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2023/05 30

계간 '제주작가' 2023년 봄호의 시조(1)

♧ 목련의 잠 – 김영란 시작은 그리 아름답지 않아도 좋아 상처의 역설은 향기가 난다는 것 기막힌 반전이라도 저녁은 빛났잖아 끝난 줄 알았는데 이어지는 노래처럼 길은 또 시작되고 울음소리 부푼다 간신히 다독인 슬픔 붉은 꿈을 품은 거야 ♧ 툰드라 - 김영숙 저어기 돌담 위에 새순 돋아도 툰드라 김 시인 배롱나무꽃 바알가니 피는데 송령골 비크레기엔 아직도 툰드라 툰드라 ♧ 금뱃지 - 김정숙 매일 새 일하고 새 밥 먹고 새 집 살고 새 날을 살게 새 소리 하는 거라고 구구구 짹짹짹 까옥 그 소리가 그 말인가 ♧ 밀양이라 부르면 - 김진숙 아는 사람 하나 없는데 밀양이라 부르면 쇠사슬 칭칭 감은 할매들 마지막 일침 “산에도 주인이 있다 나를 밟고 가거라” 밤늦게 도착한 단장면 사연리는 산이 산을 업어주고 달빛..

문학의 향기 2023.05.07

김순선 시집 '사람 냄새 그리워'의 시(3)

♧ 빈집 어느 날부터 사람 사는 냄새가 사라져 빈집은 점점 허약해지고 적막강산 저체온증으로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빈집이 폐허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얼마 만인가 집을 떠나 유배 생활을 한 지가 병원 생활을 뒤로하고 잠깐 귀가했다 음식 냄새가 나고 말소리가 들리고 발소리 잦아져 싸늘하게 쓰러져가던 빈집에 생기가 돌고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 고장 난 로봇 그는 점점 앵무새를 기르고 싶어 해요 오늘의 평화를 위하여 주인이 원하는 말만 해야 하는데 앵무새는 자꾸 헛소리만 해요 그는 점점 애완견을 기르고 싶어 해요 주인이 돌아오면 달려 나가 겅중겅중 꼬리를 흔드는 복사꽃이 화사하게 피어오르다가도 금세 살얼음판 아무리 조심조심 발을 옮겨도 삐거덕 삐거덕 자세히 바라보면 서로 닮은꼴이면서도 바라보는 곳이 달라 ..

문학의 향기 2023.05.06

'노아의 방주' 표착지로 알려진 아라랏 산

♧ 2023년 4월 17일 일요일 맑음 어제 예레반 시내를 비롯한 인근 지역을 오가면서 하루 종일 눈앞에 어른거리던 아라랏산이 가까이서 아주 잘 보이는 콜비랍 수도원으로 향했다. 가는 중에도 눈은 멀리 허연 눈을 쓰고 공중에 떠 보이는 아라랏산을 향한다. 대절한 대형 버스 차창으로 환히 보이는 아라랏산을 촬영해 보려 했으나, 뒤에 창문이 반사된다든지 전신주와 전선에 가려 잘 찍을 수가 없다. 예레반 시내에 위치한 호텔을 출발한 지 1시간여. 드디어 콜비랍의 작은 언덕에 위치한 수도원 입구에 도착하여 언덕으로 걸어가는데, 주변에는 기념품 가게가 늘어서고, 음료수를 파는 가게들이 널려 있다. 얼마 안가 언덕 위에 도착해보니, 노아의 방주가 표착했다고 알려진 터키의 최고봉 아라랏산이 벌판 너머에 젊잖게 앉아 ..

해외 나들이 2023.05.05

계간 '제주작가' 2013년 봄호의 시(3)

♧ 심인(心因) – 나기철 말은 잘 안하지만 아내는 늘 왼쪽 다리와 양어깨가 아프다 한다 오래 됐다 한다 나는 허리도 안 아프고 다리도 안 아프다 단지 귀 아래 근육만 좀 땡길 뿐이다 매일 아침 걸으러 가기 전 물을 마시고 가면 서서히 귀 아래가 좀 땡긴다 오늘은 안 마시고 갔는데 또 서서히 땡겼다 ♧ 춘첩(春帖) 2 - 서안나 매화 가지에 꽃을 불러 아홉 가지 산나물에 찬술을 마신다 늙은 개는 하루를 굶기고 집안에서 칼질을 삼간다 붉은팥을 뒤로 던지면 매운 수선화가 피고 저수지는 뿌리가 깊어진다 편지를 쓰면 수심이 깊어 두 사람이 죽고 한 사람이 노래하고 매화는 아이들 여린 잇몸에 새 이로 돋아나고 입춘이라 쓰면 착하게 살고 싶다 매화는 시계방향으로 피고 볏짚을 태우면 정인은 매화 속에서 병이 들어 고..

문학의 향기 2023.05.03

김순선 시집 '사람 냄새 그리워'의 시(2)

♧ 영자 씨 친구 같은 엄마와 딸 영자 씨 오늘은 맑음? 흐림? 아이구 방구 냄새 나는데 어디 봐요 얼레리 꼴레리 우리 엄마 응가했네요 아침 일찍 믹서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고 암죽을 만들고 간호사가 방문하기 전 비닐 팩에 담아 높이 매달아 둔다 93세의 노모를 딸이 간호 중이다 남동생이 둘이나 있어도 장사하느라 바쁘단다 동생들 돈 많이 벌라 하고 간병을 자청했다 잠시도 쉬지 않고 흥얼흥얼 노래 부른다 반응 없는 엄마와의 대화법이다 씻기고 먹이고 기저귀 갈아주면서 엄마에게 받았던 사랑을 딸이 엄마에게 드리는 중이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여행 후회 없는 이별을 위한 추억 쌓기 탯줄 같은 끈끈한 정을 이어가고 있다 언제까지 함께 할 수 있을지 ♧ 아버지와 딸 아침을 알리는 요란한 벨소리 네네 알겠습니다 아가..

문학의 향기 2023.05.02

아제르바이잔 고부스탄 암각화 박물관

아제르바이잔 바쿠 교외 약 65km 지점인 고부스탄에는 선사시대에서부터 청동기 시대에 새긴 것으로 추정되는 암각화 지대가 있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고부스탄’은 ‘돌’을 의미하는 ‘고부(QOBU)’와 ‘땅’을 의미하는 ‘스탄(STAN)’의 결합으로 ‘바위무덤’을 뜻한다. 입구에 기념관 겸 박물관 형식의 건물이 있어 거기에서 내용을 어느 정도 학습하고 현장에 가도록 했다. 안으로 들어서면 바위에 새겨진 여러 가지 문양을 한데 그려 전시해 놓았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서면 암각화를 새길 당시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멧돼지, 여우, 사슴, 표범, 영양 등을 실물 크기로 만들어 전시했다. 그리고 발굴된 유골과 토기 등도 전시돼 그 시대를 짐작하게 한다. 고부스탄 암각화는 아제르바이잔 중부 ..

해외 나들이 2023.05.01