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2023/06 29

월간 '우리詩' 6월호의 시(1)

♧ 할미꽃 – 정순영 가난한 손녀 집 사립에 쓰러져서 양지바른 곳에 피어난 하얀 털옷 할미의 용서하는 이른 봄 적갈색 아픔을 아는가? 깊은 한의 사무치는 사랑으로 세상의 몹쓸 것을 내어 쫓는 할미의 선한 눈에 고인 하늘빛 슬픔을 ♧ 지근거리 사랑 – 김동호 ‘至近지근거리에서 밉지 않게 지근대는 아이가 있었단다 ---- 콧대 높은 그 노처녀 결국 그 아이에게 시집갔단다’ 치매 아니신데도 치매 할머니처럼 이 이야기하고 하고 또 하시는 우리 할머니 당신 이야기 같다 ♧ 휘파람 밥 – 권순자 이팝나무가 휘파람 불면 구름이 가지마다 꽃밥을 단다 환한 밥들이 그릇마다 넘치고 배고픈 기억이 출렁인다 와락 꽃들이 휘어잡는 새벽 열정 설레는 주문은 이미 도착한다 필수품이 도착할 때마다 눈멀고 귀먹은 다정한 번뇌 좌절과 ..

문학의 향기 2023.06.13

한남리 '머체왓숲길' 2코스

머체왓숲길 2코스는 따로 ‘소롱콧길’이라고도 부른다. 안내판에는 그 이름의 유래를 ‘지형지세가 마치 작은 용(龍)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하였으나, 이는 단순히 ‘롱’에서 ‘룡’을 유추한 민간어원설로 보인다. 그보다는 제주어의 ‘소롱한 곶’ 즉 ‘길쭉한 곶’이 낫지 않을까? 소롱콧길은 옛날 마을사람들이 곶에 다니던 길과 서중천의 냇가를 따라 길게 만들어진 코스로 서성로 651번길에서 머체왓숲길 1코스와 만나며, 치유의 집을 돌아 나와 서중천 전망대(다리)에서 머체왓길과 겹친다. 소롱콧길은 머체왓숲길과 같이 방문자센터에서 출발하여 꽃동산을 오른쪽으로 돌아 목장 으로 길이 나있다. 방사탑 쉼터와 옛 산화경방초소를 거쳐 머체왓 움막쉼터를 지나면 서성로 651번길과 만나고, 바로 맞은편 편백나무 숲으로..

길 이야기 2023.06.12

동인지 '올레집 사람들'의 시(6)

♧ 도댓불 - 양시연 내일 비가 오려는지 노을이 참 곱다 이런 날 포구는 참았던 말 문 트이고 견디지 못한 그리움 심장마저 붉어진다 처음 나가는 배가 켜고 끝에 오는 배가 끈다는 자구내포구 저 도댓불, 왜 꺼져 있는 걸까 어쩌면 오래전부터 고기잡이 안 나갔나 봐 파도도 기웃대다 스을쩍 그냥 가고 기다리다, 기다리다 못한 갯메꽃 노을빛 따라 올라가 제 몸 살라 불 켠다 돌아오지 못한 영혼 있기는 있는 걸까 도댓꽃 보려나 위리안치 내 사랑 이 가을 끝물쯤에는 저 불마저 끄고 싶다 ♧ 군산 고모 – 김미영 여태껏 흰 빨래는 널어보지 못했다 경암선 철길 따라 다닥다닥 들어선 집 기차도 여기선 슬쩍 신음 한번 하고 간다 ‘가수 된다’ ‘가수 된다’ 집 밖으로 나돌더니 어느 네온 불빛에 정분이 났나 보다 이따금 생..

문학의 향기 2023.06.11

문영종 시집 '물의 법문'의 시(3)

♧ 피뿌리꽃 온 산야 뿌리까지 다 타도록 불을 확 질러버릴까 부다 아, 이 가을에 피 뜨겁게 큰 일 하나 저지르고 싶다 ♧ 겨울 동백 나무에게 있어 꽃이 눈이라는 것을 그 꽃눈이 등불이기도 하다는 것을 하얀 옷을 입은 동백을 보면 안다 그 눈빛은 고요하고 그윽하다 동백 곁에 오래 서 있어 보면 안다 동백이 세상을 밝히려 꽃 등불을 흔들 때마다 종소리가 난다 어떤 눈 먼 이는 그 종소리를 듣고 마음의 빗장을 열었다고 한다 ♧ 수선화 수선화는 물의 영혼이 지상에 드러낸 자태 칼날 바람 속 언 땅 보듬고 하늘을 우러러 보며 공양 올린 손마다 금잔옥대다 우구를 위한 애절한 서원인가 추사선생이 절절이 사랑했던 수선화 꽃향기는 꽃이 하는 말 파르르 파동하는 묵언의 소리를 보라 ♧ 순비기나무를 위하여 -순비기란 말 ..

