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풍나무 유월의 녹음 속에서 붉게 타오르다 기다림으로 서 있는 사람 햇빛 아래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만첩빈도리 꽃 달콤한 향기에 취해 기다림으로 붉게 서 있는 사람 ♧ 종소리 구월 볕이 쟁쟁거리던 날 증명사진 찍으러 사진관에 갔다 30분 후 나온다 하여 시장을 기웃거리다 국수 한 그릇 먹었다 성당 앞을 지나는데 이명 같은 종소리 들린다 열두 시를 알리고 있다 밀레의 만종 화폭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묵도의 시간이다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변해도 묵묵히 자기의 길을 걸어온 애수에 젖은 종소리 서로의 안부를 묻기도 전에 총총히 사라져 여운 속으로 걸어간다 ♧ 참회의 시간 물빛 사이로 해초들이 아롱거리는 이른 아침 게 한 마리 갯가에 나와 귀여운 아기 고양이 같이 앙증맞은 세수를 한다 물결이 그림자 같이 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