스스로 썰물이 된다 썰물 모든 욕망 다 버리고 돌아서는 순례자의 뒷모습이다 텅 빈 등허리에 햇빛 쏟아진다 꽃상여 메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