문학의 향기 2023.06.10

정군칠 시집 '물집'의 시(2)

♧ 분홍 넥타이 송악산 비탈, 한 뼘만 한 풀밭 나이 든 조랑말 한 마리 말뚝에 묶여 있다 발굽 아래가 바로 벼랑인데 캄캄한 낭떠러지인데 고삐에 매인 맴돌이가 어제오늘 일만은 아니라는 듯 제자리를 맴돈다 이따금 고개 들어 바다를 바라보다 다시 고개 숙이는, 한 뼘 원주에 묶인 내 몸도 많은 날 해 저물고 목이 마르다 그러니 생은 팽팽한 심줄 끌어당기는 풀밭 그 한가운데를 바라보는 것 올봄, 내 아이가 처음 맨 ♧ 붉은 꽃으로 가다 저것들, 헤픈 듯한 웃음을 흘리며 길모퉁이에 서 있다 꽃잎 안을 살며시 들여다본다 반점 같은 씨방이 고요히 잠들어 있다 벌거벗은 내가 잠들어 있는 자궁 속이 저리 푸르다 저렇게 푸르다 칸나에게로 가면 붉은 꽃잎으로 둘러싸인 생명을 볼 수 있다 까맣게 숨어 있는 나를 들여다 볼 ..

문학의 향기 2023.06.09

한남리 '머체왓숲길' 1코스

‘머체왓숲길’은 서귀포시 한남동에 조성된 건강걷기 및 자연탐방 코스다. 5.16도로나 남조로에서 서성로로 들어서면 거의 중간쯤 서중천 옆 도로변에 ‘머체왓숲길 방문객 지원센터’가 자리했다. ‘머체’는 ‘돌이 엉기정기 쌓이고 잡목이 우거진 곳’, ‘왓’은 ‘밭’을 일컫는 제주어의 합성어로 이전에 그 주변에 있었던 ‘머체왓’이라는 동네이름에서 유래된 말이다. 지금도 지원센터 북쪽에는 ‘머체오름(425.8m)’이 자리해 있다. □ 명품 도보여행 녹색길 이 길은 2012년 한남리 주민들의 발의로 머체왓 일대의 목장과 곶자왈, 생태숲 등을 돌아오는 도보 여행길로 조성했다. 과거 주민들이 이용했던 옛길을 토대로 길이 약 6km, 너비 1.5m의 새 길을 만들어, 방문자센터를 기점으로 남원․한남공동목장, 곶자왈, 머..

길 이야기 2023.06.08

동인지 '바람집 사람들'의 시(5)

♧ 나비 – 양시연 날‘비’자에 모기‘문’자 나에게 날아왔네 반평생 헤맨 사랑 이제 제 짝 찾은 걸까 허하마 이제 허하마 내 첫사랑 나의 비문飛蚊아 ♧ 기러기 통신 - 김미영 어머니 서랍에는 기러기 울음이 있다 서른 해 전 외상으로 놓고 가신 호마이카 농 반쯤은 칠 벗겨져도 그 울음이 묻어있다 때 아닌 역병으로 집안에만 갇힌 날 방청소 하다말고 슬그머니 당긴 서랍 물 건너 내가 보냈던 그 전보를 내가 본다 열 글자에 오십 원 ‘납부금 급 송금 요망’ 원고지 첫 줄에 뜬 가을하늘 기러기 떼 저 하늘 한 줄로 줄여 유서처럼 품고 있다 ♧ 콧구멍 도둑 – 김현진 사나흘이 멀다 하고 들어서는 친정 길 올레길 돌담 따라 살짜기 여문 텃밭 찜해 둔 애호박 몇 개 자루에 따 넣는다 대대로 내려오는 상할머니 백자 다기..

문학의 향기 2023.06.07

문영종 시집 '물의 법문'의 시(2)

♧ 바다 비 살 꿈틀거리며 꾸는 꿈에 다한 빛 닿아 물갈음한 바다 속 훤히 트여 발바닥까지 스미는 물소리 맥 집는 손 달아올라 이끌리는 물 속 한 바퀴 휘저어 물 젖은 옷 갈아입고 몰래 꿈꾸는 하늘로 도주하리라 몇 척의 구름이 발 동동 구르는 하늘 빙~ 돌아 기억이 묽어지면 바다에만 오는 바다 비 ♧ 바다를 꿈꾸며 바다를 두고 눈감으면 의식의 끝까지 물기운이 차올라 물결을 꾸꾸는 구름노래 구름을 꿈꾸는 물결노래 가슴 귀에 가득 출렁이고 푸른 핏줄기가 일어서도록 물길을 밟으면서 바람을 만나면 바람꿈 별빛을 만나면 별빛꿈 둥그런 수평선 안 中心에서만 논다 눈감고 바다를 보면 세상 온갖 것들이 보이지 않아 트인 귓속으로 바닷소리가 기어들고 트인 가슴엔 無心한 바다로 가득해 無心한 바다꿈만 꾼다 ♧ 밤바다에서 ..

문학의 향기 2023.0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