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2023/06 29

정군칠 시집 '물집'의 시(1)

♧ 게와 아이들 게들은 어쩌자고 밀물을 따라와선 바지락바지락 서귀포를 끌고 가나 바다는 어쩌자고 게들을 몰고 와선 한 양푼이 푸우 거품을 쏟아놓나 어쩌자고 나는 또 자꾸만 헛딛는 어린 게의 집게발에 목이 메어 은종소리 쟁쟁거리는 그늘로 스며들고 있나 ♧ 모슬포 모슬포에 부는 바람은 날마다 날을 세우더라 밤새 산자락을 에돌던 바람이 마을 어귀에서 한숨 돌릴 때, 슬레이트 낡은 집들은 골마다 파도를 가두어 놓더라 사람들의 눈가에 번진 물기들이 시계탑 아래 좌판으로 모여들어 고무대야 안은 항시 푸르게 일렁이더라 시퍼렇게 눈 부릅뜬 날것들이 바람을 맞더라 모슬포의 모든 길들은 굽어 있더라 백조일손지묘百祖一孫之墓 지나 입도 2대조 내 할아비, 무지렁이 생이 지나간 뼈 묻힌 솔밭 길도 굽어 있더라 휘어진 솔가지들이..

문학의 향기 2023.06.05

김신자 시집 '용수리, 슬지 않는 산호초 기억 같은'(6)

♧ 척 척 척 척 살아간다 쿨한 척 행복한 척 눈보라 속 털머위꽃처럼 예쁜 척 안 추운 척 입술을 앙다문 채로 척 척 척 살아간다 불 지르며 지는 해 서서히 밀려든다 하루야 늘 가지만 내일은 또 오니까 해 봐야 일상일 뿐이지 내 황혼은 없는 척 연락선에 나를 싣고 물 건너 떠난 사람 물마루를 보면서도 잊은 척 모르는 척 늦게 핀 당산봉 기슭 해국만 날 아는 척 ♧ 월급 바닥난 향수, 월급 받고 조말론으로 사야지 거울 속 그녀에게 윙크로 약속했네 입 벌린 빙그레 미소 거울을 뛰쳐나왔네 월급날 365기계 통장 넣고 밥 짓는 소리 쾌속으로 밥통 속 드륵드륵 돌려 삶네 보험료 자동차 할부금 자동이체 정기적금 맨 끝에 초라한 잔액 힐끔힐끔 쳐다보네 허공에 흩뿌리며 조말론, 입 비쭉 웃네 거울로 슬쩍 돌아가 낯빛 ..

문학의 향기 2023.06.04

서귀포시 붉은오름자연휴양림 상잣성길(2)

□ 목재문화 체험장 상잣성 숲길로 연못을 지나면 휴양림 서쪽에서 여러 가지 시설들과 만나게 된다. 목재문화 체험장과 해맞이숲길 입구, 야외공연장이 그것이다. 목재문화 체험장은 ‘목재에 관한 지식과 정보 제공을 통해 목재문화의 중요성을 알리고, 남녀노소 누구나 목재 체험의 기회를 통해 관람객에게 소중한 추억을 선사’하기 위한 곳이라고 했다. 사실이지 우리가 어렸을 당시엔 일부 특별한 사람들을 제외하면 목재를 만지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목공 실습 체험실과 스토리텔링실, 아로마테라피 체험실, 편백․참나무 체험실, 유아 목재 체험실, 목재 정보관, 규화석 전시실 등에서 체험을 하거나 정보를 얻고, 간단한 가구나 장난감을 만들어 볼 수도 있다. □ 말찻오름과 해맞이숲길 목재문화 체..

길 이야기 2023.06.03

동인지 '바람집 사람들'의 시(4)

♧ 따라비 물봉선 – 양시연 따라비 가는 길은 묵언정진 길이다 그것도 가을 하늘 단청 펼친 오름 앞에 어디에 숨어 있었나, 놀래키는 물봉선 그래 저 떼쟁이 예닐곱 살 떼쟁이야 선천성 농아지만 그래도 소리는 남아 어마아, 어마 어마아 그 때 그 소리는 남아 그때 그 소리만 붉디붉은 꽃으로 피어 꽃을 떠받치는 저 조막만한 하얀 손 나에게 손말을 거네, 어마아 어마어마 ♧ 두륜산에 걸린 봄 - 김미영 나는 왜 땅끝에 와도 북쪽만 보는 걸까 굽이굽이 두륜산 둘러앉은 봉우리들 그 속에 땅나리 같은 대흥사도 피었다 그래서 내 발길도 예까지 왔었나보다 그댄들 연리근 앞에 약속 한 번 없었을까 물소리 굽이쳐가도 여태 남은 저 낮달 때마침 장삼 자락 어느 청춘 걸어 나와 종 한 번 고백 한 번 당 목에 실어낸다 내 가슴..

문학의 향기 2023.06.02

문영종 시집 '물의 법문'의 시(1)

♧ 나의 잠 속에 바다는 나의 잠 속에 바다는 고요한 어둠이다 별들은 바다 피 빨아올려 곱게 빛나 물소리 깊어 어둠만큼 출렁이고 머뭇거리는 한 점 바람 없고 물길조차 없는 바다에 누워 고요하게 눈 뜨는 빈 배 하늘 끝까지 출렁이는 어둠의 고요 수평선을 껴안은 채 뜨겁게 밤바다에 나가 있었네 바다 발소리, 날갯짓 소리 바다는 무덤 속 빛깔로 숨죽인 채 허공에 떠 있고 맨발로 떠도는 것 모두 나의 잠에 스미어 스멀거린다 눈먼 물고기 하나 밤새 온 바다 휘젓고 있다 ♧ 늙은 배의 꿈 1.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앉으려고 해 살 속엔 녹슨 피 떠돌아 허파의 바람도 허하군 늪 같은 잠 그리워 심장의 피는 불꽃 시들어가고 등뼈는 고목 등걸 밑창엔 세월의 따개비 잔뜩 붙어 발걸음 붙잡곤 해 바다와 첫 만남은 황홀이었지 ..

문학의 향기 2023.0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