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먼 동네에서 이발하고 싶은 날 - 강덕환 뜬금없어도 좋다 고맙게 잘 받았다고만 하고 이러저러 꽂아 둔 시집 하나 챙겨 들고 환승하면 되지 뭐, 굳이 노선버스 익히지 못해도 방향만 맞으면 버스를 탄다 창가 쪽이면 덜컹거리는 맨 뒤 좌석이어도 좋다 햇빛이 들면 읽던 시집으로 가리고 졸린 눈은 차창으로 스미는 바람결에 맡겨줘도 좋다 언뜻 키 큰 정자나무, 그 옆 빙빙 도는 빨파흰 이발소 표시등이 보이걸랑 허둥대며 하차 벨을 누르자 선뜻 들어서 단골일 것 같은 유리문 힘주어 열면 훅, 포마드 냄새 와락 안기던 낮은 지붕 삼거리 이발소에서 하루를 몽땅 저당 잡혀도 좋겠다 먼 동네까지 와서야 비로소 늘어난 새치가 낭자하게 보이걸랑 예상치 않았던 염색이나 해볼까 아차! 카드기가 없지 현금이 없어도 외상이 통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